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 이론
그리고 조직문화
지금까지 복잡계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결국 현대의 조직문화가 갖고 있는 많은 개념과 방법론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복잡계 이론이 조직문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조직
복잡계의 지식에 따르면 '뛰어난 개인'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복잡한 문제는 전문가의 영역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뛰어난 리더라고 해서 옳은 결정을 내린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아니타 울리(Anita Wolley)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협력적 개입이 없는, 즉 서로 간의 정보 교류가 없었던 전문가 집단은 협력한 비전문가 집단보다 그 성과(Performance)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뛰어난 개인보다 서로 간의 협력, 즉 개체 간의 상호작용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Wolley가 진행했던 연구 결과표
또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부 환경의 변화, 이를 테면 고객과 시장의 반응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정확한 답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계속 'Probe'하면서 반응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 상황을 쫓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기존의 위계적인 조직 구조는 이것들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직적인 조직 구조는 프레드릭 테일러(Frederick Taylor)가 주창한 '과학적 관리법'에서 출발했습니다. 테일러는 협업이 아닌 분업을 주장했고, 사고와 실행을 분리를 강조했습니다.
테일러리즘은 조직의 효율성을 위해 경영자의 구상(thinking)과 노동자의 수행(doing)을 분리했다.
하지만 이는 조직의 '통찰'을 막습니다. 만약 구성원이 이례적인 것을 감지하고 알렸다고 해도 최상위 의사결정권자에게 가는 도중에 묻혀버릴 확률이 높습니다. 게리 클라인(Gary Klein)은 이를 '조직적 억압'이라 표현합니다. 또한 설령 그 정보가 도달하더라도 위계적인 구조에서 그 대응은 매우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수직적 구조에서 오는 직급과 권위 그리고 경직성은 개체 간의 원활한 정보 교류를 막으며, 동시에 변화에 반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를 막으려면 우선 기존의 수직적인 조직 모델에서 벗어나 구성원들에게 결정권을 적극적으로 위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거나 걱정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못해도 몇 백 년 전부터 이미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를 통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의 사례를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동기부여
현대의 조직의 구성원들은 더 이상 사고와 실행이 분리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행위자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와 다르게 이들의 동기부여도 당연히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테라사 애버밀(Teresa Amabile)을 포함한 연구자들은 업무 유형에 따른 동기부여 방식을 다음과 같이 구분했습니다.
연산적 유형의 업무 - 정해진 기존 지침에 따라 한 가지 방법으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는 일, 다시 말해 그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연산적 방법이 존재함
발견적 유형의 업무 -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연상적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 일을 맡은 사람은 여러 가능성을 실험해 보고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연산적 업무에서는 외적 보상과 처벌(당근과 채찍) 이 좋은 효과를 가져다주었지만, 발견적 업무에서는 외적 보상이 오히려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에버밀은 이를 '창의성의 내재 동기 원리'라고 하였는데, 내재 동기는 창의성을 유도하지만 통제적인 외재 동기는 창의성에 해가 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연봉이나 성과금 같은 것으로 동기를 부여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복잡계에서 다루는 문제는 이 '발견적 유형'의 업무에 가깝습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창의성이 요구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과는 다른 동기부여가 필요합니다. 다니엘 핑크는 이를 '배우고 창조하고 이 세계를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세 번째 욕구'라 하여 '제3의 드라이브'라고 표현합니다.
제3의 드라이브를 자극하려면 인간에겐 자율성, 그리고 일에 대한 몰입, 의미 있는 목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조직은 온갖 규칙과 제도로 자율을 빼앗으며, 불필요한 업무 사항으로 몰입을 방해합니다. 또한 일을 하는 의미보다는 오늘 해내야 할 To-Do List와 분기 달성 목표를 재촉합니다.
그 이유는 자명합니다. 조직은 불확실성을 없애고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복잡한 문제는 예측할 수 없으며, 불균형적이고 불안정한 상태야말로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조직이 구성원들의 동기부여를 신경 써야 하는 참된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3) 소통과 공유
복잡계에 있어서 창발의 첫 번째 전제 조건은 개체들 간의 상호작용입니다. 상호작용 없이는 학습이 제한되며, 그 한계가 명확합니다. 조직에서 개체 간 상호작용이라 하면 구성원 간의 대화, 소통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대화와 소통은 '평형으로부터 멀수록' 좋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조직 내의 다양한 의견이 막힘 없이 이루어졌을 때 창발이 일어나기 더 쉽습니다. 스콧 페이지(Scott Page)는 '인지적 다양성(Cognitive Diversity)'을 강조합니다. 인지적 다양성이란 생각하는 방법(how to think)이 다양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중요하다 생각하는 성별, 인종 계층을 포함하는 '인구통계학적 다양성'은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조직의 창발을 위해선 '인지적 다양성(Cognitive Diversity)'가 필요하다.
복잡계의 지식에 따르면 이는 적확한 얘기입니다. 기존의 편향된 패턴과 다른 패턴이 부딪쳐 복잡도가 올라가는 불안정한 상태야말로 창발이 잘 일어나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캐스 R. 선스타인에 따르면 집단은 논의를 하고 나면 판단에 대한 확신이 굳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 와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이는 '공유지식 효과(shared information bias)' 때문에 발생하는데, 소수의 구성원만 아는 정보보다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아는 정보가 의사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공유지식 효과(Shared Information Bias)에 대한 설명 영상
쉽게 말해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을 말했을 때 더 동의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집단의 특성상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다른 정보가 공유되기 어려우며, 이것이 주류의 반하거나 비판적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경우 조직은 오류를 바로잡기는커녕, 오류를 더 확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조직에서 '공유'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특히, '자기 조직화'된 팀과 조직에서는 구성원은 곧 실행자이자 결정권자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판단에 필요한 적절한 정보를 대내외적으로 충분하게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 과정은 매우 험난할 수 있습니다.
(4) 심리적 안전감
복잡한 문제는 원인과 결과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없고, 예측이 불가합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그럴듯한 시도'를 이어나가면서 일종의 실험을 반복해야 합니다. 그 말의 뜻은 당연히 실수가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복잡계에서 실수는 당연히 발생하는 상수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수한 것을 쉽게 질책해서는 안됩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스트레스와 위협이 가해지면 그 학습 능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또한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의 연구에 따르면 심리적 안전감이 높아질수록 직원의 몰입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마이클 프레제(Michael Frese)는 조직마다 '실수 예방(Error Prevention)' 문화가 있고, '실수 관리(Error Management)' 문화가 있다고 말합니다. 전자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만약 실수를 하게 되면 실수한 사람을 비난하고, 처벌합니다. 자연히 그 조직은 실수가 발생하면 감추게 됩니다.
반대로 후자는 실수에 대해 질책하지 않고, 오히려 실수를 격려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배움의 기회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이 조직은 실수를 감추지 않고 공개합니다. 이미 이에 대해선 너무 많은 사례가 존재합니다. 구글과 픽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5) 피드백
복잡계에서 조직은 계속해서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반응하고 적응해야 합니다. 또한, 자율권을 보장받고 결정권을 위임받은 자기조직화 팀은 일의 시작부터 끝을 모두 관할합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역할이 기존의 포지션이 가지고 있던 독립적인 역할을 해내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조직의 구성원은 어제 내가 하고 있던 업무가 오늘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도메인 지식과 기술적 지식, 그 외 많은 능력들이 요구될 수 있습니다. 이를 반영하는 단어로 종종 'T자형 기술 또는 사람(T-shpaed Skills or Persons)'을 얘기하곤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T자형 스킬'을 갖추도록 요구 받는다.
정리하면 복잡계에서 구성원들은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하며, 조직은 그러한 환경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때 조직과 구성원이 모두 복잡계라는 걸 인지했다면, 표준화된 매뉴얼(연례 성과 평가)와 같은 접근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직은 마치 제품을 가지고 시장과 고객에게 반응을 확인하듯이, 구성원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통해 '공진화(Co-evolution)'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방법은 곧 '적절한 시기'에 '구체적인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어도비는 자신들의 피드백 문화를 레이싱 경기 중간에 차량을 정비하는 '피트 스톱(Pit Stop)'에 비유했습니다.
실제로 해외의 많은 기업들은 등급에 따른 상대평가를 없애고, 1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연간 성과 평가 대신 '비공식적인 피드백'을 '더 자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도비의 '체크인(Check-ins)이 가장 대표적이며, 딜로이트의 '성과 스냅샷(Performance Snapshot)'이 있으며, 그 외에 애플, 테슬라, 넷플릭스 또한 포함됩니다.
Why를 알아야
What & How를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요즘 거론하는 조직문화의 용어, 개념, 방법론의 대부분은 '복잡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MZ세대의 영향 또는 관련성도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또한 애자일 문화, 애자일 방법론의 경우도 실리콘밸리나 빅테크 기업이 하고 있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애자일 방법론은 처음부터 복잡계 이론을 바탕으로 시작했습니다. 결국 지금의 모든 조직문화는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기에 유리한 방식으로 발전해 온 것입니다.
왜 자율적인 조직을 만들어야 할까요? 그것은 구성원의 복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왜 소통과 공유가 중요할까요? 단지 서로 믿음을 주거나, 친화적인 분위기를 만들기가 위해서가 아닙니다. 왜 심리적 안전감이 필요할까요? 결코 서로 상처받기 싫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조직문화를 다루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도구 만능주의일 것입니다. 어떤 좋은 방법론, 프레임워크, 툴도 왜 쓰는지를 모른다면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할 수 없을 겁니다.
참고 자료
Rebecca Hinds, Robert Sutton, Hayagreeva Rao (2014), <Adobe: Building Momentum by Abandoning Annual Performance Reviews for "Check-Ins">, Stanford Business School
Marcus Buckingham and Ashley Goodall (2015), <Reinventing Performance Management>, HBR
Woolley, A. W., Gerbasi, M. E., Chabris, C. F., Kosslyn, S. M., & Hackman, J. R. (2008), <Bringing in the Experts: How Team Composition and Collaborative Planning Jointly Shape Analytic Effectiveness>, Small Group Research
에이미 에드먼슨 (2019), <두려움 없는 조직>, 다산북스
마커스 버킹엄 & 애슐리 구달 (2019), <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 쌤앤파커스
다니엘 핑크 (2011), <드라이브>, 청림출판
캐스 R. 선스타인 (2015), <와이저>, 위즈덤하우스
게리 클라인 (2015), <통찰, 평범에서 비범으로>, 알키
김창준 (2018), <함께 자라기>, 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