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라 Jan 13. 2024

프롤로그 : 엄마와 여행을 준비하는 자식의 마음가짐

큰 시험이 다가왔다

세번째 스무살은 맞은 엄마께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자식이 여행을 보내줬지, 뭐야 호호호' 같은 엄마가 주변인에게 자식 자랑 거리를 하나 드리고 싶었다. 엄마가  아파 낳은 무려  명의 자식은 아직  누구도 (엄마가 원하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낮은 확률로 손주도 없이 각각   하나 겨우 건사하고 살고 있기에 해외 여행 하나는 보내드려야 되지 않겠나 하는 K-장녀로써 무거운(?) 마음가짐이 나에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엄마께 계모임에서든, 친구와 함께든 해외 여행을 갈 수 있게 돈을 지원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해외여행을 보내준 자식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생각이었다. 하지만 웬 걸, 엄마는 친구와 갈 생각이 아니고 자식과 같이 가는 것으로 찰떡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 엄마의 생각을 확인한 것은 2023년 코로나 비상사태가 종료될 즈음이었다. 그래, 한번은 엄마와 둘이서 떠나는 것도 괜찮지. 그래, 결심했어! 그래, 가는 거야... 그래.. 갈 수 있겠지?  


느낌표에서 물음표로 나의 다짐이 바뀌게 되는 이유는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아는 엄마는 나와 닮았지만 다른 사람이다. 성격, 성향, 관심사, 기질, 식성, 세계관 등 엄마와 나 사이에 접점이 없다. 나의 엄마, 엄마의 자식이라는 강력한 연결고리 외에는 말이다. 또 당연한 말이겠지만, 내가 엄마에게 맞춰줘야 되는 상황이 분명 많을 것이기에 이미 그런 전제로 보내드리는 해외 여행인 것이다. 본디 선물은 받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엄마와의 여행에서 내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을 들었나 놨다 하는 사이, 꼭 들어야 하는 결정적 소식을 들었다.


2023년 5월 나의 이모가 돌아가셨다. 나의 엄마를 어릴 때부터 챙겨준 언니이자,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나를 챙겨주셨던, 만나면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 만담꾼인 이모가 폐암으로 투병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이모를 허무하게 보내고 난 후, 나는 엄마와 꼭 여행을 떠나야했다.  


엄마와 여행을 가기 위해 주제를 잡았다. 엄마 관찰기로 말이다. 마치 영상 과제를 하는 것처럼 엄마를 기록하고 싶었다. 어릴 때 봤던 엄마와 커서 본 엄마는 같은 사람일 것이다. 엄마를 생각하는 내가 달라졌겠지. 60대로 접어든 엄마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몰랐던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무엇인지, 엄마의 꿈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물어보고 엄마가 답하면서 앞으로 나와 엄마는 어떤 관계로 지낼 수 있을지 내게도 큰 힌트가 되어줄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자, 나의 마음가짐은 이정도면 되었다.


여행을 갈 나라를 정하는 것은 속전속결이었다. 예전부터 엄마는 크로아티아를 가고 싶다는 얘기를 수차례 내게 했다. 이유는 내가 예전에 방송 일을 할 때 갔던 크로아티아 영상을 보고 엄마도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너만 가냐, 나도 가자!) 하지만 나의 엄마는 갈대 같은 사람, 한번 결정해도 그 결정이 쉬이 바뀌는 사람이기에 몇 번 더 물어보았는데 그 때마다 크로아티아 만큼은 확고했다. 엄마의 마음이 갈대가 아닐 때도 분명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행지는 정했으니, 일정과 방식이 남았다. 일정은 추석 연휴로 정했다. 개천절과 한글날까지 앞뒤로 열흘 붙여 쓸 수 있어서 직장을 다니는 나도, 직장이 없는 엄마도 딱 좋은 일정이었다. 그 다음, 여행 방식은 조금 고민했다. 나 혼자 크로아티아를 여행한다면 당연히 자유 여행으로 비행기, 첫날 머물 숙소 정도 예약하고 대중교통이나 차를 렌트해서 즉흥적으로 느낌으로 돌아보겠지만 엄마와의 여행은 내가 엄마를 보는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기에 자유여행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엄마가 길 눈이 밝고, 해외 여행 경험이 어느 정도 있다면 조금이나마 고려해봤겠지만 엄마는 스마트폰을 쓰지만 카카오톡과 전화기 본연의 소통 기능만을 충실히 쓰는 분이며 몇 년 전 계모임에서 단체 패키지로 떠난 중국 장가계가 엄마의 첫 해외이자 가장 최신 여행이기 때문이다. 내가 낯선 곳에서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긴장감 속에서 이동 동선과 숙식을 컨트롤하면서 엄마까지 챙기는 것은 너무 무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내키지는 않지만 패키지 상품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패키지를 알아보는데 무엇을 중점으로 봐야할지 고민하다가 직항이 있다면 우선순위로 두자 싶었다. 장거리 비행시간에 경유는 다리가 불편한 엄마에게 첫날부터 고생길을 만들어주는 셈이니. 그렇게 노랑, 파랑, 빨강 등 각종 여행사 로고 색깔별로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직장 동료가 크로아티아 전세기 직항이 있는 투어 상품을 알려주었다. 오호 - 원래 없던 상품인데 추석맞이 대한항공과 하나투어가 크로아티아 전세기 직항편을 런칭한 것이다. 일정도 추석 연휴에 투어 코스도 괜찮았으니 안 괜찮은 가격은 일단 안 본 셈 치고(;;) 계약금을 내었다. 몇 달에 걸친 실질적 여행 준비는 이것으로 다 되었다.


패키지 여행을 결제하고 동생들에게 엄마와의 여행을 간다고 얘기하니 언니, 누나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동생들의 응원에 힘입은 것인지, 힘벗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나의 마음가짐은 한껏 강해졌다. 같이 가기로 한 이상, 물러설 수 없다. 9월 29일 여행을 떠나는 날, 최적의 컨디션을 위해 엄마의 다리 근육을 만들어야 했다. 7월 오른쪽 무릎이 좋지 않은 엄마는 수술까지 받았기에 매일 엄마에게 다리 운동을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내며 나도 매일 운동을 하였다.


출발 날짜가 다가오면서 엄마는 짐은 어느 정도로 싸야 하는지, 어느 계절에 맞춰서 옷을 준비하는지, 약은 무얼 챙기는지, 많은 질문을 하였고, 나는 엄마의 네이버가 되어 답을 드렸다. 그리고 내게 설렌다고 했다가 무섭다고 했다가 기대된다고 했다가, 사람 사는 데 비슷하겠지 하면서 왕왕 수다를 떠셨다. 그런 엄마의 들뜬 목소리를 들으니 처음 태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나의 20대가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나의 과거가 엄마의 오늘이 될 수도 있음을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았다.


그렇게 엄마가 마치 옆에 있는 것마냥 매일 통화하며 챙길 것, 안 챙길 것 준비를 하니, 출발 전날이 다가왔다. 본가에 있는 엄마가 서울로 올라와 내 집에서 같이 자고 다음날 새벽같이 인천공항을 향해야 했다.


그런데 마음가짐을 먹는데 기력을 다 써버린 걸까? 아뿔싸, 내가 몸살이 나버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