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무사히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
불행하다는 것은 하나의 감정이다. 나는 하루에도 불행했다가, 행복했다가를 반복하는 것 같다. 조금 전까지도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조급한 마음에 불행함을 느꼈다가 '아니야, 차근차근해야 할 일을 적어서 하나씩 해보자. 내가 너무 걱정만 한 것 같아.'라고 생각하면 다시 진정이 되고 희망이 느껴진다.
막막하고 울적할 때, 기분이 다운되고 회피하고 싶을 때는 갑자기 내 앞에 엄청난 장벽이 들어선 것 같이 느껴진다. 나는 그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지고, 내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여기서 버티든 어떻게 해보든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기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 순간 느끼는 아득함은 꽤 강한 강도의 불행감이다. 평소에도 스트레스를 조금씩이라도 누적해 놓은 상황이라면 더 할 것이다. 답이 없는 것 같고, 자신이 없는데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파도가 다가오고 있을 때 그냥 눈감고 주저앉아버리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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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선택지 앞에 서게 된다. 내게 이 과제를 준 세상이나, 타인의 탓을 하며 해결을 미룰 수도 있다. 그런 감정 상태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를 선택하는 단계로 언젠가는 넘어가야 한다.
아니면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고 일단 내게 일어난 일이니 할 수 있는 데까지 책임지기로 마음먹은 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리스트로 적고 행동할 수도 있다.
이때 글로 적어보는 것이 꽤 효과적이다. 단계별로 적으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고, 일단 순서대로 적어놓은 뒤에는 걱정을 멈추고 직접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좋다. 그리도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과제들이 정말 내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인지를 되물어보는 것도 가능하다. 전체가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모두를 완벽히 해내야 하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불안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되짚어보니 생각보다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은 일부였을지 모른다. 그러면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방법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았지만 상황이 더 나빠지기만 하고 감당이 되지 않는 때에는 아예 모든 걱정과 상념을 멈추고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이 일을 해결하지 못했을 때 마주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 보고 '그렇게 되면 다 잃어버리는 거지 뭐. 그리고 좀 쉬다가 다시 시작하면 돼.'라고 해결하고 싶었던 마음을 비우고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여보는 것이다.
간혹 이 일이 잘 되지 않는다 해도 추상적으로 막연하게 감정덩어리로 느꼈던 것보다 덜 심각하고 두렵지 않은 상황일 수도 있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은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어떻게 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내 마음이라도 편히 먹고 부담을 내려놓는 것이 때가 왔을 때 수습하고, 다시 시작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심적인 에너지를 채워놓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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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의 특정한 상황이나 과제로 인해 불행한 경우가 아닌, 좀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삶의 흐름이 불행할 때도 있다. 장기적이고 만성적으로 불행이 서서히 인생에 젖어드는 경우이다.
이럴 때는 현재를 만드는 원인이 되는 '삶의 큰 줄기들'에 대한 점검을 해 보아야 한다. 일단 건강상태를 체크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경우라면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직접적인 개선이 힘들기 때문에 귀찮더라도 꼭 병원진료를 받아보아야 한다.
건강하다면, 현재 하고 있는 일, 진로와 직업적 정체성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인생에서 직업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며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준다. 어떤 일을 하는지는 매일의 시간을 어디서, 누구와 만나며, 어떤 활동의 방식으로, 어떤 일에 집중하며 살게 될지를 결정한다.
출퇴근 시간이 몇 시인지, 통근하는 과정, 직장에서 내가 가장 많이 짓는 표정과 많이 사용하는 말투와 소통방식, 직장 내 사회적 분위기, 동료들과의 관계방식, 내가 맡은 일의 주제 등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매일매일, 몇 년간 반복될 루틴이 결정된다.
일과 관련된 환경적인 부분은 나의 가치관이나 특성에 맞게 바꾸는 데에 한계가 있다. 만약 내가 하는 일로 인해 매일 마주하게 되는 하루가 나의 본질적인 특성과 어긋나거나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진지하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표면적으로는 그 일이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어도 막상 해보니 명목상의 부분은 괜찮은데, 일의 활동 자체가 성향이나 가치관과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일을 하면서 내가 주로 에너지를 쓰게 되는 방식과 영역이 어떤 것인지, 나와 잘 맞는지를 체크해 보고 만약 어려움을 느낀다면 현재 상황에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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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하는지는 나의 사회적 정체성에도 큰 영향을 준다. 내가 사회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인식하는지는 자존감과 많은 연관성이 있다. 자존감이 단단할 때는 사회적으로도 안전하게 존중받고 있으며, 사회적 관계가 안정적이고, 사회일원으로서 나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고 느낀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존감이 흔들릴 때에도 사회적 정체성이 잘 받쳐준다면 어느 정도 무리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사회적 관계를 통해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고,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반대로 나의 사회적 정체성이 나의 고유한 정체성과 잘 맞지 않을 때,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숨죽이게 만들 때에는 자존감이 오히려 떨어지고 개인의 삶의 뿌리부터 흔들리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그것으로 인해 형성되는 사회적 정체성, 즉 내가 사회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는지가 나의 내면의 결과 잘 맞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혹시라도 근무환경이나 사회적 관계 등으로 인해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떤 부분이 구체적으로 원인인지, 그 영향력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 행동으로 옮기는 선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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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간관계 부분에서 불행함을 느끼고 있진 않은지 확인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가족, 지인, 동료, 그리고 과거의 나, 미래의 나와의 관계가 날 힘들게 할 때에는 관계들과의 적절한 거리가 형성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는 적절한 거리를 필요로 한다. 그를 사랑하는 것과 각각의 인간이기 때문에 서로의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사랑한다 해도, 사랑하기 때문에 더욱 그만의 영역을 존중해주어야 하며, 나의 영역 또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 사람을 아끼는 마음 때문에 그의 모든 일을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의 감정 또한 나의 영역의 일이 아니며, 내가 책임져 줄 수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힘든 일을 겪고 있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런 부분에 대해 서로 인지하고, 건강한 거리를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어떤 관계가 날 힘들게 한다면 서로 무너진 건강한 경계를 다시 세워보려고 노력해 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잘 안된다면, 서서히 거리를 두며 멀어지는 것을 선택해도 괜찮다.
멀어짐이 꼭 이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이별이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이별이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관계를 알아차리고 더 이상 악순환이 지속되지 않도록 대처하는 용기를 내는 것 또한 인연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나의 삶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불만족이 이어질 때 우리는 불행해진다. 나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현재의 '나'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세상과 타인의 관점으로부터 시작함으로써 세상의 기준과 다를 수밖에 없는 나의 상태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것이다.
현재 나의 모습, 조건들은 나를 나타내는 부분이다. 그것들은 타고난 부분에서부터 시작해 내가 지나온 인생의 과정을 보여주는 현재의 모습이다. 내가 나를 바라볼 때에는 '이것이 나'라는 아무런 판단이 없는 상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이런 생김새로, 이런 조건에서 태어나 특정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은 판단할 수 없는 어떠한 '상태'일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나로 인식하는 것은 현재의 나의 모습이기 때문에, 바꿀 수 없는 과거의 모습이 현재를 만든 원인이라 생각하며 초점을 과거에 두고 연연하는 것 또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 나의 현재 상태를 '판단 없이 인식'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나는 이런 면이 있구나. 나는 이걸 원하는구나. 나는 이런 부분이 약하구나.'라는 것을 좋거나 나쁜 것, 우등하거나 열등한 것으로 판단하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얻듯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다음 이러한 나로부터 시작해서 더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개선을 위한 '판단'을 해야 한다.
내 삶을 평가할 때 나에 대한 이해를 우선으로 하고, 그다음 타인과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그 사이의 간극에서 무조건적으로 나를 부정하게 되는 상황이 많이 줄어들 수 있다.
내가 행복하려면, 적어도 덜 불행하려면 '세상의 기준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아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의 알고리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행을 느낄 수밖에 없게 한다. 어떤 사람이든 모든 부분을 통해 지속적으로 세상과 타인의 기준에서 좋게 평가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삶이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 나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과정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타인과 세상이 만든 기준으로 나를 보며 그 잣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내 마음의 목소리보다 타인과 세상의 기준에 의한 평가가 더 크게 들린다면 일단 세상에 의한 판단의 정보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상의 평가와 상관없이 바라본다면 내 삶의 현재 모습 중 새롭게 마음에 들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부족하다고만 느껴졌었는데, 외부의 목소리를 멀리하고 나니, 내가 가진 것이 참 많았음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현재의 지점에서 내가 어떤 부분을 보완하고, 성장시키려 집중해야 하는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내 삶을 만족스럽게 바꾸는 노력의 방향을 찾기 위해서 밖이 아닌, 마음의 나침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시나브로 젖어들었던 불행이 가시고 이미 내 삶에 존재하고 있었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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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불행을 느낄 때는 내가 삶의 주체가 아닌, 수동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외부에 무언가로 인해 불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으며,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내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불행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주체'가 되어서 움직여야 한다. 내가 불행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체하고 해결하고 대응해야 상황이 전환되고, 삶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지며, 행복해질 수 있다.
불행은 삶의 운전대를 잡기를 두려워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달리 먹고 내 앞을 응시하기 시작한다면 머지않아 분명히 나의 힘으로 불행의 고개를 넘어 행복으로 가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내 손으로 힘든 고비를 넘기고 삶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느낄 때 불행이 건네준 삶의 깊은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