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니오

by 윤사강

우리 집이 지역사회 건강조사 조사대상 가구로 선정되어 오늘 조사원의 방문을 받았다. 조사는 15분가량 일대일로 진행되었다. 조사원이 생활 전반 및 위생 상태, 정신 건강, 건강 지식 등에 대한 질문들을 하면 내가 그에 대답을 하는 식의 형태였다. 설문은 순조로웠다. 정신 건강 파트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정신 건강 파트의 질문은 꽤나 익숙했다. 자가진단을 할 때, 심리 상담 센터에서, 병동에 입원할 때, 심지어 입원해서조차 늘 비슷한 질문의 조사를 받았으니까. 이번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나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녀가 평이한 목소리로 질문을 읽어 내려갔다.


최근에 우울감을 느낀 적이 있다. ‘아니오’. 이유 없이 죄책감이 든 적이 있다. ‘아니오’. 나 때문에 가족이 불행할 것 같다. ‘아니오’. 과수면 또는 불면증에 시달린다. ‘아니오’.


질문은 정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최근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도 자연스럽게 ‘아니오’로 향하는 조사원의 손길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정신 건강 관련한 질문엔 대답이 정해져 있었다. ‘아니오’라는 대답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 조사원은 나를 밝고 건강한 젊은이로 생각할 테지. 식탁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약 다발이 우울증 약이라는 건 전혀 모르는 채로. 기분이 묘했다. 이젠 나도 제법 건강한 사람 흉내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니오’.


끝내 나는 마지막 질문에까지 ‘아니오’라고 대답해내고 말았다. 그녀는 몰랐겠지만 그 순간 작은 전율이 일었다. 그녀는 ‘아니오’에 체크하며 자연스럽게 페이지를 넘겼지만 내 마음은 그 마지막 항목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최근에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이 짧은 명제가 얼얼했다. 그렇구나. 나는 최근에 죽고 싶었던 적이 없었구나. 누군가에겐 당연한 사실을 두고두고 곱씹었다.


설문이 끝나고 답례의 의미로 문화상품권을 받았다. 하지만 내게는 문화상품권보다 내가 얻어낸 결론 하나가 더 소중했다. 나는 이제 죽고 싶지 않다는 것. 내게도 삶이라는 게 의미가 있다는 것. 나는 이 사실을 지역사회 건강조사 설문에서 깨달았다. 귀찮아서 정말 하고 싶지 않던 주말 오전의 이벤트. 이 설문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죽음을 긍정했겠지. 주말의 일상은 소소했고 깨달음은 거대했다. 운명은 우연처럼 온다는 말을 믿는다. 작은 우연이었고, 커다란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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