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는 결혼을 하지 않았죠. 대신 '오즈 사단'으로 불리는 자신의 스태프들을 몹시 챙겼습니다. 오즈의 스태프들은 촬영장이 마치 자신의 집에 놀러 오듯 편안했다고 증언합니다.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는 거에요. 다시 말해 오즈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오즈는 삶은 곧 드라마라고 말한 바가 있고, 그의 말처럼 그에게 영화란 삶 그 자체였습니다. 즉 오즈의 영화는 삶을 포착한 것이지 무언가 만들어낸 허구의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오즈가 가족 영화를 만드는 만큼 가족같은 분위기가 나온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잖아요. 이런 분위기에 관한 증언들은 오즈가 살아생전 따스했음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오즈는 이렇게 공과사의 구분을 짓지 않는 분위기로 가족 영화를 찍습니다. 사실 이런 소재는 직장이나 군대처럼 경직된 조직을 풀어나갈 때 더 극적일 텐데도 말입니다. 말하자면 오즈에게 가족영화라는 소재는 그것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오즈 본인 말고는 모를 테지만, 아무래도 오즈의 삶을 되짚어 보면 전쟁이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오즈 영화에는 전반적으로 전쟁에 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태도가 있습니다. 또한 오즈의 일기장에도 전쟁은 그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반면 오즈는 전쟁이라는 현상보다 전쟁 이후의 풍경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후기 오즈입니다.
오즈는 전쟁 동안 총 세 차례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살아 돌아왔습니다. 두 차례의 전쟁은 별 다른 역할이 아니었으나 단 한번 중일 전쟁에 끌려갔을 때 오즈는 화학무기를 퍼뜨리는 부대에 징집됩니다. 말하자면 오즈는 이때 전쟁의 참혹함에 가장 근접했습니다. 오즈는 이 중일전쟁 동안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고, 한국인 위안부를 건조한 시선으로 서술합니다. 이때 오즈는 전쟁에 관해서는 어떠한 가치 판단도 내리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대신 오즈는 가족과 자신의 관계를 성찰했습니다. 그런 성찰이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오즈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고, 종전 이후의 오즈 영화는 본격적으로 가족을 소재로 촬영되기 시작합니다. 그 시작이 바로 <나가야의 신사록>입니다.
<나가야의 신사록>은 무척 단촐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여인이 고아로 보이는 소년을 거둔다는 이야기입니다. 시기적 맥락을 보았을 때 이 꼬마는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를 매몰차게 대하던 여인은 마침내 아이에 정을 붙이게 됩니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가족이 된 겁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사실상 아무런 관계도 없으니 이른바 '유사가족'인 셈인데, 오즈는 이 영화를 통해 국가가 국민을 그렇게 보듬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족이라는 게 국가의 축소라고 말할 수 있다면, 국가는 곧 혼자 남겨진 국민을 거두어 가족의 품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전후 오즈 영화에서 나타나는 가족의 양상은 사실상 전쟁을 겪은 국가가 슬픈 국민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관한 묘사입니다. 앞서 말했듯 오즈에게는 전쟁범죄의 엄격함이나 핵으로 인한 피폭 문제보다는, 홀로 남겨져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즉 오즈에게 전쟁이란 영화 속의 사물처럼 그저 인물의 삶을 위해 소모되는 배경에만 불과했던 셈입니다. 그래서 오즈의 영화 <꽁치의 맛>에는 전쟁 때의 해군가를 부르면서도 '좋았었다'라고 말하지 않는 특이한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전쟁을 기억하지만 감정을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전쟁은 일종의 추상으로 남겨졌습니다.
그래서 오즈는 공과 사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삶은 드라마다'라는 단일한 공식을 세웁니다. 어쩌면 무책임하기도 해 보이는 이 태도는 오즈의 인물들이 왜 흘러가는 대로 사는지에 대한 이유가 됩니다. 오즈의 영화 <부초>에서 그것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어렸을 때 자식을 버린 부모가 불현듯 자식 앞에 나타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룹니다. 아버지는 떠돌이 유랑극단이어서 아이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아들은 그런 아버지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며 분노합니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단지 이름으로만 남았고 그래서 두 사람은 가족이지만 공적인 관계입니다.
그런데도 오즈는 두 사람을 애써 화해시키려 하지 않고 그저 내버려 둡니다. 그건 공과 사가 아니라, 그것 또한 가족의 형태 즉 삶의 일부라고 말입니다. 아마 이런 모습에서 전후 일본의 정치적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영화를 보는 눈이 있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쇼치쿠 누벨바그 친구들은 오즈의 이런 태도를 '소극적'이라거나 '보수적'이라는 말로 비판했습니다. 그런 태도는 정말로 보수적인 것이며 삶은 드라마가 아니라 투쟁의 역사라고 말입니다. 아마 우리에게는 정부가 명확하게 사죄해야 한다는 누벨바그 친구들의 말이 맞는 것이겠지만, 오즈의 말도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 본다면 충분한 귀감일 듯합니다.
오즈와 같은 '홈드라마' 장르가 일본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요, 전쟁을 겪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일본의 고전적인 홈드라마가 출현한 시기가 전후일뿐더러, 평이한 사건 없이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는 점은 공습으로 무너진 집을 떠오르게 하거든요. 도쿄 공습 때와 관동 대지진, 혹은 원폭 투하로 죽은 건 태반이 민간인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집을 잃었거나, 폭탄을 맞아 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렸어요. 이렇게 집에 대한 공포와 집착이 아무런 사건 없는 '안전한' 집으로 묘사된다는 견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전한 집에서 원폭처럼 충격적인 일은 둘 중 하나입니다. 가족의 죽음 관계의 단절, 혹은 외부인의 침입인데요.
일본은 전자였고 오즈 이후에는 후자로 변하게 됩니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을 보면 주인공이 그냥 미친놈인데 사실은 어린 시절의 짤막한 회상 속에 전쟁의 기억이 담겨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군인 앞에 무력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비뚤어졌다는 점에서 결국 어떤 방법으로든 전쟁과 관련될 수밖에 없어요. 애초에 현대 일본은 원폭 위에 세워진 피해자이자 가해자 국가이니까요. 그런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하는 게 '집'이라는 공간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