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카페에 가다

퇴사자 생활 지침서

by 변준수

퇴사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이 글을 보게 된 분들과 문답을 주고 받고 있다. 많은 궁금증 중 하나가 "불안하고 답답한데 그렇다고 뭘 하기엔 애매할 때가 많아요"라는 질문이었다. 퇴사하기 전에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다. 마치 전역을 앞둔 말년병장의 마음처럼 세상에 무서울 것도, 거칠 것도 없다. 그런데 막상 퇴사하고 나면 생활이 시작된다. 판타지가 아닌 진짜 생활. 생활에 치이고 지루함에 익숙해지다 보면 뭘 하기 애매해진다.


이하 구글 이미지


익숙한 공간의 새로움


일전에 카페병과 헬스 만족병을 조심하라고 하면서 생각 없이 카페에 가는 걸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https://brunch.co.kr/@poccatello/243).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금 쓰고 있는 글도 카페에서 쓰고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놓고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으면 그나마 마음에 위안이 생긴다. 내 방에 있는 침대처럼 카페도 그렇게 익숙해진다.


집 근처에 조용하고 널찍한 카페가 많아 자주 들르는 편이다. 하지만 가던 곳에 또가니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다. 매일 같이 방문하다 보니 사장님도 내 얼굴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굳이 노는 사람처럼 비치기 싫어서 카페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기도 했다. 요새는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간다. 그러다가 카페 사장님이 내가 쓰는 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떤 콘텐츠를 넣을지 고민이라는 질문에 사장님은 "우리 동네에 브런치 카페 예쁜 곳이 많으니 한번 들러봐요. 환기도 되고 다른 게 생각날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브런치 카페? 괜찮은데?'


요즘 카페는 대화의 장이 된 느낌이 강하다. 카페에서 비즈니스 약속을 잡은 사람도 있고 데이트를 하는 사람도 있다. 차한잔 마시며 공부하는 카공족도 있다. 최근에 카페는 뭔가 명상을 하거나 조용히 차 한잔 마시며 100% 분위기를 즐기기에 애매한 장소가 됐다.


조금 다른 느낌의 여유



브런치 카페라고 특별하게 다른 점은 없었다. 외관도 내부도 일반 카페와 식당을 적절히 섞어 놓은 느낌 정도? 브런치 카페를 안가본 분들은 '카페인데 식사를 할만한 브런치 메뉴를 판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 같다. 조금 달랐던 것은 공기가 달랐다는 점이다. 차분하지만 여유가 묻어나는 분위기였다. 다들 식사에 집중하면서 대화를 나눴고 식사 후에는 대화에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조용히 책을 보거나 잡지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갓난아이와 함께 나온 주부도 보였다. 아이를 유모차에 재우고 본인은 카페에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브런치 카페에서는 꼭 무언가 하지 않아도 좋았다. 구운 베이글과 커피를 먹은 후 조용히 음악을 들었다. 한 10분쯤 음악을 듣다 보니 두세 곡이 끝났다. 가방 속에 있던 책을 꺼냈다. 요새 전에 공부했던 타로카드를 다시 독학하고 있다. 쉬는 기간 동안 기술하나 배워두면 좋은 법이니까. 생각보다 독학할만한 것들이 많다. 독학에 관한 내용은 나중에 한번 몰아서 쓰려한다.


책을 읽다 보니 조금 배가 고파 디저트를 시켰다. 먹고 쉬고 사색하고 집 앞에서 잠시 동안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편안한 세 시간을 보냈다. 퇴사 후에 늦잠 자는 사람이 많은 걸 생각해본다면 아침 겸 점심으로 브런치 카페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단출하게 식사를 때울 수도 있습니다 / 이하 촬영 포카텔로


퇴사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계획을 세우고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감조차 못 잡는 경우가 많다. 성인이 됐지만 온전히 어른으로서 사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 일까? 내게 주어진 시간인데도 주저하는 경우를 꽤 많이 봤다.


늦잠을 자면 오전 시간을 그냥 넘겨버리기 일쑤다. 꼭 브런치 카페가 아니더라고 집 근처에 토스트 가게나 간단한 식사를 파는 카페에 가보는 건 어떨까. 퇴사하고 일상이 너무 지루해졌다면 익숙해진 생활에 조금씩 자극을 주는 것부터 시작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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