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스웨덴 부부 Jul 30. 2018

교실, 그리고 보통의 날들

일상이 반복되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붙잡고 싶은 기억들



수능을 마친 다음 날 떠났던 고등학교 졸업여행. 학교에선 너희들 그동안 수고했다며 머리 쉼 좀 하라고 졸업여행을 보내줬겠지만 나는 그 여행 내내 그리고 그 여행을 마치고 나서도 끝 모를 공허함에 사로잡혔다. 내가 그렇게 심란했던 까닭은 망쳐버린 수능 때문이었지만 한편으론 6,3,3으로 이어졌던 내 학창 시절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는 섭섭함도 있었다. 날 좋은 봄가을에 한 번씩 가던 소풍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로 서로 깔깔 웃던 친구들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수능 공부도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그 겨울, 3년 동안 고등학교라는 공간에서 함께 수업을 듣고 야자를 했던 우리들은 각자의 수능 성적표를 받아 들고 제각각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일찌감치 재수 준비를 한다며 재수학원을 알아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대학의 논술 면접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붕 떠버린 고3 교실에서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껏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며 달려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수능이 끝난 겨울, 고3의 교실에는 각자의 삶이 싹트고 있었다. 

 

입김이 하얗게 나던 이듬해 2월 우린 졸업을 했다. 학교 정문에는 서울대 00명 합격, 연고대 00명 합격, 의치대 00명 합격이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있었고 강당에 모인 우리는 지루한 졸업식 행사가 어서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면서는 지긋지긋한 학교를 벗어난다는 기쁨과 함께 '학교'라는 공간을 영영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좋든 싫든 학생이기에 내 옆에 당연하게 붙어 따라다니던 것들 - 시험, 교복, 급식, 친구들, 선생님, 학생 할인, 소풍, 운동회, 수학여행 - 이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마저 졸업한 나는 지금 매일 학교로 출근한다. 다시는 갈 일 없을 것 같던 소풍도 봄가을에 한 번씩, 투박한 금속 식판에 받는 급식도 매일 먹는다. 물론 수학여행, 운동회, 학예회 같은 큰 행사들도 해마다 찾아온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엔 소풍 전날이면 다음 날 어떤 즐거운 일이 일어날까? 하는 설렘과 두근거림을 안은 채 밤잠을 설쳤다면 이제는 설렘보다 걱정이 앞서게 됐다는 것. 내일 무슨 문제가 일어나진 않을까? 혹여 돌발상황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 그리고 반 아이들을 모두 챙겨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 이렇게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학교는 이제 내 직장이 되었다.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많은 사람들의 직장살이, 우리의 삶이 대개 그렇겠지만 '학교'라는 공간은 특히나 매일 비슷한 일상이 반복된다. 짧게 보면 일주일, 길게 보면 1년 단위로 비슷한(같은) 일이 반복되고 3월의 찬바람 속에 들어있는 설렘과 긴장은 어느덧 익숙함으로 바뀌게 된다. 짜인 학사일정에 따라 학교와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움직이고 1년 주기로 새 시작이 반복되는 구조. 그런 까닭에 때로는 아침에 눈을 뜨면 그날 하루가 머릿속에서 저절로 그려질 때도 있다. 물론 그 속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 내게 당황스러움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학교 안에서 겹쳐지는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한 달, 한 학기, 1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아이들과 복닥거리며 지내서 그런 걸까?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는 시간이 야속할 때도 있었고 비슷한 듯 반복되는 학교의 일상 속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똑같을 것만 같은 교실의 일상 속에서 찰나의 깨달음을 얻을 때가 가끔 있다. 다음 날이 되면 본인들은 잊을지도 모를 아이들의 몇 마디 이야기 속에서 머리가 띵 울리기도 하고 반 아이들이 쓴 글을 읽다가 문득 어떤 단어나 문장이 내게 크나큰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고 전쟁 같은 하루가 지나가고 쓸쓸함이 내려앉은 오후 3시의 교실에서, 텅 빈 교실을 바라보다가 깨달음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것들은 좋든 나쁘든 뇌리에 남아서 끊임없이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할 평범한 교실의 이야기들, 그 순간을 흘려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과 나를 둘러싼 일상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다. 거기에 더해 욕심을 부리자면 교실과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아이들과 학교, 교사 그리고 교육에 관한 이야기들을.





안녕하세요:-) 스웨덴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전직 PD, 현직 교사 부부 조수영, 이성원입니다. 스웨덴에서 현지 교사들을 만나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고 스웨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부부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 교육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얼마 전 스웨덴 생활기와 스웨덴 사회에 대한 관찰을 담은 책 <헤이 스웨덴>을 출간했습니다. 스웨덴에서 찾은 우리만의 삶의 속도로 한국에서 새로운 일상을 꾸려나가고자 합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74867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