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40대 라니?)
40대가 되면 친구가 많이 없다고 하던데...
나도... 그렇게 되네?
나는 40대가 되면서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마지막 회사를 퇴사하면서 연락처 정리를 했다.
연락처 정리를 하면서 ‘이 사람은 누구지?’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이름만 봐도 그립고, 아련한 사람도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들을 제일 먼저 지우고, 누군지 알지만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사람도 지우고, 마지막으로 아련한 사람의 연락처를 지울 때는 손가락이 핸드폰 액정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고민을 한다.
‘어차피 그 사람은 나라는 존재는 잊고 살 텐데 나 혼자 뭐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과감히 삭제 버튼을 누른다. 살짝 후회가 됐지만 문뜩문뜩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네...
가족, 친지 연락처를 빼고 근근이 연락하는 친구 몇 명을 빼고 나니 연락처 목록이 엄청 짧아졌다.
순간 ‘나, 죽으면 찾아 올 사람도 없겠는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회생활 초창기엔 퇴근하고 동료들하고 포장마차에 들려 우동 한 그릇에 소주 마시는 걸 좋아했고, 친한 친구들하고도 자주 만나서 놀았다. 장래 희망이 개그맨이었던 나는 어딜 가나 분위기 메이커였다.
그때는 그렇게 붙어 다녔던 시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얼굴도 가물가물 해진 시절인연들로 끝나버렸다.
사람을 잘 믿고 좋아했다. 대화하는 걸 좋아했고, 잘 웃고, 잘 떠들어댔던 나는 사회생활을 오래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점점 말수도 줄어들고, 웃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질리기 시작했다.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웹디자이너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핸드폰을 들어 회사 사이트를 보여주며 디자인이 어떤지 물어보거나 디자인해 달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돈 받고? 공짜로 해달라는 사람들뿐이었다.
자주 회사가 망하다 보니 친구들도 나가기 싫은데 위로해 준다고 나오라고 하더니 “너 어차피 회사 금방 구하잖아? “라는 시답지 않은 위로를 하며 본인 힘든 얘기에 밥값은 더치로 하자던 친구들도 있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은 결혼하고 애 낳고 나면 가정에 집중해 살다 보니 만나더라도 아이들 때문에 몇 마디 나누고 신데렐라처럼 정해진 시간이 되면 급하게 헤어져야 했다. 좋아요나 간단한 댓글로 안부를 묻는 온라인 친구가 되어버렸다.
회사가 망해 갈 때 혼자 살겠다고 뒤통수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동료들끼리 더 돈독해질 때도 있지만 퇴사하고 그나마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간 사람은 그때 일을 부끄러워해 연락을 끊는다.
나에게 이런 일들이 자주 생기다 보니 점점 사람을 못 믿게 되고,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도 의심을 하게 됐고 친구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점점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내 곁에는 부모님과 언니 두 명, 조카 네 명이 있어서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가족 말고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다.
가족끼리 하는 대화 말고 그냥 일상 대화가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온라인상에 내 이야기를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름 오래됐다. 그렇지만 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공감을 받지 못한다. 그래도 나는 대화가 하고 싶어 꿋꿋하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생일 때도 축하메시지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점점 생일에 감흥이 없어진 것 같다. 감흥은 없지만 축하는 받고 싶은 마음에 자축하는 그림을 올렸다. 온라인상에서 모르는 분들에게 축하받고 싶을 때 잠깐이지만 축하받는 기분이 묘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혼자가 좋다가도 친구가 필요하기도 하고, 외롭지 않은데 외로워... 어우... 나도 나를 모르겠다. ‘누가 나 좀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 줘’
홍희정 작가님의 장편 소설로 ‘시간 있으면’이라는 전제가 붙는 뭔가 귀엽지만 외롭고 슬픈 제목의 소설이 생각났다.
퇴사 후 사회생활을 안 하다 보니 사람을 만날 기회가 더 적어졌다. 누굴 만나려 해도 낯가림이 심해져 주저주저하게 된다. 나이 들면 더 외로워진다는데 지금이라도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러 가보자...
어디로 가야 하나......
어떻게, 시간 있니?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