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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춘식 May 03. 2024

결혼하길 잘 한 거겠지?

「결혼 이주 남성」#3

잘 지내지? 별일 없지?


서울과 경기도에서 살다가 전혀 다른 지역으로 오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누구나 흔하게 던지는 질문. '잘 지내지?'와 '별일 없지?'는 누구에게나 쓸 수 있는 무난한 말인 동시에 여러 정보가 담긴 답을 한 번에 들을 수 있는 마법의 질문이다. 하지만 이런 물음들이 받는 답은 '응. 괜찮아.'이거나 '잘 지내지.'라는 동어 반복일 때가 많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누군가에게 받는 이 질문을 내게 다시 던질 때가 있다. 이혼을 하기 전까지는 무를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고, 어쩌면 평생을 가야 하는 맹세이기도 한 결혼 서약. 나는 결혼을 후회하고 있지 않나. '잘 한거겠지'라며 되뇐다. 그러면서 결혼의 의미를 고민해 본다. 국어사전에는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이라고 쓰여 있다. 흠....이걸로는 고민이 해결되지 않는다.



결혼은 결혼식?


결혼은 정말 무엇일까. 결혼식을 치르는 게 결혼일까. 아니면 다른 이와 집안 대 집안으로 결합하는 게 결혼일까. 아니면 혼인신고? 여러 생각이 지나갔다. 인터넷에 '결혼'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수많은 결혼정보업체, 웨딩전문업체 광고가 뜬다. 그리고 결혼과 이혼 건수에 관한 통계 정보도 이어진다. 그리고 결혼과 관련한 수많은 기사가 쏟아진다. 결혼은 숫자일까. 이 행위를 정의하는 수많은 단어가 계속된다. 계속 알아보면서 느낀 건 '이게 아닌데'였다. 이렇게 어렵게 얘기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이 행위, 제도, 현상을 어렵게 이해하려 한다.



'결혼'을 검색하고 나온 포털 사이트 결과 / 네이버 검색 결과 캡쳐


결혼식을 치르는 게 결혼이라면 나는 이미 결혼이라는 단계를 완수했다. 결혼은 신랑의 결심부터 시작이라고 들었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건 신혼부부가 웨딩플래너와의 만남이었다. 그들은 확실히 전문가였다. 일생에 한 번 혹은 그 이상 하는 사람이 적기에 수십, 수백번 결혼이라는 행사를 경험한 그들이 이야기의 주도권을 쥔다. 듣다 보면 '이렇게까지 돈을 써야 해?'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다들 하는 결혼'식'이 결혼이라는 행위의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한다.  


남들하는 대로 스드메를 했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청첩장도 찍어냈다.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맛있는 밥'이라는 소리에 음식이 잘 나오면서 가성비 좋은 대학 동문회관 예식장을 골랐다. 오랜 친구가 사회를 봐주었고 대학교 은사님과 친한 형님이 축가도 불러주었다. 일가친척과 지인들을 모시고 사랑의 서약서를 읽었다. 이걸로 끝일까?



서로 다른 것들의 결합?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의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방문객」 中 -



정현종 시인의 시로 잘 알려진 「방문객」의 구절이다. 이전에 광화문 교보문고 벽면에 거대한 현수막이 붙어 있는 걸 봤는데, 이 문구가 쓰여 있었다. 거창한 말로 꾸미지 않더라도 결혼은 법적, 인간적, 신체적 결합의 산물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결합이 더 많이 포함돼 있어 때로는 두렵고 무섭고, 갑갑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책임감이 눈에 드러나서였을까.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맡아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출발했을까. 이 감정은 꽤 무겁게 다가왔다.


나와 나의 배우자 간의 결합이면서 짧게는 20년 길게는 30, 40년 혹은 그 이상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이들이 하나의 생활해야하는, 생활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다음으로는 그와 나 뒤에 있는 환경들이 맡닿는 환경의 결합이다. 집안 대 집안의 만남이 될 수도 있고, 그와 내 인맥들이 만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가 접점을 이루며 충돌이 되기도 하고, 융합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월급의 결합, 재산의 합체, 너와 내가 만들어내는 쓰레기 배출량의 증가 등등 생각할 거리가 많다. 그런데 이는 상대와 함께 해나가면 된다. 그와 나의 삶은 결혼 이후엔 공동으로 관리하고 꿈꾸어야 할 대상이다. 나만의 것도 아니고 상대의 몫도 아니다. 이것보다 더 신경 쓰인 게 하나 있는데 바로 내 성격이었다. 결혼하고 생활을 함께 이어가면서 발현될 내 마음속 깊은 부분의 단점 말이다.  



효리 누나의 고민에 공감하면서 


한 때 남편 이상순 씨와 제주에서 칩거했던 이효리 씨가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변덕이 심한 내게 너무나 좋은 사람이지만, 내 주변에 있는 유혹과 욕망의 요소를 없애려고 제주로 왔다. 혹시나 나중에 내가 바람피울까봐.'


정확한 문장이 기억나는 건 아니었지만, 비슷한 어투로 말했다. 우스갯소리로 바람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녀는 세상일에 호기심이 많은 자신이 언젠가 배우자에 관해 호기심이나 흥미를 잃어버릴지 두려워했던게 아닐까 생각된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바라봤다. 내가 그랬으니까.


결혼을 준비할 때 가장 고민한 부분이 있다면 변덕이었다. 내 성격 중에 가장 약점이면서 강점인 부분이 호불호가 강하다는 점이었다. 좋아하는 건 엄청나게 좋아하는 데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굉장히 싫어진다.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만났을 때, 처음 정해지는 인상으로 호불호가 갈리고 그에 관한 이미지도 정해진다. 안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되어 고치려고 했던 적도 많지만, 수백만 년 동안 조상에게 이어진 DNA 정보의 축적 결과는 꽤 정확했다. 불호인 사람들은 대부분 내 삶에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을 생각한 신부가 삶에 해를 끼친다는 뜻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다만 아쉬움과 서운함이 쌓이면 어느 순간, 감정이 더해져 불호 혹은 싫어하는 감정으로 넘어갈 때가 있다. 남은 인생을 함께 살아갈 배우자라면 얼마나 많은 감정이 오갈까. 그리고 수많은 오해가 쌓일 수도 있다. 어쩌면 상대를 미워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했고 결혼 자체에 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결과를 말하자면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혼인신고를 마친 뒤, 신혼집에서 6개월 정도 함께 생활하면서 '결혼 안 했으면 정말 아쉬웠겠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예상보다 내 변덕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아내의 존재로 인해 사라졌고 문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여러 가지 부분들은 둘이 함께 하면서 해결 가능한 부분이 많았다. 아직 해야 할 것도 많고 눈앞에 놓인 장애물도 산더미 같다. 


그런데 결혼 자체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관계가 주는 장점에 주목하는 사람이라면 살아가면서 한번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둘이 함께하게 되면서 생기는 불편함은 안락함으로 극복이 가능하고 새로 생긴 문제들은 함께 고민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 부담감은 반으로 줄일 수 있고 공감은 두 배로 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여기까지 쓴 내용을 아내에게 보여줬다. 글을 본 뒤 그녀가 말했다.


"너만 그렇진 않아. 나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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