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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준수 Jan 19. 2022

사랑에 빠져야만 한다면 사랑할 수 있을까

연애·맞선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

예전부터 연애, 맞선 프로그램을 자주 시청하곤 했다. 요즘 인기가 있는 <나는 솔로>, <돌싱글즈>, <솔로지옥>, <투핫> 등도 재밌게 보고 있고 예전 방영했던 <하트시그널>, <썸바디>, <테라스 하우스>와 같은 프로그램도 OTT를 통해 다시 보곤 한다. 과거엔 타인의 연애하는 모습을 보고 대리만족을 일부 느꼈다면, 요즘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연애 생활을 돌이켜보곤 한다. 


어릴 때는 이런 프로그램을 보고서 '저렇게 망가질 거 알면서도 왜 나갈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면 요즘은 '얼마나 간절하면 다 알면서도 저길 나갈까'라는 마음이 앞선다. 프로그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참가자 모두 내 짝을 찾기 위해 나왔다. 물론, 개인 홍보를 위해 나온 사람들도 있다. 유명해지려고, 내가 하는 사업을 알리는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지만, 여기서는 순수하게 사랑 찾아 나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단 며칠 만에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할까?


셰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는 딱 5일간 진행되는 스토리다. 두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엣은 첫눈에 반하고 이튿날부터 수많은 사건을 겪으며 결국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긴 하지만, 특별히 일을 하지 않은 채, 돈 있고 사랑만 하려고 한다면 가능할 법도 하다. 아마 그 시절에는 그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월요일에 지친 몸을 이끈채 억지로 출근하고 금요일에 고개를 푹 숙인 채 퇴근하는 현대판 일개미들에게 5일간의 사랑은 로또보다 일어나기 힘든 현실이다. 우리는 5일간 주야장천 일을 하지, 누군가를 만나 사랑할 시간이 부족하다. 


관점을 TV 안으로 바꿔서 보자. 이런 만남, 연애 프로그램에 나오는 인물들은 말 그대로 인물이 좋다. 잘생기거나 예쁘거나, 아니면 능력이 좋거나 훤칠하다. 배우를 보면 '저건 연기지'라는 생각에 몰입이 안되지만, 비 연예인이 나오면 '나도 저렇게 될까'라는 감정이입이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리얼리티 드라마를 보는 느낌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잘 생기거나 예쁘고, 매력 있으며 능력도 갖춘 사람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찾는다. 다시 말하면 앞서 언급한 '연애할 시간이 부족하다'라는 말의 방증이 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달라진다. '봐봐. 저런 사람들도 연애할 시간이 부족해서 저런데 나오는데 내가 못하는 게 당연하지'라던가 '저렇게 잘난 사람들도 저기 가서 짝을 찾는구나. 난 어디서 찾아야 하나'라고 한숨 쉬기도 한다. 연애라는 게 워낙 노력과 집중,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일이기에 쉽게 시작하지도, 다시 하려고 마음먹기도 힘들다. 행복한 진흙탕, 고통스러운 동행이랄까. 다시 저 진흙탕에 들어가기 싫은 사람들은 모니터를 통해 나오는 모습을 보며 웃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하트 시그널'이나 '테라스 하우스' 같은 프로그램 정도가 한 달 남짓, 그 이상의 기간동안 같은 공간을 사용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반해, 나머지 프로그램들은 짧게는 5일, 길어야 9일 안팎의 시간을 공유한다. 물론 사랑 하나만 해야 하고 거기에 몰두하면 누구나 그렇게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짧다. 그럼에도 눈물을 흘리고 속상해하며 화를 내는 참가자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을 볼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수개월, 수년에 걸쳐 볼 수 이쓴 사랑의 모습들처럼.


연기를 잘 못하는 비연예인들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나 시청자 모두에게 진정성 있는 반응으로 다가온다. 나 역시 그곳에 꽂아두면 그렇게 반응할 듯싶다. 하지만 그 공간을 나와서도 사랑이 이어질까. 궁금하다.



악마의 편집을 알고도 가는 사람들


연애 프로그램이 방송에 많이 나오지 않았던 과거에야 방송국의 악의적인 편집을 잘 알지 못한 채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나오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내 이미지가 방송에 의해 왜곡될 수 있는 걸 알고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프로그램은 인기가 많다. 최근에도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에서 논란의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나가려는 사람들은 줄을 섰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다양한 생각을 상충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모든 이가 연애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 결혼은 더더욱 개인 선택의 영역으로 치부된다. 그럼에도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해 만남을 이어가거나 여러 커플 매칭 모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꽤 많다. 내 모습을 수치화시키는 게 싫다는 사람들도 검증된 상대와 만나는 걸 마다하진 않는다. 이런 프로그램은 최근에 수많은 만남 어플이 인기 있는 현상과 맞물린다. 물론 대부분 어플에서 남성 사용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어쨌든 내가 찾아 나서고 검증하는 절차를 줄이고 나랑 맞는지만 보겠다는 생각이 깔린 선택이 아닐까 싶다. 조만간 드라마 <블랙미러>에 나온 100% 성공률의 연애 매칭 어플이 실제로 나올지도 모른다. 


다양성이 사회의 화두가 된지는 이미 오래다. 나와 다른 것이 당연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도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게 성숙한 사회, 요즘 사회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연애까지 내가 싫어하는 것, 불호의 대상과 만나고 싶지 않은 것도 사람의 마음이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게 자유로워졌지만, 반대로 그만큼 불특정 다수에게 반박을 당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졌다. 


'적당히 드러내면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프로그램 출연자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깔린 생각일 것이다. 프로그램 취지에 맞지 않게 선을 넘는 행동을 한 참가자들도 있고, 일부 행동만 보고 도를 넘게 비난하는 시청자들도 간간히 보인다. 그럼에도 모두가 이 프로그램과 현상을 즐기고 참여하고 싶어 하는 건 이러한 이유가 있지 않은 걸까. 사랑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내 마음 하나 가꾸고 지키기 어려운 세상에서 타인의 마음을 얻는 건 쉽지 않다. 가끔은 진심만으로는 안 될 때가 있다. 


사랑을 찾든, 반려자를 찾든, 다른 목적을 이루든 저렇게 나서는 것 자체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동안 상대에 대한 확신과 믿음, 그리고 인연을 찾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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