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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Feb 17. 2024

동유럽 5일 차 : 여기는 올 만하다고 인정하는 엄마

그곳은 바로 두브로브니크

7박 9일의 일정에서 어느덧 중반을 넘어가는 5일 차에는 크로아티아 하면 여기, 여기 하면 크로아티아로 말하는 그곳 두브로브니크로 향했다. 그만큼 유명하고 즐길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이 날은 여기 한 곳만 돌아다녔다.


12년 전에 촬영 일로 처음 왔을 때 풍경 그대로였다. 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인파의 크기. 아름다운 성곽길과 바다, 우아한 주황색 지붕의 구도심으로 유럽인들의 휴양지로 로마(?) 때부터 유명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예능 '꽃보다 누나' 촬영지로 유명해졌고 해외에서도 판타지 사극 드라마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 더 글로벌하게 알려졌다. (왕좌의 게임 시즌 1 타이틀 음악을 들었을 때 그 전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ㅎㅎ)  


그러니 여행객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린다는 게 가는 길부터 느낄 수 있었다. 두브로브니크에 다가갈수록 이전 여행지에서 느끼지 못했던 교통 정체가 심했기 때문이다. 성곽길 주변과 안이 사람들로 가득 차서 걸을 때도 정체를 느낄 정도. 우리 일행이 맨 먼저 간 곳은 구도심과 바다를 조망하는 스르지산 전망대였다.

크로아티아 패키지여행을 한 사람이면 갖고 있을 이 한 컷


전망대 가다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사진 찍으라고 내려주는 곳이 있는데 이 장면을 다들 여기서 찍었겠구나 알 수 있는 곳이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절벽 가까이 조심스럽게 갔는데 엄마는 나보고 위험하다고 가지 마라며 말렸다. 하지만 가이드가 사진이 잘 나온다는 절벽 가까운 바위 위치를 알려주니 주저 없이 가서 앉으셨지. 나를 향한 엄마의 외사랑도 한 컷 남겼다. >,.<



전망대 주변에는 가슴 아픈 전쟁의 흔적도 있었는데, 1990년대 초 유고슬로비아 내전으로 이곳이 불바다가 되어 같은 민족, 다른 민족 할 것 없이 서로 총을 겨누고 싸웠다고 한다. 총탄 자국이 벽 곳곳에 지금도 남아있었다. 만국공통 전쟁은 언제나, 어디서나 있다. 그때 그 전쟁이 틀렸다는 것을 수많은 이를 잃고 나서 알아야 하는 역사의 공식은 언제 없어질까. 총탄이 무섭게 오갔던 자리는 이제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하다. 인간이란 참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다.


부디 그곳에서 영면하기를...


점심을 먹고 필레 관문을 지나 오노프리오 분수를 지나쳐 아이스크림 가게가 즐비한 플라자 대로를 걸었다. 양 옆으로 오래된 중세 건물과 성곽, 대리석 바닥이 아주 맨질한 느낌으로 반짝이는 것이 한눈에 들어오니 거대한 드라마 세트장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중세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며, 영화 로빈훗에서 본 느낌이 난다고 하셨다. 여기는 올 만하다며 인정까지 하며 말이다. 엄마는 두브로브니크 이름이 어려운지 여기가 어딘지 물어볼 때마다 다양하게 표현했는데, 두부로/두브리크/두부로크리티/두브로티 등 매우 창의적으로 이곳을 불러댔다.


플라자 로드 인파가 엄청나다
비포 앤 애프터?!


배를 타고 아드리아 해를 철썩철썩 느끼기도 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반짝이는 하늘과 바다, 두브로브니크 성벽, 산을 조망하는 것도 좋았지만 구석구석 바위틈에서 수영하는 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엄마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본인 사진을 마구 찍었다.


날이 정말 좋았다.


배를 탄 후 성곽길 걷는 옵션 관광은 엄마의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아 패스하고 범선이 보이는 카페에서 쉬기로 했다. 어김없이 수첩과 펜을 엄마에게 쥐어주며 그림을 그리게 했다. 집중하며 그림을 그리는 엄마가 귀엽고 멋있다.


친해진 일행들과 수다도 나누고 그 많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달디단 민트 초콜릿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자유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두부로, 두브리크, 두부로크리티, 두브로티 그리고 두브로브니크에서 엄마와 보낸 이 날을 잊지 않으리라.


이날 숙소는 보스니아 국경을 넘어간 네움이라는 지역에 있었다. 저녁을 먹고 쉬려는데 엄마는 내심 일행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싶었는지 밑에 술집에 가보자고 했다. 종종 일행들이 저녁에 한잔씩 하는 풍경을 보고 엄마도 어울리고 싶어졌나 보다. 여전히 낯 가리고 있는 나는 그런 엄마가 대단해 보였다. 막상 가보니 엄마가 어울리고 싶은 일행들이 밖에 보이지 않아 아쉬운 대로 둘이서 맥주 한잔을 기울였다. 사야 할 기념품 종류를 안주삼아 얘기하며 보스니아에서 첫날을 보냈다.


엄마가 본 범선과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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