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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Mar 09. 2024

동유럽 8일 차 : 아침에 먹는 빵이 익숙해진 엄마

그 모습이 신기한 나

여행 일정을 하루 남긴 전날 밤. 며칠 동안 따뜻한 해안가를 따라다니다 산 중턱으로 오니 갑자기 가을이 되었다. 마지막날 숙소는 로비에 박제된 동물 머리와 곰이 있는 산장이었다. 산 속인데도 주변에 허허벌판 하늘을 보는 데 시야에 아무것도 걸릴 게 없었다. 그래서 노을 지는 저녁과 해 뜨는 아침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저녁은 산장 옆에 조금 떨어진 식당에서 먹었는데 그동안 먹었던 저녁 중에 보통 맛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첫날 저녁에 먹었던 요상한 김치찌개 맛의 기억을 지워야겠다.


마지막 저녁 식사. 감자가 맛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일행들과 함께 마지막 밤의 끝을 잡고 짧게나마 회포의 자리를 가졌다. 이제 얼굴을 익혀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헤어질 시간, 아쉬움보다 그러려니 한다. 언젠가, 어디선가 만나 어랏! 낯이 익는데.. 하는 순간이 올 수 있을 테다. 잘 살아야 할 이유가 또 늘었다. 이 자리에 한국인의 안주를 노리는 산냥이 한 마리도 동석하여 추억의 밤을 보냈다.


엄마는 아직 하루가 남았지만 이미 마음은 한국에 도착한 것 같았다. 집에 가서 할 일들을 내게 알려주었다. 크로아티아로 출발하기 전에도 마음만은 크로아티아에 이틀 일찍 도착한 것처럼 엄마의 마음은 항시 앞서 나간다. 설렘과 조급함 그 사이 엄마의 마음은 왔다 갔다 하나보다.


다음날, 창문을 여니 숙소 밖 아침 풍경이 소설 <작은 아씨들>에 네 자매가 사는 집 앞, 영화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이 사는 집 앞이었다. (나는 누구의 집 앞을 좋아하는 것일까) 아무튼 영화적 판타지를 덧붙여 보니 이 구름을 보니 내가 지구에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지구인으로써 안정감을 느낀다. 구름은 참 매력적이다. 매일 봐도 매일 새롭다. 엄마에게 계속 감탄하며 보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구름을 연신 사진 찍는 내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조식으로 계속 먹던 빵과 치즈, 계란, 소시지를 마지막 아침에도 먹었다. 자연스럽게 식빵 위에 차곡차곡 레이어를 쌓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엄마를 보니 빵이 익숙해진 것 같아 새삼 신기했다. 이번 여행에서 본 엄마의 가장 큰 변화다. 빵은 간식이라고, 주식으로는 거의 먹지 않았던 엄마였는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나처럼 빵순이가 되셨다. 빵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ㅎㅎ  


8일째 먹는 아침빵 공식


마지막 아침, 마지막 숙소를 떠나 마지막 여정으로 크로아티아에서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1949년에 지정한 국립공원 플리트비체를 걷고, 배를 타며 반 바퀴를 돌아보았다. 산책 코스가 길다 보니 엄마는 처음에 풍경을 보다가 걷고 또 걸으니 얼른 골인 지점에 도착하고 싶어 했다. 이번 여행에서 매일 신경 쓴 부분이 엄마의 다리였는데 생각보다 무사히 버텨줘서 다행이지만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엄마의 다리가 한편으로 딱했다.




플리트비체는 두브로브니크만큼이나 크로아티아아의 대표적 관광지라 사람이 가득했다. 요정들이 살만큼 아름다운 곳이지만 나 같은 관광객으로 인해 요정들이 사라졌겠지 ;;


에메랄드빛 폭포가 곳곳에 흐르는 산책길을 다 돌아보려면 3일은 잡아야 된다고 했다. 그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어제 그 산장에 묵으면서 이른 아침부터 찬찬히 걷고 또 쉬고를 반복하고 싶다. 나는 바다보다 산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초록초록 반짝반짝 날씨 요정은 확실히 있었다
정여사도 반짝 반짝

엄마와 공원을 걸으며 내가 물었다.


나 : 여행 마지막날인데 기분이 어떻습니까?
엄마 : 갈라카니 아쉽네. 그래도 가야지요.
나 : 또 오고 싶습니까?
엄마 : 아이고, 그런 마음은 안 듭니다.
나 : 크하하하하. 너무 솔직하시네요.
엄마 : 다른 데 가야지요.
나 : 다음에는 어디 가고 싶습니까?
엄마 : 덴마크, 네덜란드, 베니스. 베니스의 상인 책 7권까지 나왔잖아. 난 읽었어. 베니스를 가고 싶다.
나 : 한번 나오니 다른 곳을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나보다. 비행기를 오래 탈 체력이 있어야겠네. 매일매일 운동 해야 돼.
엄마 : 네. 너무 운동을 많이 해서 다리가 고장났어요.


엄마와의 마지막 인터뷰가 이상한 흐름으로 끝나버렸지만 뭐 어떠한가. 이해하면 된 거다. 다음 대화에서 이해를 못 할 수도 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엄마를 매일 보며 이해하였으니 이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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