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춘식 May 10. 2024

신랑·신부도 친구가 필요합니다

「결혼 이주 남성」#4


새신랑


'새신랑'은 참 이상한 단어다. 신랑 자체가 갓 결혼한 남편, 배우자를 일컫는 말인데 그 앞에 '새-'라는 접두사를 붙였다. '역전앞'처럼 문법적으로 잘못된 말인가 하고 찾아보니 있는 단어여서 더 놀랐다. 영어사전을 뒤지니 새신랑을 'new Groom'이라고 적고 있었다. 헌 신랑의 반대말도 아닌데 새신랑, 새신부에서 새롭다는 의미를 유독 강조한 느낌을 받았다.

 

단어를 보면서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하니 새로운 지역에 새롭게 정착한 새내기인 내가 떠올랐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핑계를 대고 새신랑에서 친구까지 이끌고 왔다. 살면서 친구는 언제나 필요하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 한 지붕 아래 사는 식구,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이웃사촌,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같은 학교 동창생이나 동기 말고 말 그래도 친구. 특히, 새로운 지역에서 살게 되면 누군가 의지할 상대가 필요하다. 그 지역 사람과 사귀거나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과 교류를 한다면 외로움을 달랠 수 있고 아무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의지할 누군가를 얻게 된다. 


생각 이상으로 사람은 살아가는 큰 이유가 된다.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부모들, 친한 친구의 추천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들의 모습에서 삶이 돈과 의식주만으로 해결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나 강릉에서 대학을 다닌 청년들 중에는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 후에 이 도시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는 이가 절대다수였다. 원하는 일자리가 없다는 게 역시 첫 번째 이유였고, 친구들이 모두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 <잠시 살러 왔습니다> '지역에는 왜 2030이 적을까'에서 - 


강릉에 관한 글을 연재할 때 적은 내용이다. 강릉 토박이들은 예상보다 많이 고향을 떠났다. 일자리가 없는 게 우선이었고 그다음은 친구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문화생활을 즐기기 힘들다는 것도 부수적인 이유에 들어있었다. 반면 서울에서 강릉으로 오는 이들은 새롭게 친구를 사귀고 생활을 공유할 지인이 늘수록 그 도시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강릉에 일자리, 생활권역이 자리한 이와 결혼하면 정착할 확률을 더욱 커진다. 


나는 조금 특별한 경우다. 와이프의 직장과 생활권에 내가 이동해 새로운 일자리와 일상을 구현해야 했다. 강원도 원주로 가기로 마음먹은 이유 중 가장 큰 게 아내의 친구, 네트워크, 그리고 종교 공동체였다. 수도권에서 성장하고 살아오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을 만났는데, 좋은 이들도 많았지만 폐쇄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인 사람을 자주 봤다. 기독교도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다만 내가 만난 이들과 경험에서는 타인에게 이해를 구하거나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논의하며 발전적인 답을 도출하려는 이가 적었다. 그래서 아내를 만날 때도 편견을 갖고 만났다. 그런데 아내와 그녀가 다니는 교회 사람들은 조금 달랐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 담임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평소 갖고 있던 목회자, 성직자에 관한 편견이 사라지는 것에 개인적으로도 놀랐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함께 수도권으로 가자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임신을 하게 되면 임신한 몸으로 서울과 원주를 출퇴근할 텐데 그것 역시 아찔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에게 지금 알고 있는 친구들, 지인들, 네트워크보다 더 나은 이들을 서울에서 소개해줄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2023년 가을에 이사 오고 결혼식과 신혼여행, 몇 차례의 집들이를 하고 나니 시간은 벌써 2024년 2월을 넘어가고 있었다. 일이 좀 마무리되자, 일상에서 느끼는 걱정들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하나가 일자리고 다른 하나가 외로움이었다. 물론 아내는 좋은 사람이고 아내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 역시 즐겁다. 그런데 그녀의 지인들과 친구, 인맥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나는 나의 친구와 이야기 상대, 생각을 공유할 이들을 만나야 했다. 고민하다가 결론을 냈다. 직접 모임을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잘 운영되는 모임에 들어갔던 강릉과 달리, 이곳에서는 내가 만드는 편이 나았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로컬의 2030과 접점을 넓혀간 강릉의 모임들은 나름 순조롭게 운영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내가 들어가서 활동하기만 하면 됐는데, 원주에서는 그런 모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원주 토박이, 원주로 이주해 온 사람들, 관공서 이전으로 이곳에서 일만 하는 사람들로 구분되는 데다가 이들은 한 데 섞이지 않았다. 모임을 만들면서 여러 커뮤니티, 카페, 서점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이어 보기로 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대화 나누는 모닝커피클럽을 만들고 사람들과 생각,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사람들이 잘 오지 않았다. 


모임에 가장 자주 나오는 C 씨는 '원주에서 이런 걸 할 사람이 없을 텐데, 누가 하는지 궁금해서 왔어요.'라고 했다. 다행히 지금은 조금씩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있다. 사람들과 가벼운 이야기부터 조금은 묵직한 대화까지 진행하면서 듣는 사람, 말하는 사람 모두 영감, 아이디어, 긍정적인 감정의 변화를 얻어가고 있다. 



또 하나는 기존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과 만나는 것이다. 원주의 기획자 모임을 알게 되었고 멤버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원주 여기저기에 있는 이들을 알아가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이 혼자 힘으로 접점을 찾기 어려운 사람이나 단체, 장소를 알아가면서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외로움을 잊고 살게 된 부분도 너무 좋지만, 이방인처럼 떠다니던 강릉과 달리 이 도시의 일원으로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배우자뿐만 아니라 나와 일상을 공유하는 지인, 친구들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새 도시에 스며드는 기분이 든다. 


새롭게 정착하려는 도시일수록 정보가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줄일수록 도시에 대한 불만이나 반감, 서운함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있다.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갈수록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적막함은 익숙함과 따뜻함으로,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하는 고민은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으로 바뀌고 있다. 


모닝커피모임을 하면서 우연히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K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나와 같은 동에 사는 40대 작가 분과 내가 공통분모가 많다며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다. '친구를 사귀어야겠다'라고 맘먹고 나서지 않았다면 영원히 알지 못할 수도 있었던 사실이다. 

이전 03화 결혼하길 잘 한 거겠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