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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Feb 24. 2024

동유럽 6일 차 : 보스니아 역사를 알고 슬퍼하는 엄마

그리고 저녁에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기뻐하는 엄마 

6일 차에는 출발 시간이 여유가 있어 조식을 먹고 난 후 엄마와 아침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야호!) 왕복 30분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숙소 주변을 걸으니 몸을 푸는 운동 겸 환기가 되었다. 엄마에게 걷기는 큰 마음을 먹고 하는 운동이라, 이번 여행 이후 이전보다 걷는 횟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주입식 잔소리를 하였다. 엄마는 대답을 종종 회피했지만 ㅎㅎ 


아침 산책 중 귀여운 엄마의 까꿍!
산책 중에 본 나무들


네움에서 모스타르로 가는 길. 버스 안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가이드의 역사 강의가 시작되었다. 지금 가는 모스타르는 풍경이 아름다운 유서 깊은 도시인데 이곳이 1992~1995년 보스니아 전쟁으로 처참하게 파괴되었고 시민들도 너무 많이 죽었다고 하였다. 당시 20~30대 청년들이 군인이 되어 싸우는 통에 현재 인구분포도에서 중년의 남성이 굉장히 적다고 하였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해체가 진행되면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가 독립을 선언하고 보스니아도 국민투표로 독립을 선언했는데 이 독립을 반대하는 국민들도 많아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고 한다. 이웃인 세르비아와 독립을 반대한 보스니아 국민들이 한 편이 되어 보스니아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3년 간 전쟁에서 무려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고, 난민으로 뿔뿔이 흩어진 사람도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세르비아가 전쟁을 부추기고 일으킨 주 책임을 갖고 있다며, 이 전쟁 이후 보스니아를 취재한 KBS 다큐멘터리를 버스 안에서 일행들과 함께 보았다. 


다큐를 오랜만에 보았다. 


패키지여행에서 이런 역사 공부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세르비아 장군의 무슬림 인종 청소를 명분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게 당연하다고 선포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엄마는 영상 속 집 잃고 가족 잃고 살아가는 보스니아 사람들에 감정이입하며 '우짜꼬.. 우짜꼬..' 하며 안타까워하였다.  


측은한 마음으로 도착한 모스타르. 관광지로 가는 길에 구걸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관광객들이 많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을 테다. 다들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1유로 정도는 줘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내가 돕고 난 후 뿌듯한 마음으로 갈 수 있겠지만, 그 도시의 생태계를 망치는 데 일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옛날 우리나라 못 사는 시절에 앵벌이가 많았다고 그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하셨다. 이전에 갔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도시에서 보던 풍경과 달라 상대적으로 보스니아가 가난해 보인다며 세르비아 욕을 많이 하셨다. 자기가 좋아하는 테니스 선수 조코비치가 세르비아 출신인데 그것마저도 안타까워하셨다. (엥, 왜지?) 


관광지이자 유명한 다리, 스타리 모스트 주변으로 사람이 많이 모여있었다. 밑에 강이 흐르는데 높이가 번지점프하는 수준의 꽤 무서운 거리였다. 그런데 거기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던 것이다. 관광객들의 호응을 받고 돈을 받아 어느 정도 인파가 몰리고 돈을 모으면 다이빙을 하는데 보는 내가 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앞서 전쟁 다큐를 보고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 나니 이런 풍경에도 박수를 치기보다는 왠지 더 측은해지는 것은 기분 탓이려나 ;; 무슬림 신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날도 종교 방송이 종종 마을 전체에 울렸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이곳에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부디 평화롭기를 빌었다.  


오스만과 유럽을 섞어놓은 듯한 모스타르



폐허가 된 모스타르는 2004년에 복구되었지만 빈 건물이 듬성듬성 남아있었고 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보였다. 그리고 그 자리엔 담쟁이덩굴과 나무가 우렁차게 자라고 있었다. 그 나무들이 참 고마웠다.     


잊지 않겠습니다

아주 찰나의 자유시간에는 기념품을 고르느라 시간이 다 갔다. 며칠 안 남은 일정에 기념품을 사야 하는 할 일이 떠오르기 시작한 엄마. 뭘 살까 고민하다가 자연석 팔찌가 예뻐 보였는지 본인 거, 친구한테 선물할 거 2개를 사셨다. 여행 이후에도 잘 차고 다니신다.  


점심을 먹고 보스니아에서 다시 크로아티아로 넘어갔다. 7일 동안 국경을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유럽 답구나 싶었다. 마카르스카 해변에서 보는 하얀 돌 산맥 경치를 둘러보고 숙소로 갔다. 


허브가 잘 자란다는 돌산맥 옆을 걸어가는(?) 정여사


숙소가 있는 곳은 7일 차에 여정인 스플리트 근처 트릴리(Trilj)라는 시골마을. 저녁을 먹고 엄마와 산책을 나오는데 일행들이 이따 같이 한잔 하자며 술을 사러 마트에 가자고 하셨다. 엄마는 이때다 싶어 나보고 젊은 사람과 어울리라며 등을 밀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나는 내 또래와 나보다 젊은 분들과 마트를, 엄마는 엄마 또래인 분들과 함께 산책을 갔다. 


일행들과 가진 첫 술자리. MBTI를 주제로 긴장을 풀며 한잔씩 나누다 보니 가족들 간 대화합의 장이 되었다. 치과 의사인 아들을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가족들, 예쁜 딸과 그보다 더 소녀 같은 그 어머니, 부인의 말을 잘 들어야 집안이 행복하다는 중년의 남성, 분위기 메이커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혼자 온 젊은 직장인, 부모님과 같이 왔지만 부모님 보다 일행들과 더 친하게 지내는 어느 외동아들, 오랜만에 육아에서 벗어나 부모님과 함께 온 딸, 코로나 때 결혼을 하여 신혼여행을 이제야 왔다는 부부, 그리고 그들과 얘기하며 술 마시는 이 시간을 즐기는 나의 엄마. 그 옆에서 이 상황을 신기해하며 홀짝홀짝 술을 마시는 나. 


내가 주로 활동하는 네트워크에서 마주하기 힘든 사람들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만나 대중적인 주제로 이야기하니, 새삼 사회 공부를 한 시간이 되었다. 엄마도 재미있었는지 방으로 돌아와 오늘 동년배 분들과 나누며 알게 된 이야기를 나에게 계속 들려주었다. 사람 이야기를 참 좋아하는 나의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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