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도 연습이 필요한가?
퇴사 후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나의 삶에 작으나마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찾아 왔다. 18년간 달려온 시간들 속에서 잠깐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아내와 지인들도 머리를 비우고 새로운 일을 시작 할 수 있게 쌓여 왔던 것들을 비우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일매일 일이 있던 18년간 직장생활의 습성이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말았다. 잘 갖추어진 시스템에서 본인이 맡은 일에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충실히 이행하는 데 익숙했던 일상과 정기적으로 받아오던 수입이 없어진 것에 대한 불안이 생각과 마음을 조금씩 상처 입히고 있었다.
불안은 스스로를 파고들어 힘겹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낮아진 자존감 또한 더욱 불안을 가중시킨다.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와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이 회사라는 큰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고스란히 들어 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낮아진 자존감과는 다른 느낌이다. 냉혹한 사회에 나와 보니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무력감이 생각을 사로 잡고 마음을 나약하게 만든다. 퇴사 후 누구나 겪는 감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 도전하는 누구나가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이런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존감 찾기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달라진 상황에 대한 불안을 스스로 받아 들이고 자기를 사랑하고 지금을 사랑하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지난 18년간 많은 일들을 해 왔다. 방송, 각종 TFT, 해외 파견 업무 등 무수히 많은 업무에서 성과를 이뤄냈다. 모든 것들이 혼자 이뤄낸 것은 아니지만 나의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지금까지 성실히 회사생활을 해 왔다고 자부하며 그래서 팀장의 자리까지 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30명이 넘는 팀원들이 있었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며 멋진 일들을 해 왔다고 머리 속으로 수십번씩 되뇐다. 그렇게 자기가 해왔던 일들을 정리하며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들을 찾아 나갔다.
불현듯 퇴사도 연습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퇴사 후 느끼는 다양한 상황과 경험하지 못한 감정들에서 평정심을 찾기 위해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이란 긴 여정에서 연습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도 든다. 그 때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경험을 통해 삶을 느끼고 만들어 가는 것 또한 매력적이리라. 인생의 절반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퇴사라는 선택을 하였고 그렇게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있다. 남은 인생은 완전히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생각해도 늦지 않은 때인 것 같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잠시라도 긴 인생에 쉼표를 찍는 시간을 가져라.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소중한 지금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대들이 걸어가는 길이 곧 그대들의 길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