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m’s drawing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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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말하지않아도 혼자 부끄러운 일을 하는 때가 있다. 혼자 있어도 흥분할정도의 실수를 어제 겪었다.
“실수를 겪다니... “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공고문이 있었는데, 몇달동안 공지를 기다렸었다. 그런데 갑자기 1차통과자 발표가 난것이었다. 아니 이런? 나는 지원도 못했는데?? ... 자그마치 한달반이나 걸려있던 공고를 그간 게시판에서 발견하지 못했다는건, 어떤 변명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명백한 나의 실수이자 실패였다.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 일을 겪고나니 온몸에 힘이 빠지고, 그냥 죽어버리고 싶어졌다. 뻔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정말 콱 죽고 싶었다. (콱이라는 의성어처럼 아주 짧은 시간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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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오래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건 ‘옷장’’과 관련된 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옷장에 관련된 나의 욕망과 삶의 예기치못함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커오면서 내 옷장을 가진 적이 없었다. 별거아니지만, 옷장에 대해선 작은 소망 같은 것이 있었다.(굳이 그런 종류에 욕망 따위의 섣부른 단어는 사용하지 말자.) 서른이 되어 처음으로 집밖으로 탈출을 하며 처음으로 근사한 옷장을 샀다. 키가 크고, 멋진 밤색이고, 케쥬얼한 디자인을 갖췄고, 기능적이었다. 월세의 열배정도는 쥐어주고, 손에 넣었다. 옷장을 열 때마다 즐거웠고, 당연히 옷정리는 열심한 일이 되었었다. 일년이 지나자 나는 돈을 모아 컨디션이 좀 더 나은 방으로 이사를 했다. 엘리베이터가 있고, 강남 한복판에 새로지은 신축 건축물의 환한 원룸이었다. 문제는 이사당일에 발생했다. 좁은 복도와 애매한 크기의 방문 탓에 이 키가 큰 장롱이 도통 내 방으로 진입을 못했던 것. 그 건축물을 설계한 집주인이자 건축사는 옥상으로 올려서, 밧줄로 묶어 베란다의 통창을 통해 가구를 넣으라며, 일언지하 말을 잘랐다. “그건 너의 문제야.”
이래저래 방법을 찾다 찾다가 결국 나는 딱 일년 쓴 가구를 처분했고, 다시 더 예쁜 붙박이 옷장을 논현동에 가서 계약하였다. 이 새로운 옷장은 분해가 가능했다. 다시 그 비슷한 금액을 지불하고, 새 방에 설치했다. 그리고 나서 석달이 지났다. 이러저러한 개인적 사정으로 나는 다시 이사를 계획했고, 재설치비를 20만원이나 지불하고, 옷장을 이동 설치했다. 거기에 더불어 함께 다시 살게된 엄마에게도 근사한 장롱을 사드렸다. 그게 끝이라면 문제가 아니다. 또 서너달 후, 나는 만난지 몇달 되지 않은 지금의 남편과 결혼에 진입하게 되었고, 결혼하자마자 싱가폴로의 이주가 예정되었다. 아... 나의 옷장...
당연히, 장롱 따위에 미련을 가질 일은 아니다. 이러저러한 우여곡절 끝에 엄마도 다시 이사를 하게 되고, 나의 두번째 옷장과 새로 사드린 엄마의 장롱 모두는 다음번 이사를 들어온 처자들에게 한푼도 받지못한채 넘겨주게 되었다. 그나마 폐기처분이 안된것도 다행인 지경이다. 결국, 내가 가진 로망 따윈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우스꽝스러운 옷장에 대한 로망 따윈 없는게 나았다. 세차례에 걸쳐 사용한지 일년밖에 안되는 값비싼 옷장을 내다버린 결과, 나는 지금까지도 옷장을 사는 일에는 인색하다. 인색하다는 말은 좀 모자라고, 옷장에 돈을 쓰는 일에는 병적으로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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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을 통해 나는 삶의 통찰 하나를 얻었다. 소망, 로망 따윈 삶에 하나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특히,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행위에 대한, ‘갖고싶다’는 욕심 같은 건 어딘가로 치워버려야 한다는 것을. 삶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가는 법이 없다. 늘 제멋대로 달음박질치는 자신의 삶은 도통 그 속도와 방향을 예단하기 어려우므로, 그걸 종종거리며 좇아가는 길 가운데 무언가를 욕망하는 일은, 버거운 장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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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뻥 뚫린 날. 그러한 수십년전의 기억이 종일 나를 좇아 다녔다.
무엇이 좋은건지, 무엇이 나쁜일인지 판단은 쉽지않다. 오십해쯤 살면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늘 인생은 새옹지마이니... 실수이지만, 어처구니없는 실패이다만, 이건 실수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더 나은일이 벌어질 전조다... 이렇게. 세뇌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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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구멍은 있는 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