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현지 촬영 코디네이터 (feat. 한 달 살기 @홍콩 라마섬)
배경 설명을 위해 제 소개를 조금 더 하자면, 저는 5살 때 부모님을 따라 중국으로 가서, 초중고를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학교는 당시 중국 광저우의 집에서, 버스로 약 3시간 떨어져 있는 홍콩으로 가게 되었어요.
홍콩은 가을학기였기 때문에 대학교 1학년을 마친 후의 방학은 여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대망의 생애 첫 아르바이트는, 그 여름 방학, 그러니깐 2011년의 여름이었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아무래도 대학 진학 문제로 마음껏 놀지 못했고, 또 무언가를 시도해보기엔 나이와 재정적인 한계도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맞아보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방학이었어요.
그래서 이 방학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기대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았어요. 해외여행을 가기에는 돈이 없었고, 그렇다고 광저우로 돌아가서 방학 내내 집에만 있기는 내 청춘(?)이 너무 아까워서, 홍콩의 라마섬에서 한 달짜리 단기 렌트를 찾게 되었어요. 9년 전엔 당연히 '한 달살이'라는 말도 없었는데, 얼떨결에 하게 되었네요. ㅎㅎ
사실 섬으로 간 건, 랜트가 시내보다 쌌기 때문이에요. 제가 다니던 학교는 1년 단위로 기숙사를 옮겼어야 했기 때문에, 어차피 방학 내내 방을 쓸 수도 없었고, 그리고 방학에 집에 안 가고 홍콩에 남아있으려면 학교에서 마련한 임시 여름 기숙사로 옮기고, 추가 비용도 지불해야 했어요. 그래서 저는 예를 들자면 서울로 따지면 강화도 정도 느낌의 라마섬을 떠올렸고, 실제로 시내보다 렌트가 훨씬 싸서, 기숙사에 들어가는 돈 정보면 1달 렌트가 가능했어요.
저는 라마섬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룸메이트 구한다는 글 위주로 찾아서, 쓰리룸에 한 자리를 얻어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한 달에 20만 원 정도 들었던 거 같아요!) 라마섬은 홍콩섬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섬이에요. 섬에는 자동차도 없고, 작은 길 밖에 없어서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어요.
처음에는 한 달 동안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무척 설레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해변으로 걸어가서 명상을 하고, 트레킹도 가고, 여러 계획을 세웠지만, 당시 갓 20살의 저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도 잘 몰랐고, 지금처럼 인스타그램을 활발하게 사용하는 때도 아니어서, 아깝게 흘려보냈던 거 같아요. 지금 다시 간다면 정말 알찬 한 달을 살고 올 수 있는데...!
그래도 몇몇 친구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슈퍼에서 식재료를 사서 요리해먹는 낙으로 살아가던 차에, 홍콩 여행 카페에서 EBS에서 현지 촬영 코디네이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어요.
근데 EBS면 큰 방송국인데, 왜 홍콩 정보 카페에서 구인을 하고, 20살밖에 안 된 대학생에게 이 일을 맡겼는지 지금 생각하면 의아하지만, 저에게는 생애 첫 아르바이트로 너무너무 좋은 기회였어요. 거기다 3일 촬영에 하루 미화 200달러니깐, 지금 환율로 계산해보니 72만 원이네요! (이렇게 받은 돈을 다 어디 갔을까요... 제가 경제관념만 좀 일찍 생겼더라면 지금 쯤 1억은 넘게 모았을 텐데...)
촬영 포인트를 찾아달라는 EBS의 부탁에, 저는 우선 인터넷을 뒤져서 스톤커터스 브릿지가 나온 사진을 찾았어요. 그리고 마음에 드는 각도의 사진을 찾아, 작가가 누군지 알아보고, 또 그 작가에게 메일을 보내서 어디서 촬영했는지 물어본 기억이 있네요. 아, 사진 동호회 커뮤니티도 가입해서 촬영 포인트를 물어봤어요!
그리고 7월의 홍콩은 정말 엄청 더운데, 돈 벌 생각에 너무 신나서 힘든 줄도 모르고 답사를 다닌 거 같아요. 알아본 촬영 포인트를 바탕으로, 전 주에 친구랑 직접 다리 근처에 가서, 등산도 하고, 아파트 옥상에도 올라가 보고, 직접 각 포인트에서 사진도 촬영해서 작가님에게 보내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받은 메일함은 그대로 있는데, 보낸 메일함은 왜 인지 메일이 전부 삭제되어서 없네요 ㅠㅠ)
아파트 옥상은 촬영하려면 공고문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요청해서 만들어 가기도 했어요!
촬영 때도 첫날 홍콩 인터콘티넨탈 호텔 로비에서 아침에 감독님과 PD님을 만났을 때의 설렘이란!! ㅎㅎ 그리고 촬영하러 TV에서만 보던 다리 아래에서 둥근 계단을 올라가서 다리 내부로 들어가고, 차에서 선루프 열고 왔다 갔다 촬영하고, 요트 타고 촬영하고, 옥상에 올라가서 촬영하고, 전망대 올라가서 촬영하고, 중간중간 맛있는 거 먹고! 9년 전이라 그런지 어려웠던 기억보다는 재밌었던 기억만 떠오르네요...ㅎㅎ (아련....)
아니 지금의 내가 한다고 해도, 촬영 포인트 찾아서 답사 가고, 아파트 경비원에게 옥상 촬영 협조 구한 거랑, 요트 업체 싸게 섭외하고, 정부 관계자분에게 인터뷰 관련 날짜 조율&통역이랑, 또 감독님이랑 피디님 오셔서 3일 내내 같이 다니고, 통역이랑 가이드 역할 다 하고, 진짜 멘붕이었을 거 같은데, 20살의 제가 어떻게 했는지 생각하면 정말 대견스럽네요....ㅎㅎ 아마 시간 많고 다른 걱정 없는 1학년 마친 대학생의 여름방학이라서 가능했던 거겠죠?
이때 얻은 것은 처음으로 내 힘으로 돈을 벌었다는 쾌감이랑, 저는 이렇게 활동적인 업무를 좋아한다는 자아성찰이랑 (지금은 왜 사무실에 일하고 있을까요...??ㅠㅠ), 그리고 제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생긴 거 같아요! 앞으로 뭘 해도 잘할 거라는 자신감이요!
인사이트 있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이 글에서는 실패한 거 같아요 ㅠㅠ
아무래도 목차의 뒤로 갈수록 인사이트가 조금씩 생기겠지만, 초반의 내용들은 인사이트보다, 제 개인적인 기록 위주가 될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때의 저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이런 일들을 한 게 아니라, 정말 닥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일을 했던 거 같아요. 그러니 저의 성장기(?) 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리즈를 마칠 때에는 꼭! 작은 인사이트라도 드릴 수 있는 제가 되겠습니다.
부족한 저의 글 읽어주시고, 구독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