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는 뛰어난 영화감독이자 성격 좋은 이웃이기도 했다. 오즈 주변 인물과의 인터뷰를 보면 대체로 칭찬 일색이고, 우리는 그 오래된 자료를 보며 오즈를 회상한다. 그 자료 중 <도쿄가>는 오즈를 가장 잘 알리라고 생각되는 두 사람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오즈의 페르소나인 배우 류 치슈, 그리고 촬영 감독 아츠타 유하루가 오즈에 관해 말하는 장면은 단순히 영화 이상의 무언가가 그들 사이에 있음을 보여준다.
<도쿄가>에서 빔 밴더스는 그들의 유대를 <동경이야기>와 같은 후기 작품에서 찾는다. 오즈 후기 홈드라마의 배경인 도쿄가 당대 가족의 해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나라의 중심인 도쿄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가는 이 현상을 카메라로 붙잡으려는 시도가 오즈에게 있었다. 오즈 또한 당대 사람으로, 결혼은 하지 않았으나 늘 협업하던 스태프만을 기용함으로써 가상의 가족을 이루어 냈다. 말하자면 오즈의 영화는 가족이 만든 가족영화인 셈이다.
가족 영화로 유명한 오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의아해 보일 수 있다. 가족의 해체와 결합을 그려내는 감독이 정작 가족의 테두리 밖에 있으니 말이다. 그는 사망 전까지 제도적인 가족을 만들지 않았고, 앓아누운 병상에는 유대 깊은 스태프들이 줄곧 찾아오곤 했다. 그에게 가족은 없었으나, 가족의 품에서 편하게 잠들었다. 일설에는 오즈 영화에도 출연했던 당대 최고의 여배우 하라 세츠코와 연인 관계였다는 소문도 있으나, 사실무근이다. 다만 그녀가 오즈의 사후에 은퇴를 선언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녀의 나이 43세였다.
제도적 관계의 테두리 밖에서 공과 사의 경계를 허물며 살아갔던 오즈의 모습은, 아마도 그가 겪은 일련의 경험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오즈는 생전에 세 차례 참전한 바가 있는데, 그중 37년도 중일전쟁에서 오고 간 편지를 모아서 낸 책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에서 오즈의 인간상을 엿볼 수 있다. 오즈는 책에 수록된 자신의 일기에서 전쟁에 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하 요약하자면, 국가의 부름을 받았을 뿐 전쟁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이와 같은 발언이 현대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감독이라기보단 전쟁에 불려간 어느 청년의 이야기에 가까워 보인다. 어떻게 보면 전쟁의 참상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듯 보이지만, 가장 친한 친구의 사망 소식에도 단 한마디만을 썼던 것을 보면 그저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길고 간결한 그의 숏처럼 문체 또한 몹시 정갈해, 이것이 참전 수기임을 깜박하기도 한다. <동경이야기>에서의 류 치슈를 떠오르게 하는 문체를 보고 있노라면, 류 치슈가 오즈의 페르소나로 발탁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오즈를 역사에 휘말린 평범한 사람으로 본다면 그 수기는 어딘가 모르게 초연하게 느껴진다. 친한 사람의 죽음도 눈앞 전쟁터의 죽음도 수기에는 제대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의 책임을 피하려 들지도 않는다. 오즈는 단지 하루 있었던 일을 몇 마디로 작성할 뿐이었다. 대부분의 날이 두세 마디 정도의 짧은 글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그다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오즈에게는 전쟁터 또한 삶의 일부였던 것처럼 보인다. 말 그대로, 무념무상이었던 셈이다.
이 무념무상한 태도는 오즈의 영화로 옮겨가 후기 오즈를 완성하게 된다. 오즈 초기 영화는 후기 영화만을 본 이들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데, 그런 것을 보면 아마도 세 차례의 전쟁이 그의 작품관을 성립하는 데 일조했으리라 추측해볼 수 있다. 분명, 초창기 오즈는 영화사에서 요구하는 영화를 만들었고 감독경력으로도 초보여서 당대 다른 영화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후기로 갈수록 경력이 쌓여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49년도 <늦봄> 이후로는 연출을 비롯한 시나리오 체계를 확립하게 된다.
그 무엇보다, 오즈의 영화가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것은 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엿볼 수 있어서다. 분명 오즈의 초기와 후기 영화는 느낌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한결같이 느껴지는 면이 있다. 그것을 기준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침내 <꽁치의 맛>에 다다른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가 없다. 그런 필모그래피 변화상에서 우리는, 나이 들어가는 오즈의 노련함과 감독으로서의 성장 두 가지 모두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오즈의 영화는 단순히 영화 테크닉으로만 보게 되는 게 아니라, 오즈라는 사람에 관한 존경심을 품게 된다. 타르코프스키에게 고향과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면 오즈에게는 가족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시인이자 감독이었으며 인간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즈의 말년은 전통적인 스튜디오 시스템의 붕괴와 TV 보급으로 영화가 위협받았었고, 그의 시대를 후배들에게 넘겨 주어야만 했다. 오시마 나기사와 마스무라 야스조로 대표되는 이들은, 새로운 흐름을 표방하며 오즈의 영화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옛것 취급했다. 오즈가 그리는 가족의 해체는 이미 영화보다 십수 년 전에 이루어졌었고, 가족의 결합 과정은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에 가까웠다. 당연하게도 오즈가 이를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오즈가 꿋꿋하게 홈드라마에서 관계의 단절과 원심으로의 회귀를 말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전의 오즈 영화가 대체로 계절에 빗대어 내년을 기약하는 것과는 달리, <만춘>에서 보이는 것은 계절을 목표 삼는 이들의 모습이다. 계절은 다시금 돌아올 것인데 어떻게 그것을 목표 삼겠다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매년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방식은 초기에서 후기까지 줄곧 드러나 있으며, 이는 사소한 변형을 겪어도 오즈는 오즈라는 것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