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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 Dec 04. 2022

무형의 것들로부터

눈, 윤슬, 그리고 마음

어제 아침에 맞이한 세상은 하얗고 보송했다.  사이 눈이 내린 덕분이었다. 어릴 적엔 눈이 오면  밖에 나가  손으로 눈을 만져보곤 했다. 손이 얼어 빨개져도 그땐 그게 좋은 나이였다. 이젠 눈이 오면 질척거릴 땅과  더러워질 도로가 먼저 걱정이 된다. 반박 못할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제도 하얘진 창문 밖을 그저 힐끗 내다보고는 말았다.


토요일은 내가 빨래와 청소를 하는 날이다. 우리 집은 엄마의 자궁 적출 수술 이후 집안일을 나머지 가족들이 분담하여 하고 있다. 그리한 지 어느덧 한 달이 훌쩍 지나고 나니 금세 토요일 오전의 루틴에 익숙해져 버렸다. 일상은 조금 변했지만 변한 대로 그럭저럭 잘 흘러가고 있었고 엄마도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다. 아무 일 없는 평온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증량한 약은 효과를 보여 요즘은 불안이나 우울 따위에 하루가 좀 먹는 일도 드물었다.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밤에 눈을 감을 때 마음에 파도가 일진 않았다. 여전히 끓는 물은 무섭고 뾰족한 것들은 겁이 났지만 그래도 삶이 많이 나아졌다고 믿었다. 이 모든 것엔 내 곁을 단단히 지켜주는 한 사람의 힘이 컸다. 그는 내 뿌리이자 줄기였다. 편향된 양분을 곳곳으로 실어 날랐다. 덕분에 햇빛을 볼 때마다 한 뼘씩 자라날 수 있었다.


그와 함께하는 어떤 미래에 입을 웨딩드레스를 상상해본 적이 있다. 꽤나 구체적으로 드레스의 모양을 생각해봤다. 그 뒤론 우연히 웨딩드레스 사진을 볼 때마다 미래의 내 모습을 대입해보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버진로드를 걷는 신부의 모습에서 미래의 나를 찾았다. 신부의 드레스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드레스가 나풀거렸고 그것은 마치 윤슬 같았다. 셀 수 없는 예쁜 마음들이 그 반짝임들로 형상화된 거라고 믿었다.


식은 느린  빠르게 진행되었다. 7 연애의 결실치고는 신속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결실은 형식이 중요한 법이었다.  개의 순서가 마무리되고 그들은 부부가 되었다. 언젠가 우리도 부부가 될까. 문득 궁금했다. 나도 그의 곁에서 반짝거리는 드레스를 입게 될까. 어제 아침에 맞이한 세상처럼. 하얗고 보송거리는 그런 드레스를 입게 될까. 샹들리에, 조명들, 그리고 신부의 드레스. 온갖 반짝거리는 것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식장을 나섰다. 반짝거리는 예쁜 마음만 간직한 채로. 어떤 것들은 형체가 중요하지 않았다. , 윤슬, 그리고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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