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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듦의 힘

이제 서른과 이제 마흔의 교환일기(20)

by 조아라

우리 만나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지난주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4일 동안 온실하우스를 여러 사람들과 같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다시 본가로 돌아왔어.


일주일 동안 많은 행선지에 나를 남기고 돌아다녔더라고. 묘지 이장으로 부모님과 전북 고창을 갔다가, 묘지 이장과 화장과 다시 장지에 모시는 과정을 배우고 다음날 임실과 전주에 들러 돌아가신 외삼촌과 이모께 인사드리며 새삼 외삼촌 비석에 돌아가신 1994년 연도를 보니 막내 동생이 태어난 해와 같았구나, 죽음과 삶이 연결된 기분을 느꼈지. 인간의 죽음과 출생이 이어짐이 공동체 마을의 역사를, 나라의 역사를 꾸준하게 만드는 거겠지만 아주 크게 보면 다 우주의 먼지의 연속이려나.. 나의 하나뿐인 이모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여전히 실감은 안 나지만, 엄마를 잃은 이모 아들을 오랜만에 보니 어른이 된 것 같은 실감은 나더라. 동갑내기로 어릴 때 가끔씩 볼 때 그 악동 이미지가 싹 없어지고 아들과 잘 놀아주는 아버지가 되어 있더라고. 그 아들한테 용돈을 준 나 역시 어른이 된 것 같았어.


아무튼 전주에서 친지들과 일정을 마치고 난 서울로 올라와 동생 이사를 돕고, 다음날 춘천 작은 언덕배기 산골마을에서 온실하우스를 만들었지. 이동하면서 틈틈이 숙면을 취하고, 지형이 다른 창밖 풍경을 보면서 혼자만의 시간으로 삼아 멍도 때렸지. 불멍처럼 창밖 멍도 아무 생각 없이 비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온실하우스 과정은 너무 재밌고 뿌듯했어. 비우는 수평과 직각에 맞춰 땅을 고르며 초석을 다시고 소프트 목재로 4면의 벽과 중간 벽, 지붕의 중간틀을 세우고 문을 짜고 세운 벽의 면을 채우고 지붕을 덮는 전 과정에서 목공 도구 사용법을 배우고 도면을 보는 법, 지붕의 각도를 재는 법 등 공간을 만드는 전 과정을 알차게 배웠어. 참여한 분들도 각자 가족 혹은 본인의 공간에 뭔가 만들고자 참여한 분들이라 아주 열정적으로 함께 했어. 끼니, 간식, 저녁도 잘 챙겨 먹고, 목수 부부 선생님께 틈틈이 묻고, 이야기하며 1분 1초가 아주 알찼어. 마지막 날 작업복으로 가져간 옷이 찢어질 정도로 열심히 했더라고 ㅎㅎ 가끔 목공 수업도 듣고 작은 물건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전기톱이나 네일 건 등 무겁고 센 도구를 잡으니까 무섭더라. 그래도 계속 사용하는 거 보면서 또 이내 익숙해졌어. 올해가 가기 전 부모님 텃밭에 작은 물건 저장고를 만들어보리라 만들면서 계획을 세워보았지. 배운 장소도 너무 좋았어서 다음에 또 기회를 만들어 가보고 싶어. 조이도 가면 분명 좋아할 거야, 그곳 사우나 프로그램 알려줬는데 꼭 신청해 보길!


먹으면서 다음 먹을 메뉴를 생각하는 게 즐거운 것과 비슷하게 만들면서 다음 만들 거리를 상상하는 것이 참 재밌더라고. 먹고 만들고, 만들고 먹는 시간을 4일 동안 보내면서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어. 어떤 고립은 내가 원치 않더라도 스스로 땅을 파듯이 만들기도 하는데 결국 그 고립에서 나와 땅을 다지는 것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과 교류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거더라고. 땅을 더 파고 있는 건지, 두둑을 만들고 있는 건지는 시간이 좀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일단 삽을 들긴 들었으니 뭐라고 해봐야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두둑이 만들고 돌아왔어.


조이도 곧 새로운 일상이 시작될 텐데 '잘'이라는 한 글자로 퉁칠 수 없는 연결로 연결될 수 있게 뿌듯한 즐거움을 군데군데 마음 속에 새길 수 있기를 빌게.


또 만나!


2025.5.19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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