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사람을 지배한다.
공간은 사람을 지배한다. 는 말이 어디서 처음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말인데, 이 책을 보면 ‘공간이 왜 사람을 지배하는지’를 여러 가지 건축사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에, 건축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건축가이자 이 책의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을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해보자면 공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대중들에게 인지시켜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건축은 정말로 사회를 구성하는 인문학 그 자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심리학, 경제학, 디자인, 미술, 사회학, 부동산 원리 등 많은 요소들을 건축에서 찾아 조목조목 설명해주기 때문에,
아마 이 책을 읽은 후부터는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거리나 건물, 동네에 대해서 예전과는 달리 분석적으로 한편으로는 감성적으로 내가 만나는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또 산업디자인과 건축을 비교하는 설명도 많이 사용하는데, 우연히도 나는 산업디자인과 소비자 행동을 전공해서 인지 책에서 익숙한 부분도 종종 보이고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건축의 행동 유도 기능과 이에 관련된 심리 이론(방관자 효과나 판옵티콘, 자세나 위치에 따른 권력 효용 체감 이론) 들이나, 상업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부분들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는 상권이 좋을 것이다) 은 실생활에서 내가 살 집의 구조를 결정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부동산 투자를 할 때 유용한 점이 많을 것 같다.
또, 내가 지금 디자이너가 아닌 기획자나 마케터로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여느 디자이너라면 해봤을 고민이기도 하고, 작가 말대로 창조하는 직업이라면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나의 정체성과 대한민국인으로서 내가 만들어내는 것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나름의 대답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한편으로는 건축가인 저자가 산업디자이너들이 건축에 많이 진출하면서 가볍게 접근하는 방식이나 고유한 영역이 침범당한다고 느끼고 있어서 다소 비판적으로 디자인과 건축을 함께 하는 자하 하디드 같은 건축가들에 대해 언급한 것 같기도 하고..ㅎㅎ)
건축가로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느끼는 설움과 사회적 대접에 대한 억울함도 비슷한 전공을 가진 사람으로서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하며 어찌어찌 무난히 잘 읽은 책.
이외,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아래에 따로 정리하면서 간단히 마무리할까 한다.
[이벤트 밀도와 거리의 속도]
걷고 싶은 거리는 걸으면서 만나는 새로운 경험이 자주 있어야 하고 (이벤트 밀도) 어쩐지 머무르고 싶게 끔 거리의 속도가 늦춰주는 카페의 야외 데크가 많으면 좋다. (거리의 속도), 그리고 어쩐지 들어가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지게끔 절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오픈되어있어야 한다 (절과 교회의 구조적 차이)
[공간은 권력을 상징한다]
공간은 구조와 위치를 만든다. 그래서 공간은 권력을 상징한다.
그래서 종교적 건축의 구성이나, 왕이 사는 성의 구조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게 구성되어 있고, 정치적으로 이용가치가 아주 많은 기술이었을 것이다.
[팔리는 건축은 감정이 있어야 한다]
만약 자본주의 사회에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감성을 꺠우는 공간을 건축한다면 더 잘 팔릴 것이고 현대 도시는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건축은 과거에 과학이었다?]
과거에 건축은 과학이었다. 의술은 미신이었다. 이 두 학문은 19세기에 운명이 바뀌었다.
의학은 과학을 택해서 서비스가 되었다. 건축은 예술을 택해서 사회적 대접이라는 면에서 퇴보해왔다.
건축은 예술이기도 하고 과학이기도 하고 경제 정치 사회학이 종합된 그냥 ‘건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