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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카 Feb 19. 2022

8. 왕년의 오페라 가수

앙드레씨와 신비한 언어를 하는 사람들

8. 왕년의 오페라 가수


왕년의 오페라 가수 최귀녀 성도는 화장을 곱게 하고 어깨를 많이 강조한 80년대 풍 정장을 갖추어 입은 채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지난주 내내 날씨가 흐리더니 오늘은 창 밖으로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창밖을 잠시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입고 있던 정장을 벗고 실내용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집안에서는 늘 이 연어 색 운동복을 입는다. 그러니까 일주일 중 주일예배와 기도모임에 가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5일을 이 운동복 차림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녀의 거실은 매우 좁았다. 비단 거실뿐 아니라 방, 화장실, 부엌 할 것 없이 전체적으로 상당히 비좁은 아파트였다. 거실은 2인용 소파와 작은 탁자 그리고 4인용 식탁만으로도 벌써 가득 찾다. 그녀는 가구 사이의 좁은 공간을 몇 걸음 왔다 갔다 하다가 소파에 않았다. 그리고 전화기를 짚어 들었다. 주찬양 집사가 그녀에게 전화 한 지 딱 20분 만이다. 


‘‘응, 주 집사님, 나야. 최성도. 에스더 집사 좀 바꾸어 줘요’’ 그녀가 콧소리 가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주집사의 아내 에스더가 전화기를 받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응, 에스더 집사. 몸은 좀 어때? 걱정돼서 전화했지.’’ 


최귀녀는 탁자 위에 놓인 땅콩 그릇으로 손을 뻗으며 여유롭게 장시간 통화에 들어갈 자세를 취했다. 


‘‘그렇지, 그럴 땐 누워서 가만히 있어야 돼.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런데 있지. 우리 집에 왔던 그 조선족 할머니 말이야. 내가 그 여자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받았는지 알아?’’ 


최귀녀는 난데없이 얼마 전 있었던 가사 도우미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에스더가 무어라 대답할 틈도 없이 하소연을 시작했다. 


할멈이 어찌나 일을 못하는지 집안일 가르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도우미 할멈은 잔귀가 먹었는지 최귀녀가 아무리 설명해도 잘 알아듣지 못했단다. 그녀가 인내심을 가지고 반복해서 설명해 주었지만 할멈은 집중은커녕 먼 산만 쳐다보며 가르쳐주는 사람의 정성을 무시했다고 한다. 


또 음식 솜씨는 얼마나 형편없는지 아주 기초적인 것도 몰랐다. 감자 복음의 감자는 칼로 잘고 가지런하게 썰어야 하는데 할멈은 강판의 굵은 구멍으로 숭숭 갈아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할멈의 감자볶음은 흐물거려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볶음밥은 또 어떤가? 양파, 당근, 햄, 계란, 등 모든 재료를 각각 따로 볶은 뒤 다른 접시에 담아 두었다가 마지막에 밥과 함께 모두 합쳐 볶아야 하는데 할머니는 그 규칙을 어기고 제일 먼저 양파, 그다음 당근, 그다음은 계란을 넣고 마지막에 햄과 밥을 넣는 식으로 한 번에 볶아 낸 것이다. 

최귀녀는 이것을 알아채고 할멈에게 제대로 된 방법을 가르쳐 주었으나 할멈의 고집이 얼마나 센지 그녀의 충고를 무시하고 여전히 자신의 방법으로 볶음밥을 했다. 최귀녀 식으로 하면 설거지 거리도 많이 나오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섞이는 건 다 똑같다는 천한 소리로 최귀녀를 설득하려고 했다. 


최귀녀는 그런 할멈의 태도가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할멈이 나이가 들면서 미각을 상실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어떻게 두 방법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단 말인가? 최귀녀는 섬세한 여인이기 때문에 그 미묘한 맛의 차이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요리뿐만이 아니다. 청소는 또 어떤가? 중력의 법칙 때문에 바닥이 제일 지저분하기 마련이니 먼저 바닥을 청소하고 그다음에 식탁을 닦으라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할멈은 식탁을 먼저 닦고 난 후 바닥을 쓸었다. 

게다가 할멈은 최귀녀의 방식이 옳지 못하다며 그렇게 하면 식탁에 있던 빵 부스러기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니 두 번 일을 하게 된다며 고용주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다. 최귀녀는 할멈이 자신을 식탁에 빵부스러기나 흘리는 교양 없는 여자로 취급한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으며 일자무식인 주제에 자신처럼 지적인 사람을 가르치려 든 것은 더욱 참을 수 없었다.


이런 갈등이 반복되자 최귀녀는 결국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할멈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위궤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밤에는 불면증까지 찾아왔다. 그래서 자신이 돈을 써가며 가사도우미를 들이는 이유는 편한 서비스를 받고 제대로 된 음식 맛을 보기 위함이지 위궤양과 불면증에 걸리기 위함이 아니라고 소리 지른 후 할멈에게 당장 나가라고 했다.


그동안 일자무식 할멈 때문에 얼마나 심신이 피로했던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단다. 그래서 오늘 교회에 가서 주님께 위로받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에스더가 몸이 아픈 바람에 자신을 픽업하러 올 수 없게 되어 이렇게 햇살이 좋은 날 그녀의 마음은 우울하기 그지없다고 했다.  


‘‘그런데 말이야. 지난번에 우리 집 방 보러 왔었던 그 학생 있지.’’ 그녀는 화제를 바꾸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응? 아이 간식 줄 시간이라고? 아니 허리도 아픈데 믿음이 아빠 시키지 왜 자기가 해?’’ 


그녀는 에스더의 허리를 걱정하는 듯했으나 속내는 통화를 더 오래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짜증이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응. 그럼 내가 좀 있다 다시 전화할게.’’ 


그녀는 자신의 수다가 무슨 중요한 안건이라도 되는 듯 마땅히 다시 통화해야 한다는 어투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중대 안건이 상대에게는 그제 쓸데없는 푸념과 귀찮은 수다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최귀녀는 교양 있는 여자였기 때문에 아무 때나 사람들에게 전화 걸진 않았다. 그건 무례한 사람이나 하는 행동이다. 그녀는 늘 시간을 관찰했다. 

에스더는 주부라서 식사시간 전 후로는 부엌에서 할 일이 많다. 그러니까 아침과 점심 사이, 점심과 저녁 사이, 그리고 저녁 설거지를 마쳤을 즈음에 전화를 하면 한 시간씩 통화할 수 있다. 


지혜 자매의 경우 낮에는 주로 밖에 있기 때문에 오래 통화하기가 힘들다. 그녀가 귀가해서 저녁식사를 마친 즈음 그러니까 밤 여덣시부터 열두 시 사이에 전화하면 된다. 지혜는 어차피 야행성이라 늦은 밤에 전화해도 상관없는 것이다. 게다가 여자 혼자 외국에 있으니 최귀녀처럼 인자한 교회 성도가 늘 곁에서 조언 해주면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지혜에게 전화 했으며 그때마다 자신의 위궤양과 불면증 그리고 그 원인이 된 사건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전화를 내려놓은 최귀녀는 시계를 보았다. 에스더와 통화한 시간이 고작 30분이었던 것이 무척 아쉬웠다. 보통 한 시간이 기본인데 말이다. 지혜는 아직 교회에 있을 테니 통화할 수 없다. 최귀녀는 아쉬운 마음을 접고 TV를 틀었다. 지혜가 귀가할 때 까지는 TV로 무료함을 달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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