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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Mar 02. 2024

동유럽 7일 차 : 엄마는 동상을 좋아해

나는 엄마 그림을 좋아하지

엄마에게 지난주 연재한 글을 보여주었다. 나보고 대단하다고 하여 왜냐고 물으니 이렇게 글을 쓰는 게 대단하단다. 글은 어떻냐고 하니 좋다는 대답이 바로 나와 그 이유가 더 궁금해졌지만 질문은 더 하지 않았다. 엄마도 가끔 본가에 있는 데스크톱을 켜서 한글 문서를 열고 일기를 쓰곤 한다. 자신의 감정만을 100% 녹여 쓴 엄마의 일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뭉클한 엄마 미소를 띠게 된다. 어랏, 엄마도 그런 마음으로 내 글을 읽은 것일까?


아무튼, 가족의 응원을 받고 엄마와의 여행기를 계속 써보자.


일행들과 술과 함께 이야기하며 밤늦게까지 보낸 다음 날, 어김없이 아침 일찍 일정이 시작되었다. 하룻밤 사이 부쩍 더 반가워하며 인사하는 일행들을 보니 시간을 공유하며 쌓는 유대감을 새삼 느꼈다. 보통 술을 같이 먹어야 친해진다고 하지만 착각이다. 같은 공간과 시간을 아마도 조금씩 다르게 기억하겠지만 그때 그랬어!라는 감각은 오래갈 것 같다. 엄마는 어제 어느 정도 본인 또래와 호구 조사를 다 했는지, 언니가 생기고 동생이 생겼네. ^^;


버스에서 스플리트 가는 길. 가이드의 버스 안 설명은 꾸준히 진행되었다. 스플리트는 성벽 안 마을 전체가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보존의 가치가 크며 여전히 그 속에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수원화성에 성벽만 있는 게 아닌, 한옥마을이 그대로 보존되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은 풍경일 테다.


다른 해안 도시와 다르게 규모도 컸다. 크로아티아에서  번째 도시라고 하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예전에 촬영 일로 스플리트에 왔을  자그레브에서 받았던 'I♥︎ZAGREB' 적힌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식당 웨이터가 여기서  모자 썼다가는  맞을  있다며 무서운 농담을  적이 있다. 스플리트 시민들은 수도인 자그레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부산과 서울인들의 구도인 건가 싶었다. 수도 보다 우리가  자랑스럽다고 느낄 만큼 반짝이는 도시, 스플리트였다.

사실 엄마는 구도심의 역사 설명과 별개로 꽂힌 게 있었는데 바로 그레고리우스닌 동상이었다. 크로아티아인들이 존경하는 종교 지도자로 동상의 크기가 굉장히 커서 기록으로 한 두장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엄마는 이 앞에서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으셨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다닌 곳 중에서 엄마가 제 발로 찾아가 찍은 공통적인 공간은 바로 동상 앞이었다. 자그레브에서도, 로비니에서도 여기서도 어떤 동상을 보면 그 동상의 의미와 상관없이 사진으로 기록했다. 나는 동상에 큰 관심이 없는데 엄마는 동상을 참 좋아한다.

동상이 멋있다며 찍어달라고 했지
이 동상은 무엇이었을까..
그레고리우스닌님과 함께 ㅎㅎ


스플리트에서는 엄마와 나의 숙제를 해결하기도 했는데, 바로 기념품 구매였다. 여행 중반부터 엄마는 친구들 선물을 뭘 해야 할까 고민하며 틈틈이 작은 마트나 가게들을 돌아봤지만 엄마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투어에서 쇼핑하는 곳을 하나는 기본 옵션으로 들른다고 하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엄마가 몇 가지 시식해 보더니 갑자기 유산균과 발사믹 식초 등 후다닥 주문을 하고는 밀린 숙제를 해결한마냥 흡족해하였다. 덩달아 나도 핸드크림이랑 트러플 소금, 트러플 오일 등 작은 병 몇 개 사고 나니 뭔가 사야 할 마음이 사라졌다. 조금 비싸게 주고 산 것 같은 찜찜함은 더 돌아봐야 하는 수고로움으로 상쇄하였다.


숙제를 끝내고 생긴 자유시간에는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엄마에게 종이와 펜을 주었다. 구도를 잡으며 진지하게 그리는 엄마를 구경했다. 나뿐만 아니라 일행들이 오며 가며 엄마의 그림을 보고 마구 칭찬하고, 급기야 가이드는 엄마에게 정화백이라고 부르니 엄마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쑥스러워하였다. 히히히


정화백의 그림이올시다 ㅎㅎ

소도시 트로기르도 들러 성로브 대성당을 보고 가곡(?)을 부르는 미니 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나니 해안 도시 투어는 끝이 났다.

반짝이는 건물과 활짝 웃는 정여사


다시 내륙으로 이동하여 마지막 여정인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근처 숙소에 도착.


따뜻한 빛을 쬐다가 서늘한 산 공기를 마시니 여행의 끝이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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