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춘식 Apr 26. 2024

태어난 곳인데 어색합니다

「결혼 이주 남성」#2

아.....네....


요즘은 동창회라는 게 유명무실해져서 친한 친구들 위주로 연락하고 만나는 게 일상이지만, 살다 보면 가끔 잘 모르는 데 아는 척해야 하는 지인, 동창, 동료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과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애써 친한 척해야하는 상황은 어색하고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얼굴은 아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나 그 사람이 추억이랍시고 열심히 무엇인가 읖조리는데 뭔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 굉장히 당황스럽다. 그때는 위에 적은 말처럼 "아....네"라고 적당한 긍정과 작은 호응이 섞인 반응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 


내게 있어 신혼생활을 시작한 새로운 도시, 원주가 그렇다. 태어났는데 기억나지 않고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반가워하면서 수많은 얘기를 하지만,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 그저 '네네'를 자동응답기처럼 말해야 하는 도시. 


정확히 원주는 내가 태어난 장소다. 지금은 세브란스 병원으로 더 많이 불리는 과거 기독병원에서 이틀간 어머니를 괴롭히며 태어났다. 어머니는 원주, 그리고 아버지가 처음 발령받은 횡성에 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갓난아기였던 나를 돌보느라 거의 집에만 계셨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났던 당시는 6월항쟁이 한창이었던 시기다. 이 도시의 대학생들 역시 전국의 여느 학생들과 같이 독재정권에 대항했다. 어머니는 병실 창문 너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최루탄을 뿌리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퇴원한 뒤에는 줄곧 원주 옆에 있는 횡성군에서 살았다. 하지만 돌잔치를 치르기 전에 그곳을 떠나서 기억이라고 할 게 없다. 초등학생 시절에 '네가 태어났던 곳'을 간다며 들른 횡성의 모습과 잘 익은 한우 한점이 떠오를 뿐이다. 


서울에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은 부분이다. 서울에 살면 어디에서 왔는지, 혹은 어느 동네서 태어났는지보다 지금 어디 사는 지를 궁금해하거나 스스로 말하게 된다. 합정, 홍대, 강남, 압구정, 잠실, 사당, 영등포, 신도림, 건대 등 집 근처 번화가를 말하기도 하고, 내가 사는 동네 자체를 언급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어떤 동네를 얘기해도 서울 지리에 밝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만큼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 사는지'를 굉장히 신경 쓰는 동시에 관심이 없는 게 서울 사람들이다. 


뮤지엄 산 조형물 / 촬영 변춘식


그런데 로컬에서 지내면 상황은 바뀐다. 아주 잠시, 약 2년간 강릉에 있으면서 느낀 점은 자기 지역 출신이거나 우리 지역에 관해 잘 아는 사람, 아니면 지역 출신이면서 오랜 시간 고향을 지키고 산 이들을 더 친근하고 좋아한다는 것이다. 강릉에서는 접점이 될 만한 부분이 적었다. 말 그대로 서울에서 강릉으로 일하러 온 이방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게 있어 원주가 강릉보다 조금 편하게 느껴지는 건 '저 태어난 곳은 원주입니다.'라고 말하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지는 걸 알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장치로 '출생지'를 밝히지만, 여전히 이 도시는 잘 모르는 곳이다. 출생지지만 고향이라는 느낌은 적은 곳, 하지만 진짜 고향처럼 여기고 살아가야 하는 동네가 되어서 억지로라도 친해져야 하는 곳이 원주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아내가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라는 사실이다. 대학 시절을 제외하고 학창시절, 취업 등을 이곳에서 해왔던 터라 그녀의 지인과 인맥, 네트워크 대부분 원주 사람이다. 그녀가 아는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있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들과도 안면을 트고 있다. 그 외에도 내가 여기서 새로 친해지고 알아가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익숙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뮤지엄 산 조형물 / 촬영 변춘식


반면 함께 신혼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내 역시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남편의 본적이다. 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바로 한 게 혼인신고였다. 관계의 불안함을 없애고 싶기도 했고 내 선택에 후회가 없기에 빨리 법적으로도 부부로 인정받고 싶었다. 서류를 작성하면서 여러 가지 항목을 적어 갔고 한가지가 눈에 띄었다. 


'본적'


호주제가 폐지되고 가족관계등록부로 바뀌면서 호주라는 개념도, 아내가 무조건 남편의 모든 걸 따라가야한다는 법적 효력도 사라졌지만, 본적은 여전히 어색하게 남은 항목이다. 나도 아버지의 본적을 따라 내 본적이 기입되어 있는데 할머니 댁을 자주 방문했지만, 본적지 주소는 한 번도 들른 적이 없다. 익숙하지 않은 곳인데 나를 나타내는 요소 중 하나다. 나중에 자녀가 태어난다면 그들 역시 이 주소를 받게 된다. 조부모가 돌아가시고 친척들도 아버지 고향에 남아 있는 분들이 거의 없기에 태어날 아이들은 나만큼 자주 그곳에 갈 일이 없을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장소가 나를 대표하는 서류상 고향처럼 명시될 것이다. 


요즘은 자신의 본적, 그대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때때로 남편 본적으로 바뀌어 '가족관계등록부'를 뽑을 때 당황했다는 사례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만약 와이프에게 이 상황이 적용된다면 아내는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도시가 자신을 대표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나와 이 도시의 관계가 아내와 본적보다 덜 어색하게 보인다. 나는 최소한 이곳에서 태어났고 살아가면서 친해질 구실이라도 있으니까. 


글 쓰기 전 아내에게 물었다.


"자기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기준지가 어디로 되어 있어? 혹시 내꺼로 넘어갔나?"

"잠깐만."

"나는 그대로야."

"아. 그렇구나 다행이다"


다행히도 아내는 자신의 본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내가 일면식없는 존재와 억지로 친해져야 하는 부담감을 겪지 않아도 되는게 좋았다. 그런데 변함이 없는 건 출생지로 서류상에 적힌 이 도시와 나는 여전히 친해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전 01화 자발적 결혼 이주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