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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Feb 06. 2024

두근거림을 찾아서!

경험의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을까?

넓은 들판을 미친 듯이 달리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심장이 터질 것 같지만 나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웃음이 터져 나온다. 넘어지고, 뒹굴고, 다시 일어나 달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나의 상상. 과거의 내가 자주 하던 상상이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서 답답할 때 나는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리고 이 상상을 할 때면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내 가슴은 두근두근 거렸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빨리 도달하고 싶은 마음에 두 눈을 감고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이 상상은 어느샌가 마침표를 찍었고, 나는 몇 년 전에 그 사실을 인지했다. 순간 가슴 한켠이 허전한 게 조금 슬펐다. 시간의 흐름, 그 흐름 따라 움직이는 나의 삶에 대해 별다른 생각도 고민도 없던 나였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청춘이 끝나버린 것 같아서, 딱히 좋아한 적 없는 내 청춘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함께가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렸던 것 같다.


지나간 내 시간이 예쁜 실루엣을 그리고 있었다. 실루엣 안으로 들어가면 빛과 어둠이 뒤섞여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지만 실루엣은 예뻤다. 그리고 그 실루엣을 따라 다른 청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소설에서. 나는 이제 그들을 공감이 아닌 향수의 감정으로 바라본다. 언제 여기에 온 지도 모르게 나는 여기에 있고,  청춘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들이 있다. 어떤 것들은 변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어떤 것들은 변해서 아쉽다. 억지로 변화를 붙들어 매다가 집착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나를 잃고 망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나는 들판 위를 달리고 싶어 하는 나를 되찾고 싶다.


달리고 있는 나는 세상이 궁금하다. 사람이 궁금하다. 어서 모두 만나고 싶고, 어서 모두 경험하고 싶다. 지금의 나는 아직도 궁금한 세상이 있고, 아직도 궁금한 사람이 있지만 이것은 매우 선택적 호기심이다.  달리고 있는 나는 세상의 추함을 알고 싶다. 세상의 부조리, 세상의 비극, 세상의 부당함, 모든 것을 알고 싶다. 지금의 나는 어둠 앞에서 눈을 감는다. 내가 원하는 건 경험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사람이 아니다.


호기심은 대개 실망으로, 상처로 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호기심의 문을 조금씩 닫으며 내 안에 나름의 데이터들을 쌓아갔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수집한다. 그것은 내가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를 만드는 일을 했었기 때문에 생긴 버릇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만나면, 그 만남이 아주 잠깐이라도 그의 말과 행동, 표정을 보고, 내가 설정한 상황에 그를 대입해 본다. 그렇게 그 사람을 나는 파악하고 이해한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이 후에 어떤 행동을 하건 크게 실망할 일이 없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 있다.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긍정적 놀라움보다는 부정적 경멸을 불러일으킨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미리 결론 내리고 그 사람의 모든 것들을 판단하는 굉장히 큰 단점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그렇게 실망스러운 나.


경험의 부작용을 극복하고, 한때 내 안에 있었으나 사라져 버린 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아, 아니다. 한때 내 안에 있었으나 사라진 것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난 그 이상을 원한다. 내가 원하는 건 경험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사람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진심이다. 뜨거운 마음이다. 제대로 알고 싶은, 진짜를 알고 싶어 하는 두근거림이다.


모르겠다.

설렘이,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다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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