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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Feb 03. 2024

동유럽 3일 차 : 여행은 엄마를 그림 그리게 하다

둘째 날에 엄마의 최애 장소를 만나서도 좋지만, 나는 엄마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직관한(!) 게 참 좋았다. 역시 옛 어른 말씀 틀린 게 (있지만) 없다. '인생은 육십부터!' 세 번째 스무 살을 막 지난 엄마가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만큼 마음껏 그렸으면 좋겠다. 둘째 날 숙소에서 엄마의 드로잉을 내가 괜히 뿌듯하게 한참을 보고 또 보았다. 여행하는 동안 짧고 소중한 자유시간에 엄마에게 펜을 계속 쥐어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나니 셋째 날이 밝았다. 


숙소는 슬로베니아 크란 지역에 있는 작은 호텔이었는데 호텔 앞 울창한 나무에 넋이 나가기도 했다. 기후가 대체적으로 온화한지 나무가 울창하고 어디에나 허브가 잘 자라는 것 같았다. 


 도시 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큰 나무


셋째 날부터는 코스가 꽤 타이트했다. 크로아티아 도착 후 이틀 정도 시차 적응을 했다고 보는 것인지, 셋째 날부터는 기본 세 코스를 돌아보며 이동 시간도 상당했다. 


3일 차, 첫 코스는 포스토이나 동굴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카르스트 동굴이라는데 나는 동굴에는 흥미가 없지만 지구의 신비를 느껴보는 것에 의의를 두고 걸었다. 동굴 입장 시간이 남아 엄마와 모닝커피 타임을 가졌다. 엄마는 어제도 그랬지만, 내가 시킨 에스프레소 잔을 너무 귀여워하며 신기해했다. 그러더니 오늘은 자신도 한번 마셔보겠다고 하여 용기를 냈다. 나는 아주 쓸 거라고 예고하고 잔을 건네고는 엄마의 표정을 유심이 보았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입만 대고는 너무 쓰다고 오만상 인상을 찌푸리는데 어찌나 재밌던지..ㅎㅎ 



엄마의 첫 에스프레소!


이 넓은 동굴에서 교향악을 연주하면 멋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엄마는 예전에 갔던 장가계에 있는 동굴이 훨씬 웅장했다며 비교를 계속 일삼았다. ^^;  동굴에서는 그렇게 세계인들과 함께 동굴 쾌속 열차와 산책을 하였다. 



포스토이나 동굴, 패키지 여행객들이 가득 



다음 코스는 다시 크로아티아로 넘어와 로비니로 향했다. 예전 로비니에 왔을 때 첫인상이 떠올랐다. 촬영 일로 온 터라 카메라 삼각대를 이고 지며 골목을 돌아다녔는데 어찌나 예쁘던지... 이곳에서 일주일 머무르며 그림 그리고 산책하며 보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 나의 모습이 기억이 났다. 대리석 바닥이 닳아서 반들반들한데 오후 어스름 시간대에 골목을 바라보면 주황색 가로등에 반사되어 한층 더 운치 있던 풍경을 만든다. 하지만 이번엔 그때와 달리 설명 들으며 따라다니느라, 카메라 삼각대가 아닌 엄마를 챙기느라 그때의 풍경은 쇼츠 보는 것만큼 짧게 보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 다음을 기약하고 싶은 그림을 사랑하는 곳, 로비니였다. 

내게는 두번째 로비니
운치 가득 로비니 골목 풍경 
엄마가 입은 티 색깔에 시선이 뺏기는데....

로비니에서도 아주 작고 소중한 자유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조금이라도 더 걸으며 골목을 보고 싶었지만 엄마는 앉아서 쉬고 싶어 했다. 그래도 엄마를 끌고 작은 갤러리가 있는 골목을 조금은 탐방하고 집합 장소에 앉아 바다 멍을 때렸다. 약속 시간이 남아 어제에 이어 엄마에게 펜과 종이를 주었다. 자연스럽게 엄마도 그리기 시작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의 구도를 잡기 어려워 계속 풍경과 종이를 교차하며 보는 엄마가, 집중할 때 입술을 오므리는 버릇이 있는 엄마가, 그림을 그리는 엄마를 카메라로 요리조리 담았다.  



엄마가 그림에 집중하는 것 같아 잠시 나는 골목을 탐험하고 오겠다고 하니 엄마가 절대 혼자 두고 가지 말라고 했다. 혼자 있어도 안전할 거라고, 주변에 한국 사람도 있어서 괜찮을 거라고 하니 엄마는 혼자 있는 게 싫다고 하셨다. 나는 같이 있다 잠시 떨어져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데 이런 점은 참 다르구나. 


로비니의 짧은 여행을 뒤로하고 숙소로 이동했다. 내일 일정 때문에 숙소까지 가는 시간이 꽤 걸렸는데 도착한 숙소가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 숙소였다. 하루만 머물고 가기 정말 아까운, 호텔 로브란(Hotel Lovran)이었다. 창문을 여는 방식도 옛날 바로크까지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굉장히 클래식한 방식이었다. 마치 빨간 머리 앤이 다이애나와 함께 수다를 떨며 튀어나오는 상상을 해보았다. 



패키지 여행 끼니의 기대가 꺼져갈 즈음, 이 호텔 지하 레스토랑에서 먹은 저녁으로 다시 기대가 생겼다. 크로아티아식 뷔페여서 안 먹어본 음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같이 먹은 일행이 챙겨 온 고추참치캔과 깻잎김치로 밥을 먹을 수 있어 참 좋았다고 했다. 엄마는 참 한국인이다. ㅎㅎ  


3일 차, 함께 다니는 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식사 때 랜덤으로 앉으니 여러 분들과 인사도 하고 이런저런 스몰토크도 하며 낯을 익혔다. 나는 보기와 다르게 낯을 가리는 편인데, 엄마는 호탕하게 웃으며 스몰토크를 잘하신다. 나도 엄마 나이가 되면 그리 될까, 아니면 엄마가 나만했을 때 낯을 가렸을까. 


엄마를 관찰하는 여행이 점점 무르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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