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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카 Jul 19. 2021

2. 중국시장 거리의 소극장, 그리고 망할 닭튀김

앙드레 씨와 신비한 언어를 하는 사람들

2. 중국시장 거리의 소극장, 그리고 망할 닭튀김



오영광의 빈티지 BMW는 뽀르뜨 디브리를 통과하여 차이나 타운으로 들어섰다. 차이나 타운은 그가 거주하는 이브리 시와 경계를 나누는 빠리 13구에 위치해있다. 뽀르뜨는 ‘문’이라는 뜻이며 ‘뽀르뜨 디브리’라 함은 바로 이 지점이 이브리에서 빠리로 들어오는 문, 또는 거꾸로 빠리에서 이브리로 빠져나가는 문임을 뜻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뽀르뜨 드 차이나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이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빠리가 아닌 중국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대로변으로는 빨간색 노란색의 커다란 간판을 내건 중국 상점들과 인테리어가 서로 비슷비슷한 중식당들이 줄지서 서있고, 빠리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길거리 노점상도 많이 보이는데 이들은 통행에 불편을 끼치지 않을 만큼 적당한 곳에 자리를 펴고 부추나 청경채 같이 프랑스 식품점에서는 볼 수 없는 야채들을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길을 다니는 사람들도 온통 중국사람이다. 물론 게 중에는 베트남 사람, 일본 사람, 캄보디아 사람 그리고 오영광처럼 한국 사람도 분명 섞여 있겠지만 행인들의 정확한 국적을 일일이 따질 필요는 없기에 모두 통 털어 그냥 중국사람들이라 부른다. 오영광은 자신의 국적이 이렇게 왜곡되는 것이 매우 못마땅했다. 우아한 에르메스를 걸친 그가 아무렇게나 차려입고 장 보러 나온 허접한 인파 속으로 들어온 것도 자존심 상했다. 물과 기름은 결코 섞일 수 없는 법. 빠리 방돔 광장의 명품 매장과 미슐랑 3성 레스토랑을 누비고 다녀야 마땅할 자신이 이 촌스러운 시장 거리에 있다는 것은 몹시 견디기 힘든 일이었으나 개척교회의 형편없는 재정으로는 이 동네에 예배당 장소를 임대하는 것도 빠듯하기만 했다. 


그의 교회가 일요일마다 빌려 쓰는 장소는 어둡고 허름한 소극장이었다. 사실 말이 번듯해서 소극장이지 의자 50개가 겨우 들어가는 비좁은 공간이며 그것도 공연이 없는 날이 허다해서 별의별 용도로 다 대여하는 곳이었다. 때로는 학생들의 모임 공간이 되기도 하고 잔칫날 식당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오영광 덕분에 일요일은 교회가 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어있는 날이 더 많았다. 

처음 장소를 물색하러 갔던 날 중국인 극장 주인은 공간 사이를 최소화하고 의자를 꽉 채워 넣으면 그래도 100석은 거뜬하다고 우겨댔었다. 사실 오영광이 거느린 신도 수는 아이들까지 다 합해서 겨우 열명이기 때문에 굳이 좌석 수를 따질 필요는 없었지만 그는 워낙 미래지향적인 사람인지라 조만간 신도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임을 확신하며 점잖게 거드름을 피웠던 것이다. 


“인원이 정확히 몇 명이나 됩니까?” 극장 주인이 물었다. 


“총인원은 약 50명 정도 됩니다.” 


오영광은 앞에 ‘총’을 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총’이라는 단어는 현재 참석하고 있는 신도들의 가족, 지인, 이웃 등 향후 교회 멤버가 될 수 있는 '잠정적' 신도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극장 주인도 오영광의 눈에는 잠정적 신도로 보였다. 오영광이 거쳐 지나가는 모든 곳에서 불 같은 복음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극장 주인은 수염 난 남자의 비장함 가득한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리고 바쁜 손짓을 하며 말했다.


 “어쨌거나 대여 시간은 정확하게 지키시오. 오후 세시부터 다섯 시 까지오.” 


주인장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오영광과 그의 신도들은 너무 일찍 도착하거나 종료 시간을 초과하기 일수였다. 그들은 예배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자리에 남아 수다를 떨며, 그들의 용어로 말하자면 '신도 간의 교제'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비어있는 극장이니 시간을 지키던 말던 상관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발생했다. 근처 KFC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배우 지망생이 야심 차게 준비한 자신의 데뷔작을 이 극장에서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녀는 샤넬 넘버 5의 장미향을 폴폴 풍기며 벌써 대 배우가 다 된 듯한 포스로 자신의 스텝들, 그러니까 조명을 맡은 그녀의 빡빡머리 남자 친구와 음향을 담당한 그녀의 깍두기 머리 남동생 그리고 의상과 분장을 책임지는 초록머리 여동생과 함께 극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오영광과 그의 신도들은 마침 KFC에서 포장해 온 따끈따끈한 닭튀김을 먹으며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창문도 부실한 데다가 환기 시설까지 빈약한 소극장에는 찐득한 닭튀김 냄새가 그윽했다. 여배우의 인상이 바로 일그러졌다. 이제 곧 관객들, 그러니까 그녀의 친구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텐데 그놈의 지긋지긋한 닭 냄새가 자신의 데뷔 무대까지 따라와 훼방을 놓는 것이다. 


“당신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여배우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오영광과 그의 신도들은 입에 닭을 문 채로 여배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표정에 얼마나 노여움이 가득했던지 아무도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실 입 안에 닭이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영광이 급하게 입안의 닭을 우물거려 넘기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자매님. 이리 오셔서 함께 KFC 닭튀김을 좀 드시겠어요?” 


오영광은 저 요란하게 치장한 여자와 그녀의 패거리들이 지금은 무슨 영문인지 화가 잔뜩 나 있지만 자신의 교회에 발을 들인 이상 언젠가는 그의 신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친절하게 전도를 해 볼 의향이었다. 그는 그녀가 곧 무대에 올라 여배우로서의 첫걸음을 시작한다는 것과 평일에는 KFC에서 지겹도록 닭을 튀긴다는 사실을 알턱이 없었다. 

여배우는 즉시 오영광을 향해 닭 같은 소리 집어치우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빨갛게 칠한 입술 사이로 욕설과 험한 말들을 마구 쏟아 내더니 


“당장 저 망할 닭튀김을 가지고 꺼져버려!”라고 최후의 엄포를 놓았다. 


이 뜻밖의 상황에 오영광은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였으나 그의 순진한 신도들은 겁에 질려 후다닥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때 당황한 여 신도 한 명이 입에 물고 있던 닭튀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여배우가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다시 악을 썼다.


“저 망할 닭튀김 치우고 가!” 


여 신도는 너무 놀라 손을 후들거리며 문제의 닭튀김을 얼른 주어 다시 입 안에 넣었고, 오영광과 그의 신도들은 도망치듯 정신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날 밤 화가 잔뜩 난 극장 주인이 전화를 했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그는 격앙된 어조로 오영광에게 중국어를 마구 쏟아부었다. 그러다가 다시 프랑스어로 말을 이어가기도 했는데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워낙 화가 난 상태여서 중국식 억양과 발음을 그대로 프랑스어에 접목했기 때문에 이것이 도체에 중국말인지 프랑스 말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분명 오늘 낮에 있었던 그 일 때문인 것 같은데 알아듣지 못할 발음으로 뭘 그리 오랫동안 떠들어대는지 귀가 멍할 정도였다. 오영광은 아마 극장 주인도 그 요란하게 꾸민 여자로부터 호된 욕을 먹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극장 주인은 한참을 그렇게 떠들더니 어느 정도 화풀이가 되었는지 다시 또박또박한 프랑스 말로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대여시간을 철저히 엄수해 주시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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