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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시간

이제 서른과 이제 마흔의 교환일기(18)

by 조아라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이 겹친 오늘, 부처의 마음으로 어린이들과 놀면 좋았겠지만 부모님을 돌보는 효녀 코스프레 중이야.


황금연휴 잘 보내고 있어?

나는 한 달 전부터 엄마가 동생집에 가고 싶다고 하여 홍천에 다녀왔어. 점심 먹으러 간 고깃집은 우리와 같은 가족 단위의 손님들로 바글바글하더라고. 고기 굽고, 익어가는 고기 집어 먹느라 대화를 하지 못하는 테이블들의 풍경이 비슷해서 웃음이 나오더라. (그래서 고기 먹으러 가는 것인가!) 다음날은 (또) 엄마가 가고 싶다고 말한 춘천을 향해 소양강처녀-소양강댐-상상마당 춘천-닭갈비 집을 순회했지. 우리 집은 주로 엄마가 가고 싶다고 하는 곳에 맞춰 여행지를 잡는데 계획을 세우는 나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확고한 목적지가 오히려 좋더라고. 물론 큰 목적지만 있고 세부적인 장소는 내가 다 알아봐야 하지. 그렇게 춘천을 돌아보고 동생 집에서 술 한잔 하며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도 실컷 나누다 조금 심각한 주제를 꺼내고 싶은 말을 하고, 듣고 싶은 말을 들으며 그동안 내가 가족생활에서 쌓인 작은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 들더라.


가족구성원이 다 성인이 되어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 가끔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가족의 일대기 중 어느 지점에 멈춰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을 선명하게 마주하게 돼. 그때 충분히 떠올린 기억을 꺼내어 얘기를 나누다 보면 치유가 되기도 하지. 불편한 마음에 얼렁뚱땅 넘기면 내면의 아이는 문을 열었다 또 닫는 상황이 반복되겠고. 요즘 부모와 가깝게 생활하면서 느끼는 건 엄마, 아빠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많이 서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측은해져. 특히 아빠는 퇴직 후에 하루가 매우 단조로워서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힘들어 보이더라고. 내가 옆에서 도와주다 보면 진로상담사의 일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다니까. 아빠한테 계속 말을 걸거든, 배우고 싶은 걸 찾는 방법부터 내일배움카드 등 고용노동부에서 실버 세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알아봐 드리고 말이지. 그러면서 노후 대비를 돈으로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배우고 알아보는 일상을 매일 쌓는 것이 더 중요하겠더라고.


며칠 장시간 운전을 하며 관광 가이드 역할을 했더니 오늘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난 뻗었고, 부모님은 내일 밭에 가서 심을 고구마 모종을 사러 종묘사에 가셨어. 엄마가 나보고 내일 밭에 가면 땅을 고르는 일을 해야 된다고 알려 주셨지. 엄마는 매일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다행이야.


밭일을 열심히 하고 맛있는 밥을 먹을 생각에 내일 하루도 참 알차게 보낼 각이야.


부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2025.5.6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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