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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파파 Nov 26. 2021

슬픔이 마른다는 것

숙모님의 죽음과 단상들

"네 진주 삼촌한테 지금 전화 왔는데, 의사가 가족들 모두 불러라고 했다더라.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듯싶다. 너도 그리 알고 있어라."  


11월 19일 밤 8시경에 걸려온 아버지 전화. 진주 삼촌이 아버지에게 전화해 숙모 상황을 전했단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11시 무렵. 숙모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진주 경상대 병원에 빈소를 차리기로 했고, 서울 삼성병원에서 이동 중에 있다고. 그날 미세먼지가 잔뜩 낀 하늘이 한층 더 우울하게 다가왔다. 우리 가족도 서둘러  진주로 향했다. 


늦게 도착한 터라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21일 오전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입구부터 화환이 가득했다. 유치원 원장님이었던 숙모님의 업의 흔적들. 잠시 상념에 젖었다 빈소로 향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보며 울컥하던 마음도 잠시, 향을 피우고 국화꽃을 놓고 절을 올렸다. 상주복을 입은 두 명의 사촌동생들에게 무언의 위로를 건넸다. 눈물을 꾹꾹 눌러 담던 사촌 여동생을 뒤로하고, 우리 가족은 구석진 테이블에 앉았다. 곧이어 남동생과 여동생이 도착했다. 우린 오랜만에 만난 감회도 잠시, 영면하신 숙모님을 떠올리며 짧은 담소를 나눴다.       


62세라는 한창나이에 세상을 등진 숙모님. 숙모님과 나는 많은 추억을 공유한 편은 아니다. 그래도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나는 가끔씩 삼촌 댁을 방문하면 즐겁게 맞아주고 웃어주던 기억이 난다. 호탕하게 웃던 그녀의 웃음소리는 영락없이 아들이 물려받았다. 숙모님은 유치원 원장에 이르기까지 유아 교육을 위해 높은 학구열을 불태우신 분이었다. 한 번은 유치원 선생님을 소개해준다며 조카 장가보내기에도 앞장섰다. 삼촌과 숙모님이 소개팅 자리에 직접 와서 그 자리를 몰래 훔쳐보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조용조용하면서도 강단 있고 추진력이 대단했던 숙모님. 난소암 판정을 받고 10년 가까이 서울과 진주를 오가며 힘겹게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다.         




장례식장에서 나와 다시 평택으로 올라가던 길. 위더(With) 코로나 때문인지 차들이 고속도로를 점령했다. 약 6시간 넘게 걸려 집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피곤함에 절어 아내와 아들은 파김치가 되어 잠을 청했고, 나는 나대로 운전대를 움켜쥐며 만감이 교차했다. 정작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슬픔이 마른다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황동규 시인의 [가파른 가을날]의 "늙음은 슬픔마저 마르게 하는지 생각보다 덜 슬픈 게 슬프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늙음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슬픔의 방식이 바뀌고 슬픔의 표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했다. 다르게 해석하자면, 그만큼 터부시 했던 '죽음'을 가까이 느끼고,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닌 함께 호흡해야 할 대상임을 인식하게 된 것. 시선과 의식의 확장 속에 '죽음'이 갖는 정의와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에, 슬픔도 마른다고 노시인이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태어나서 죽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피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언제라도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그래서 더 울림 있는 아포리즘이 아닐까. 섬찟하고 공포스러운 말이지만, 한편으론 지금 누리는 현실에 더 천착하고, 내 곁의 사람과 더 사랑하며 살라는 은유를 던진다. 그것이 일으키는 공명을 기꺼운 마음으로 여긴다면, 개개인의 인생은 더 찬란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지 않을까.     




죽음의 인식 확장을 통해 삶의 애착을 갈망하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일맥상통한다. 그 때문에 죽음에 관한 인류의 관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사후 세계 역시 종교와 맞물려 깊은 연구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생각과 통찰이 나름 '늙음'과 비례한 지혜의 방증이라 여기면서, '죽음'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하늘의 별이 된 숙모님의 명복을 빌고 이제 더 이상 고통 없는 곳에서 평안하게 영면했으면 싶다. 그리고 죽음은 늘 가까이 있다고 여기면서 더 값지고 품위 있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욕심같지만 생의 할당된 양만이라도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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