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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Jan 20. 2024

동유럽 1일 차 : 엄마는 다리가 약하다

나의 다리도 강하지 않았다

엄마와 해외 여행을 간다는 큰 마음을 먹으려다 출발 전전날 내가 몸살이 나버렸지만, 약 먹고 푹 자고 나니 기침도 약해지고 열도 떨어졌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마음이 절로 속상했으나, 금방 나아지리라 내가 나를 세뇌하며 출발 전날 엄마를 데리러 서울역으로 나섰다. 엄마가 탄 열차가 도착하고, 큰 캐리어를 갖고 내리는 엄마를 마주하며 반갑게 인사하고 함께 내가 사는 집으로 왔다.


엄마는 나의 집에 오는 내내 지인과 친구들이 엄마의 해외 여행을 축하해주며 용돈도 챙겨주고, 딸과 같이 가서 부럽다는 둥 미주알고주알 내게 전화로 했던 얘기에 뼈대와 살을 더 붙여서 얘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여행 간다고 파마도 새로 하여 머리카락이 아주 뽀글뽀글해져 왔다. 평소 머리숱에 콤플렉스가 있던 엄마라 부피감이 있어 보이려 그리한 것 같다. 귀여운 나의 엄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짐을 과감히 줄이려고 했다. 엄마의 다리가 좋지 않으니 짐을 많이 들지 않게 않으려면 캐리어를 수화물용 1개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 짐을 내가 들고 이동해야 엄마와 걷는 속도가 맞을 거 같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불필요한 짐을 줄이라 당부를 했지만 캐리어를 열어보니 비상식량으로 참깨 크래커가 크게 한봉다리 부피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것저것 빼야 될 짐을 가득 넣어오셨다. 엄마는 나보고 네가 최종 결정해서 넣고, 남는 건 너네 집에 두면 된다는 생각으로 챙겨 왔다고 참깨 크래커 등 챙겨 온 당위성을 거듭 설명하셨다. 결국, 엄마가 싼 짐을 다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내 짐을 넣을 자리를 만들고 콤팩트한 짐을 싸면서 엄마와 여행 가기 전 일어나기 힘든 일들을 상상하며 이야기하고 설레어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미 여행은 시작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여행은 가기 전이 가장 설레는 법.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안도감, 긴장감이 뒤섞여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돌아다니다 돌아오고 나면 뭔가 아쉽고 미련이 남는다. 엄마도 그런 기분이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두 명의 짐을 하나의 캐리어에 담았다. 다음날 아침 첫 차를 타고 인천공항을 가야 하기에 둘이 아주 일찍 곯아떨어졌다. 잦아든 나의 몸살 기침이 살짝 되살아난 것 같았다. 하핫


새벽 4시 30분 알람 소리에 엄마와 나는 눈을 뜨고 나갈 준비를 했다. 택시를 잡고, 지하철역에 와서 공항철도 첫 차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광활하고 쾌적한 공간의 아침 7시는 추석 연휴를 맞이해 나가고 오는 사람이 가득했다. 나는 여행사에서 찾아오라는 공간을 찾아 직진 모드로 걷는데 엄마는 그런 나를 최선을 다해 따라오셨다. 여행사의 가이드를 만나고 수십 개의 주의 사항을 듣고 준비물을 챙겼다. 가이드의 첫인상은 아주 다부진 베테랑 느낌이었다. 이 예감은 고맙게도 틀리지 않았다.   


여유 있게 도착했겠다, 중요한 여권 등 빠뜨린 거 없겠다, 비상약도 샀겠다 이제 출국수속만 하면 되니 그제야 배고파졌다. 엄마에게 아침을 먹자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하셨다. 내가 이것저것 챙겨야 하니 옆에서 배고프다는 말을 못 한 것 같다. 원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드시던 분이었는데 내 눈치를 본 것이리라 ㅎㅎ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먹는데 엄마 양손 검지가 접히질 않아 빵 봉지와 음료 뚜껑은 다 내가 풀고 열어야 했다. 여행 2주 전에 집 현관문 앞 계단에서 청소하다 미끄러지는 바람에 바를 급히 잡으려다가 손가락들이 삐었다고 했다. 내가 걱정할까 봐 여행 직전까지 말하지 않다가 서울역에서 집에 오는 길에 실토하셨다. 다른 손가락은 일주일 뒤에 나았는데 두 개의 검지가 접히지 않다면서 웃으면서 아파하셨다. 그런 엄마가 안쓰럽다가도 왜 때문인지 웃긴다.


탑승 수속은 줄 서기 게임을 하는 듯, 사람 구경하면서 마치고 탑승게이트 도착. 각기 다른 곳으로 가지만 출발지가 같은 패키지 여행객들이 저마다 일행들과 앉아있었다. 엄마와 나도 게이트 가까운 의자에 앉아 엄마에게 엄마의 십계명을 외우게 한다거나, 반고흐 자화상 그림으로 네덜란드 여행을 홍보하는 컨시어지 화면을 보면서 엄마가 다음 여행지는 네덜란드로 가야겠다 하며 마치 밥을 먹으며 다음 끼니의 메뉴를 정하는 수다를 한바탕 떨었다. 여행사 가이드 분들은 본격적인 일을 준비하는 모드로 서류들을 챙기며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이었다.


탑승이 시작되고 비행기를 타고 자리에 앉으니 엄마는 "아이고, 디다." 하며 벌써 힘들다는 말을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다리가 약하다. 5년 전부터 갱년기에 호르몬 변화가 있어 배가 많이 나오고, 다리는 가늘어졌다. 다니는 직장 일이 다리를 많이 쓰는 일이기도 했고, 운동을 그다지 자주 하지도 않으셔서 얇은 하체에 비해 상체가 두꺼운 체형으로 변했다. 조금만 걸어도 금방 숨이 차고 힘들어하셨다. 근육이 없어지니 무릎 관절이 많이 닳았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올해 무릎수술까지 받은 것이다. 억지로 운동도 하면서 사후 관리를 하지만 그래도 어제부터 비행기 타기까지 일정이 힘들었을 테다.


그래도 창가자리에 앉은 엄마의 얼굴 표정은 떠나는 자의 설렘이 느껴졌다. 기내 방송이 들리고 비행기는 하늘로 날았다. 나는 감기약을 먹었다. 잠이 쏟아졌다. 한숨 자니 첫 기내식이 나왔고 엄마와 나는 별말 없이 각자 모니터 영상을 보며 맛있게 먹었다. 14시간의 장거리 비행시간 동안 나는 먹고, 약 먹고, 자고를 반복하면서 반 기절 모드로 에너지를 충전했다. 장시간 비행에 힘든 엄마는 잠시 복도에서 서있기도 하고 창문을 열어 바깥 풍경을 보며 멋진 성층권의 풍경을 마주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버텼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공항에 도착이 임박했다. 인천공항 약국에서 산 비싼 감기약이 잘 들었는지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행이었다. 기지개를 켜고, 나의 스마트폰에 동유럽 유심을 바꿔 끼웠다. 한껏 자다가 도착할 때 즘 다시 바빠지는 나의 모습을 본 엄마는 나를 신기해했다.


자그레브 공항인데 크로아티아의 박정희 같은 사람 이름을 딴 공항이라고 한다


10시 넘어 출발한 비행기는 16시 넘어 자그레브 공항에 도착하고, 비행기에서 내려 가이드가 알려준 대로 수신기를 켜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수화물을 찾고 플랫폼 어디에서 보는지 알려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행의 시작과 끝에서 이 수신기는 모든 여행 사진에 참조 출연하는데 패키지의 증표라고 볼 수 있다. 복작거리던 인천공항과 다르게 자그레브 공항은 한산했다. 엄마는 입국심사 전 많이 떨려했지만 순탄하게 나왔고 플랫폼에서 가이드를 만나 인사하고 함께 다닐 한국 분들을 처음 보았다. 36명 1인, 가족, 부부 구성이었다. 나와 같이 딸, 엄마 구성도 여럿. 나의 네트워크 밖 사람들을 실로 오랜만에 만났다. 무사히 자신들의 여행을 잘 다니시길 바랐다. 짐을 다 찾자마자 숙소에서 짐 풀고 그럴 시간 없이 바로 버스에 짐과 몸을 넣고 수도 자그레브 도심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처음 마주한 풍경은 미술관이 있는 시티 공원(Trg Kralja Tomislava)이었다. 늦은 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공원에는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엄마도 공원을 보자마자 "공원 멋지다!" 하며 공원과 사람을 구경하며 걸었다.


귀욤폴짝



내가 2009년에 와서  풍경을 다시 마주하니 감회가 남달랐지만 여기저기 건물을 둘러싸고 공사가 한창이었다. 2020 3월에 일어난 지진의 여파로 곳곳에 보수공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깜짝 놀랐다. 그런 일이 있는  몰랐는데... 코로나에 지진까지 겹쳐 힘겨운 시간을 보냈었겠다 생각에 고즈넉한 유럽의 풍경이 거저 얻어지는  아니라, 오래된 건물을 보수하는  또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옐라치치 광장으로 가는 내내 가이드께서 지진과 이후 정세까지 상세히 설명해 주셨다. (는 것만 기억난다)


신호등 갓에도 낙서를 하다니ㅎㅎ


반 옐라치치 광장은 만남의 광장으로 유명하며 도보로 한 시간이면 자그레브의 랜드마크를 두루 돌아볼 수 있는데, 노을이 지기 시작할 때 로트르슈차크 탑 앞에서 바라보는 자그레브 시내 전경은 마음이 포근해지는, 정다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름다움 덕분에 웨딩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했는데 실제로 찍고 있어서 마음속으로 축복(!)을 빌어주었다.


엄마는 오기 전 봤던 여행 프로그램에서 본 풍경을 실제로 보게 되어 반가웠는지 톡파원에서 봤다며 아는 체를 하셨다. 시티공원부터 반 옐라치치 광장까지 걸어가며 트램이 다니는 풍경, 광장의 전경, 분수대, 성 마르크 교회, 오래된 넥타이 가게 등 가는 곳마다 방송에서 봤다고 재방송을 많이 해주셨다. 티브이를 보면서 선행학습을 한 엄마였다. 기념품 가게를 쉽게 지나치지 못했고 거리의 악사를 보며 멋있다고 감탄하셨다. 일정대로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가이드의 발걸음에 무리들이 맞춰갔고 엄마도 최선을 다해 걸었다. 그런 엄마를 나는 계속 카메라에 담았다.  


크로아티아 기념품에 빠지지 않는 성 마르크 교회



저녁은 한식당이었는데 정말 기내식을 든든히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형이상학적 한식이었다. 나는 맛에 무던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맛없는 것을 안 먹어본 거였다는 깨달음을 얻은 식사시간이었다. 일행의 대부분 거의 드시질 못하셨다. 엄마도 엄청 실망하였지만 신기하게도 본인 밥을 남김없이 다 드셨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어둑해졌다. 도심에서 떨어진 큰 펜션 같은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장시간 비행에 한 시간 이상 걷기 운동을 한 엄마는 이내 침대에 누워 자기 다리를 주물렀다. 그리고 나도 엄마의 다리를 주무르고 스트레칭을 도왔다.  


침대에 누워 비행기에서 봤던 영화, 첫날의 소감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에게 물었다.


나 : 엄마가 배우고 싶은 게 많잖아, 앞으로 뭐 배우고 싶어?
엄마 : 그림 그리지. 젊었을 때 동적인 걸 했다면 이제는 다리가 힘등께, 손으로 하는 거 해야지.  (참고로 나의 엄마는 전라도 사투리 80% 경상도 사투리 20% 말투를 가지고 있다)
나 : 엄마 그림 잘 그리잖아. 지금부터 그려도...
엄마 : 가이드가 상당히 자세하게 알려주시더구먼. 오래 하셔서 달인이 되셨구먼. 역사책을 듣는 기분이더라.


급 가이드 칭찬으로 이야기 주제가 바뀌며 엄마의 대화 주제는 파도타기처럼 휙휙 지나갔다. 그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엄마의 다리 괜찮을까 걱정하면서 나 역시 내 다리를 계속 마시지 하기 바빴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연신 각자의 다리를 주무르며 첫날을 마무리했다.



14시간 비행기 타고 온 곳에서 비행운을 만난 반가움에 찍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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