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퇴사자 생활 지침서

by 변준수

최근에 브런치에서 글을 하나 읽었다. '퇴사하면 이름이 없어진다'라는 주제로 쓴 글이었다. 꽤나 공감이 됐다. 글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이 있었다.


'모임에 나가서 나를 소개하려고 하면 막막해진다. 나를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퇴사자들이 쉬면서 하는 일들은 비슷한 편이다. 여행, 모임, 오랜만에 친구 만나기, 소개팅 등등 그동안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일을 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걸림돌이 있다. 퇴사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퇴사한 사실을 속 시원하게 말하고 모임에 나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사실을 숨기고 나간다. 잠깐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자기소개하는 1분 정도가 굉장히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퇴사 사실을 말하려니 좀 그렇고 안 말하자니 거짓말하는 느낌. 부담스러운 경험을 하고 나면 모임에도 나가기 싫어진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호구조사를 하는 편이다. 상대방이 신상정보를 묻지 않아도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는데 익숙하다 보니 이름, 나이, 직업 등 나의 단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데 익숙하다.


"○○ 회사에 다니는 포카텔로입니다"

"△△직종에 일하고 있습니다"

"나이는 ☆☆살이고 □□동에 삽니다"



movie_image (16).jpg 아직 만난 적 없는 당신의 이름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요? / 이하 영화 <너의 이름은> 포스터



당신의 이름은 김대리입니까?



'요새 누가 저렇게 자기를 소개하냐'라고 반론을 제기할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만나면 이런 식으로 자신을 소개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퇴사하고 나면 직장과 직업이라는 가장 평이한 소개 거리가 사라진다.


퇴사자들은 한 번쯤 평소 가고 싶었던 모임에 가본다. 어떤 모임에서는 퇴사자를 편견 없이 반기기도 하고 다른 모임에서는 직장이 없는 사람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을 만날 때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서, 퇴사 사실을 숨기려고 자리를 피하는 경우도 더러 봤다.


최근에 나갔던 모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예전에는 "글 쓰는 일을 한다"라고 소개한 후 추가로 물어보면 기자 일을 한다고 답했다. 요샌 조금 애매해졌다. "글 쓰는 일을 한다"라고 말한 후 기자 일을 했는데 지금은 퇴사했다는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 불안한 마음에 중언부언 말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나는 나니까.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당신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german-names-58b5a0e25f9b5860468bc4d3.jpg 자신을 표현하는 말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 이하 구글 이미지



너의 이름은?



직장 경험이 있는 20대 후반, 30대, 40대들은 회사라는 공간에서 나를 표현하는데 익숙하다. 그렇다 보니 일과 직장을 떼놓고 자신을 생각해본 경험이 적다. 자연인으로서 나, 내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적다. 생각보다 단체가 주는 소속감은 큰 편이다. 소속감이 아니더라도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대부분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을 '직장의 ○○'로 생각한다. 특히 소속된 무언가가 있어야 안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회사에 충성한다. 그렇다고 내 모습이 △△ 상사의 김대리만 있는 건 아니다. 데이트를 하는 나도 있고 자식으로서 나도 있다. '나'라는 페르소나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GLWOD5248XJQKC43UFRM.jpg 직업과 직책을 빼더라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많다 / MBC 무한도전


퇴사한 후 사람들을 만날 때 '글쓰기 좋아하는', '영화를 즐겨보는', '호기심이 많은' 등으로 나를 표현하곤 한다. 이렇게 소개하면 사람들은 "왜 글쓰기가 좋아요?", "어떤 글을 쓰시나요?", "어떤 영화 즐겨보세요?" 등의 질문을 한다. 서로 불편하지 않게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진다. 새로운 나를 표현하다 보면 진짜 나의 모습, 이름을 찾는 순간이 온다. 당신의 진짜 이름은 머릿속에, 마음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내 이름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맴돈다면 이번 기회에 고민해보길 바란다. 평생 동안 따라다닐 질문을 지금 만난 건 행운일 수 있다. 나중에 은퇴할 때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보다 지금 하는 게 낫다. 부모님 세대가 은퇴하고 한동안 방황하는 이유 중 하나가 '회사를 벗어나니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라는 이유였다. 직장에서 나를 찾을 수도 있다. 직장을 떠난 후 사라져 버리는 이름이라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생각할 시간이 많은 지금, 새로운 공간에서 말할 수 있는 내 이름을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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