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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Mar 05. 2021

주치의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 3) 상담과 조율

헬스케어 디자이너가 미국에서 눈여겨본 일곱 가지

아이가 태어난 후, 내 주치의보다 아이의 주치의를 더 자주 보고 연락하게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아빠의 건강보험에 추가된 아이는 신생아 때부터 자신만의 주치의가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 KP에서 아이의 부모나 보호자(guardian)는 아이가 12세가 될 때까지 아이의 온라인 의료 기록과 이메일 등의 서비스에 대해 모든 권한을 가지며, 13세부터 17세까지는 아이의 의사와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고 예방접종 기록을 확인하는 제한적인 권한을 가질 수 있다. (참고. KPWA - Access your child's medical records online) 생후 한 달 때 분수토를 걱정해 급히 잡은 당일 진료 때 만난 Dr. H를 내가 아이의 주치의로 변경한 후, Dr. H는 아이의 건강 관리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KP Washington은 출산 후 병원에서 KP의 당직 의사가 매일 아이를 진료한 후, 출생 후 3~5일, 7~14일, 2/4/6/9/12개월, 15~18개월과 이후 2~17세에 매년(단, 6~10세는 6, 8, 10세로 2년에 한 번) 영유아 검진을 실시한다. 덕분에 특별히 아픈 곳이 없어도 아이의 주치의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변비, 기저귀 발진, 알러지와 같이 듣기에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아기와 아기 엄마에게는 버거운 증상들로 인해 주치의와 더 긴밀히 연락하며 의지하는 입장이 되었다.

 

아이의 모든 진단과 치료를 주치의만 담당한 것은 아니다. 생후 6개월, Dr. H는 뒷머리가 비대칭이 된 아이를  살펴보고 아이 머리 모양에 대한 내 걱정에 귀를 기울인 후 아이를 시애틀 어린이 병원(Seattle Children's Hospital, SCH)의 머리얼굴 클리닉(Craniofacial Clinic)으로 의뢰했다. 시애틀 어린이 병원에서 사두증 치료를 추천받고 교정 전문 기관인 행어 클리닉(Hanger Clinic)으로 연결된 아이는 이후 3개월 동안 헬멧 치료를 받았다. 아이에게 일어나는 모든 건강 문제를 주치의가 알고 있고, 외부 기관에서 진행되는 치료 역시 주치의가 조율했기에, 아이의 건강 문제에 관해 주치의에 연락할 때마다 긴 설명과 부담이 필요 없었다. 나는 "◻︎◻︎ 엄마 효진이에요. (This is ◻︎◻︎'s mom, Hyojin.)"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메일을 쓰고 있다.


사진(위)/이미지. KP Washington Medical Center들의 진료실(Exam room) 내 컴퓨터의 대기화면에서 동일하게 보여지는 메시지 중 하나인 "All of your health care needs coordinated and connected(당신의 모든 헬스케어 니즈들이 조율되고 연결됩니다.)". 환자가 자신에게 배정된 진료실에서 의료진을 기다리는 동안 공용 컴퓨터 화면에서는 KP의 서비스를 요약한 화면들이 계속 반복된다. 조율(coordinated)과 연결(connected)는 KP가 강조하는 중요한 가치들이다. 

생후 10개월, 아이가 먹는 이유식의 양이 늘어가며 아이의 변비도 심해졌다. 아이의 변비가 너무나 큰 근심이 되었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다 못해 정기 영유아 검진이 아닌 시기에 화상 진료를 예약해, 화요일 아침 일찍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전 영유아 검진 후 6주 만에 화면으로 만난 Dr. H에게 아이를 잠깐 보여주며 근심을 토로한 후 의사와 둘이 마주 앉아 본격적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그동안의 변비 패턴을 설명하고 복용 중인 유산균을 보여줬다. 주치의는 자신의 화면을 공유해 아이가 쓸 수 있는 좌약 제품을 보여주며 사용법을 설명했다. 또 변 완화제를 사용하기 전에 먼저 식이를 바꾸어보자며 쌀과 고구마와 바나나를 먹이지 말고, 물과 주스로 수분 섭취를 늘리도록 했다. 모든 상담 후에 Dr. H는 아이의 경과에 대해 금요일에 메일로 연락해 약이 필요할지 다시 의논하자(“Let me know on Friday how she is doing.”)고 했다.


사진. 주치의를 화상으로 만나면서 주치의의 화면 공유로 구입해야 할 좌약에 대해 설명을 듣고 메일로 아이의 상태에 대해 계속 의논했다. 변비를 두고 긴밀하게 연락하며 주치의에 대한 믿음과 감사함이 더욱 커졌다. 

KP에서 주치의와의 관계는 진료 시간에만 상담하고 끝나는 일회성이 아니라, 경과와 추후 치료 계획에 대해 언제든 메일로 연락하고 상담할 수 있어 늘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다. 좌약과 바꾼 식이로 점차 변비를 극복해가는 아이의 상태에 대해 며칠 후 Dr. H에게 메일로 업데이트하며, 상태가 괜찮아지면 쌀과 고구마와 바나나를 다시 먹여도 될지 질문했다. 주치의는 다행이라며("This is good to hear.") 쌀과 고구마와 바나나는 조금씩 주되 변이 딱딱해지면 다시 제한하자며 계속 상태를 보자는 답장을 보내왔다("Let's see how she does.").


메일을 보낼 때마다 즉각적으로 답을 받는 것은 아니다. KP 홈페이지와 앱에서 메일을 보내는 화면에는 급한 이슈가 아닌 내용에 대해서만 메일을 이용하고, 대답을 받는 데 근무일 기준 2일까지 걸릴 수 있다(within 2 business days)는 설명이 나온다.


화면. 나와 아이를 담당하는 의사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화면. 급하지 않은 내용에만 이메일을 사용하고, 회신에 근무일 기준 2일까지 걸릴 수 있다는 안내가 나온다. 수신자는 주치의, 이전에 진료를 받았던 의사들, 그리고 24/7로 상담을 제공하는 Consulting Nurse Service 중에서만 선택할 수 있다. 메일의 제목으로 새로운 증상이나 염려, 기존 이슈에 대한 업데이트, 약에 대한 질문, 의뢰(referral)에 대한 질문, 의료 기록이나 형식, 기타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아이의 주치의를 반복해서 만나고 연락하며 아이에게 주치의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의사가 최고의 명의나 최고로 친절한 의사여서가 아니라,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고 언제든 이메일을 통해 비용을 염려하지 않고 상의하거나 질문할 수 있고 필요하면 아이를 적절한 전문과로 연결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의지가 됐다. 아이 변비가 나아졌는지 금요일에 메일로 알려달라는 말, 알러지가 의심되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테스트를 한 후 증상이 나타나면 알려달라는, "알려달라"는 그 말과 그 말을 전할 수 있는 통로가 아이가 받는 케어를 점이 아니라 선으로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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