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원은
어느덧 입동이 지났다. 열아홉 번째 절기가 지나고 겨울이 시작된 것이다. 아직 11월의 중순이니 완연한 겨울이라 부르기엔 설익은 감이 있지만 지나가버린 절기는 이미 겨울의 시작을 열어버렸다. 쌀쌀해져 버린 날씨 때문에 저녁 산책을 할 때에는 항상 롱 패딩을 입어야 했다. 엄마의 수술 이후 장기의 유착을 막기 위해서는 자주 걸어줘야 한다는 말에 나와 아빠는 엄마와 함께 잦은 산책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저녁 식후 산책은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붉은 달을 본 것도 오늘 저녁 산책에서였다. 평소 산책을 할 때와는 다르게 오늘따라 하늘을 바라보거나 하늘을 향해 핸드폰을 들이대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오늘이 개기월식을 볼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갔을 땐 개기월식이 이미 진행되어 달의 모습이 꽤나 가려져 있었다. 달은 생각보다 희끄무레했고 빛을 잃어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어두워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 그 자리를 인식하자 걷는 내내 시선이 달을 향했다. 붉게 보이는 달을 향해 소원을 빌면 왠지 이루어질 것만 같아서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계속 되뇌었다. 소원하는 것이 있는 삶은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좌절과 절망도 있겠지만 꿈꾸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감정도 분명 존재하기에 소망이 유효한 기간은 진정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축복이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실재하기를 바랐다.
어느덧 올해를 두 장 남겨놓고 있는 11월. 붉은 달 앞에서 빌고 싶은 것이 그리 많진 않았다. 나는 유치하게도 소원이란 공개하면 그 효력을 상실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 내가 빌었던 소원을 누군가에게 말로 할 수도, 글로 쓸 수도 없다. 그저 걷는 내내 달을 보며 이루어줄 수 있겠느냐고 마음속으로 계속 물었을 뿐. 한참을 침묵하며 걷는 나를 보면서 엄마와 아빠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내가 희끄무레한 붉은 달을 바라보며 그토록 소원했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