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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춘식 Apr 18. 2024

자발적 결혼 이주민

「결혼 이주 남성」#1

내가 자기 하나 믿고 여기에 왔는데!


드라마에 클리셰처럼 나오는 대사이면서 가끔 아내와 장난기 섞인 상황극을 주고받을 때 하는 말이다. '우는 건가?' 싶을 정도로 가짜로 울먹이는 표정과 함께 이야기하면 아내는 이내 장난친다는 걸 알고 깔깔거린다. 


2023년 10월 첫째 토요일, 퇴사한 뒤 인연이 끊긴 강릉, 어릴 적부터 지냈던 서울, 경기를 떠나 강원도 원주시로 이주했다. 이사하던 가을날 스산한 공기처럼 내 마음 역시 외로움과 불안함, 그리고 약간의 기대감이 함께 했다. 강원도 원주라는 도시는 내게 낯선 곳, 익숙해져야만 하는 장소다. 아내와 함께 사는 우리 집이 있는 곳이면서 잘 모르는 동네다. 아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면서 아버지의 첫 발령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도시의 가장 큰 병원에서 내가 태어났다. 돌잔치를 하기 전에 여기를 떠서 기억은 없지만, 아버지는 내게 항상 말했다. 


"너는 원주에서 태어났어. 원주 사람이지." 


태어난 곳인데 고향이라는 느낌은 적은 동네, 아내의 모든 흔적이 남아있어 알고 싶은 도시, 알고 싶고 알아야 하고 익숙해져야 하는 곳,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하는 우리 집이 있는 곳. 이곳에 관해 생각하니 모임에서 만난 C 선생님의 말이 생각났다.


'결혼 이주 남성'


처음에 이 말을 듣고는 속으로 피식하고 웃었다. 나와는 다른, 뭔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모인 덩어리처럼 보였다. 내겐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으니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눈치챘다시피 이 단어는 '결혼 이주 여성'에서 여성을 남성으로 바꾼 형태다. 흔히 '결혼 이주 여성'은 '대한민국 국민과의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있거나 또는 혼인한 적이 있는 제3세계 국가 출신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결혼 이주 여성'이라는 단어에는 참 많은 부분이 녹아있다. 그래서 다양한 감정, 생각, 의미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한국으로의 결혼과 이주를 결심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본다. 


누군가는 매매혼이 아니냐고 비하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이역만리 외국땅으로 시집온 이들을 동정과 연민의 눈길로 바라본다. 이들을 관리해야 하는 출입국 사무소에서는 항상 점검해야 할 대상이며, 국제결혼 전문 업체에서는 고객과 연결할 상품이다. 이들이 사는 지역에서는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할 대체인력이고 떨어지는 출산율을 보충할 인원이다. TV, 유튜브에서 나오는 사건사고 해결 과정을 다룬 영상을 보면 이주 여성들이 강력사건의 피해자로 등장하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때때로 이들이 사회문제를 유발한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한국 국적만 얻고 이혼한 뒤, 재혼하는 행태를 꼬집는 뉴스도 있고 같은 국적의 유학생들을 등쳐먹는 이도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마다 자기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겪는 이야기가 다르기에 다른 이미지로 이들을 보지만, 확실한 건 이들은 소수고, 여전히 약자라는 점이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단어 '결혼 이주 남성' 다양한 의미와 생각, 시선이 담긴 이 말에 나를 대입할 수 있을까?



'결혼 이주 남성'


결혼과 이주, 그리고 남성 세 단어 모두 삶의 무게감을 크게 느끼게 해주는 단어들이다. 나 역시 결혼이라는 일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으며 생각보다 나 자신과 주변 환경까지 많은 부분을 바꾸고 때로는 찾아가고 있다. 유일하게 익숙한 것이라고는 아내뿐인데 결혼 생활이 그렇듯, 둘 사이의 무대가 연애에서 생활 영역으로 오면서 새로운, 가끔은 낯선 모습과 마주하기도 한다. 


이주는 더 큰 변화다. 서울에서 강릉, 그리고 원주로 연착륙했지만 터전이 마련되어 있는 곳을 떠나 낯선 땅에서 일거리와 생활상을 맞추는 건 예상보다 어려웠다. 일자리도 생각보다 많지 않고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기 밥그릇을 뺏기지 않기 위해 용쓰니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도 어렵다. 


남성은 어떨까.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보다 남성으로 살아갈 때 받는 혜택이나 유리한 점이 많다고 본다. 그럼에도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가는 서른 후반 남성이 인적 네트워크가 하나도 없는 새로운 지역에서 살아남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는 도전이다. 


그 누구도 스스로 '결혼 이주 남성'이라고 지칭하면서 이야기를 펼쳐가는 걸 본 적이 없다. 이 말을 들고 나온 나는 이 단어의 정의를 잘 내릴 수 있을까? 약간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된다. 새로운 도시에서 결혼과 이주, 그리고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사회학적 인간이라는 존재를 고찰하며 살아갈 내 앞날이 예측 불가능하기에 더 재밌을 것 같다. 분명한 건 타인에게 '결혼 이주 남성'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니는 이 도시의 첫 번째 사람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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