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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Mar 16. 2024

동유럽 9일 차 : 다시 한국, 집이 최고라는 엄마

그리고 또 여행 가자는 엄마

플리트비체를 반 바퀴 돌고 송어구이 점심을 마지막 식사로 먹고 나니 패키지여행 코스가 끝이 났다. 걷고 먹으며, 틈틈이 일행 분들과도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였다. 


식당 앞에서 본 크로아티아 냥이


9일 전 도착한 자그레브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 가이드께서는 그동안 다녔던 곳들을 한번 더 읊어주셨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많은 정보를 주셨는데 기억나는 게 많지 않다. 이는 지난 학창 시절 교실에서 선생님이 많은 지식을 주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텐데 왜 그럴까. ^^; 


이번 여행에서 좋은 가이드를 만났다. 고맙다고 엄마와 인사를 드리는데 엄마는 가이드께 역사 선생님이라며 거듭 칭찬을 하셨다. (엄마는 보스니아의 슬픈 역사만 기억하셨지만...)


공항에서 수속을 기다리는데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하나는, 일행 중 한 분이 자신의 폰을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이다. 부랴부랴 가이드가 연락해 줘서 찾긴 했는데 그분은 한동안 자신의 부주의함을 자책하셨다. 

 또 한 건은 수속을 끝내고 탑승장에 가기 전에 면세점에서 마지막 기념품 구매를 하느라 다들 분주했는데 나와 엄마는 흔한 초콜릿 같은 거를 간단하게 사고 일찍 탑승장에 와서 쉬고 있었다. 쇼핑을 마친 어느 가족이 엄청 화가 난 채로 걸어왔고 10만 원 정도 캐셔로부터 사기를 당한 것 같다고 하였다. 일행들과 가이드에게도 여쭤보고 나보고 해외에도 많이 다녔을 테니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냐고 하는데 해외에서 많은 물건을 산 적이 없어서 뭐라 도움이 될 말이 없었다. 자신들이 산 물건의 값이 터무니없이 비싼 것 같아서 따져 물었는데 캐셔는 내 잘못 아니라고 발뺌을 했더랬다. 고객센터 등에 따져 묻기에는 소통 비용이 더 드는 거라 포기하고 오신 것 같았다. 가족끼리 결제할 때 금액을 제대로 봤니 안 봤니, 물건이 많아 그렇게 볼 시간이 있니, 없니로 책임을 전가하다가 이내 크로아티아에 후원한 셈 치자고 더 기분 나빠하지 말자고 현실을 미화하는 것으로 진정을 하셨다. 즐겁게 여행을 하다가도 예기치 않는 사건이 생기는 것, 그것 또한 여행인 것일까.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상황들, 나라면 어떻게 대처할까. 


아이고, 디다 하시면서 냅다 누워서 쉬는 엄마 


시간은 지나 탑승장이 조용해졌고 석양이 짙어졌다. 출발 시간이 다가와 대한항공 비행기를 탔는데 내가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한국으로 가는구나, 엄마와의 첫 해외여행이 무사히 끝나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면서 긴장이 사르르 풀렸다. 



이륙 후 기내가 안정되자마자 신라면과 맥주를 한 캔 마시고 9시간을 견디어 한국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일행들, 가이드께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와 내가 이구동성으로 노래를 불렀던 김치찌개를 집 앞 식당에서 우여곡절 끝에 먹고(앞서 2곳에서 점심시간 마감으로 입구컷;;) 김치찌개가 흔하게 먹는 음식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게 귀한 김치찌개를 먹고 집에 도착해 엄마와 한숨 푹 낮잠을 푸지게 잤다. 



다음날 본가에 엄마를 보내기 위해 서울역에 데려다 드리고 기차를 보내드리니 엄마와 첫 해외여행이 완전히 끝이 난 기분이었다. 본가에 도착한 엄마의 첫 마디는 예상대로 "집이 최고다" 였다. 암요, 그러고 말고요.^^


아빠 볼 생각에 억지 미소를 띠는 것 같은데... ㅋㅋㅋ


이번 여행에서 내가 몰랐던 엄마를 발견할 것이란 생각에 엄마를 계속 관찰했다. 


블레드섬을 가장 마음에 든 엄마, 생각보다 빵을 잘 먹는 엄마, 그래도 빵 껍데기는 잘 못 먹겠다는 엄마, 9일 동안 약한 다리를 이끌고 열심히 걷는 엄마,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엄마, 숙소에서 아시안 게임 영상을 보며 쉬는 엄마, 여전히 그림을 잘 그리는 엄마, 그리고 자신의 딸과 함께 가고 싶었던 크로아티아를 별 탈 없이 여행하기 위해 힘든 내색 안 하려고 애쓴 정영예 씨. 


부디, 영예 씨의 인생 여정에 이 묶음 여행이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라며 나는 충분히 그러하다고 엄마께 글로나마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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