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특수부가 특수한 이유
왜 지금 윤석열인가.
두 전직 대통령 구속기소. 이 사실만으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부(이하 특수부)는 그들의 성과에 도치돼 있다. 정치보복이라는 정치권 비난을 보란듯이 특수부는 수사로 말했다. 검찰이 밝혀낸 혐의들이 발표되자 검찰 수사가 정치보복이라고 비난하던 정치권 목소리는 쏙 들어갔다.
하지만 목표를 정하고 시작된 수사는 강압수사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검찰 내부에서도 저인망식 수사, 창피주기식 압수수색, 협박으로 느껴질 만큼의 고압적인 조사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검찰총장은 인권 침해적 수사 관행을 버리라고 강조했지만 큰 길 하나를 거리에 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구태의 수사 방식으로 몰아붙였다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검찰은 앞으로 수사하지 말고 경찰이 수사해온 것을 기소만 하라는 공격까지 받았다. 검찰은 매 정권마다 급진적인 검찰 개혁 요구에 맹렬하게 저항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2012년 중수부 폐지를 추진하던 한상대 검찰총장은 후배들의 사퇴 압력에 옷을 벗어야 했다.
2018년 문무일 검찰총장에 대한 사퇴 압박도 있었지만 이명박근혜 정부 9년 동안 검찰이 적폐를 방조했다는 비난 등이 거세 내부에서도 거센 검찰 개혁 파고에 저항하지 못한 것이다. 정권의 요구이든 조직 논리든 검찰이 목표를 정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행한 과오의 결과였다.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이런 위기의 검찰을 구하는데 일조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장악하고 있다. 일반 국민이 보기에 기관장이 소속 부서를 장악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폐지된 뒤 사실상 검찰을 대표하는 최고 수사 부서가 됐기 때문에 이름대로 ‘특별’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입성하기 위해선 법무부 장관 ‘빽’이나 검찰총장 ‘빽’이 있어야 가능했다. 물론 서울중앙지검장의 TO(table of organization, 정원(定員))도 있지만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견제로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검찰 최고의 수사 부서를 장악하는 일을 막았다.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해 생기는 부작용이 바로 ‘우병우 사단’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검찰 인사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이 돌자 검찰은 검찰총장이 아닌 우병우 눈치를 보는데 급급했다는 지적이 박근혜 정권 내내 제기됐다. 그의 영향력은 검찰 밖까지 미쳐 그와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변호사에게 사건이 몰릴 지경이었다.
윤석열은 두 전직 대통령 기소 이후 법무부장관, 검찰총장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됐다. 이쯤되니 검찰 내부에서 ‘우병우 사단이 가고 윤석열 사단이 왔다’는 말까지 나온다. 우병우의 입김 없이 좋은 자리를 못갔던 것처럼 서울중앙지검에 입성하기 위해선 윤석열 키즈가 아니면 안된다는 비아냥이 섞여 있다.
윤석열은 뼈속까지 검사다. 그는 수사를 위해서는 항명이라는 오명도 두려워 하지 않았고, 인사에 불이익을 줘도 물러서지 않고 검찰을 지켰다. 하지만 ‘견제없는 권력은 타락한다’는 진리는 역사책을 펼치지 않더라도 작년 뉴스만 봐도 알 수 있다. 인간 윤석열은 물론 윤석열 키즈를 분석하고 그들의 공 뿐아니라 과도 평가해 이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려 하는 이유다.
인간 윤석열
윤석열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중랑중, 충암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해 4학년 때 사시 1차에 합격했지만 2차에서 9년간 낙방하다가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서울에서 나오다 보니 이른바 ‘인생 단골집’도 서울 종로의 한 전기구이 통닭집이다.
윤석열은 사법시험에 늦게 합격해 같은 연수원 동기들 보다 나이가 많고 술자리를 주도하는 편이어서 동기들 사이에서 ‘형'으로 통한다. 연수원 동기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윤 검사장을 ‘윤석열 형’이라고 지칭했다. 두 사람이 각별한 사이는 아니다.
변호사 윤석열
그는 특수통 선배들의 총애를 받았지만 노무현 정권 초기인 2002년 검찰을 떠나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국내 2위 대형로펌인 태평양은 지금이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변론을 전담하는 등 형사사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형사팀을 강화하려는 시기였다. 태평양 입장에선 특수통 윤석열은 영입 1호였다. 그의 절친 문강배 변호사가 나서 성사됐다.
윤석열이 태평양에서 담당한 사건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더저널’ 취재 결과, 윤석열은 2002년 대검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 수사에서 기업을 대리했다. 당시 윤석열은 판례가 아닌 삼성경제연구소 논문을 근거로 공적자금 투입에도 부실한 경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기업인들의 구속을 막아 태평양 안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윤석열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고(故) 최기선 인천시장 공판에 참여해 무죄를 이끌었다. 강골 검사 윤석열은 변호사로서도 유능했다.
같은 법무법인에 있던 이명재 변호사가 검찰총장이 되면서 윤석열도 검찰에 복귀했다. 지인들은 당시 이 총장이 윤석열의 호기와 수사에 대한 감각, 검찰에 대한 그리움을 감지하고 검찰에 복귀할 것을 권유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잘나가는 변호사 윤석열이 왜 검찰에 복귀했을까? 의외로 윤석열의 측근들은 간단한 이유를 들었다. 윤석열의 한 측근은 “워낙 술마시는 것 좋아하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변호사 업계는 빡빡해 검찰을 많이 그리워 했다. 검사실에서 조사하다 먹던 불어터진 짜장면이 그립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회상했다.
주당 윤석열
윤석열을 설명하는데 술은 빠질 수 없다. 같은 근무지에서 일했던 한 측근은 일주일에 ‘텐텐주’로 100잔 넘게 마셨다고 전했다. 텐텐주는 음식점에 맥주를 시키면 나오는 유리잔에 소주 반 맥주 반을 가득 채운 것을 말한다. 하지만 좌천성 인사로 인한 스트레스로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현재는 주량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는 검사들이나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술을 많이 못마시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않는다. 2017년 9월 13일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주제한 첫 기자단과 간담회에서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잔을 못돌리니 어색하구만”이라면서 친분있는 기자들에게 다가가 잔을 권했다. 간담회에 참여한 검찰 출입 언론사 40명 가까운 기자들이 있었지만 윤석열 검사장과 잔을 부딪칠 수 있는 기자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부장검사는 “예전 같았으면 점심에 시작한 간담회가 저녁 때까지 이어졌을 것”이라며 “건강이 예전같지 않은 걸로 안다”며 걱정했다.
윤석열은 간담회 모두 발언에서 “저희가 중앙지검 검사로 근무할 시절만 해도 그냥 평검사나 젊은 기자분들하고 친하게 지냈는데 많이 딱딱해졌다”고도 했다.
후배들은 윤석열이 저녁에 술을 많이 마셔 운전을 안한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부동시다. 부동시 때문에 군도 면제 받았다. 태평양에서 같이 근무한 한 후배 변호사는 “태평양에서 변호사할땐 모범택시만 타더니 공직에 돌아가자 일반 택시로 바뀌었을 뿐 운전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며 “이유를 물어보자 부동시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부동시는 오른쪽과 왼쪽 눈의 굴절이 다르거나 같은 종류의 굴절이라도 그 굴절도가 다르다. 예컨데 한쪽 눈이 근시인데 다른 눈이 원시인 경우 등을 말한다.
검사 윤석열
윤석열은 대학시절부터 본인은 검사가 될 사람이라고 주변에 자주 말했다고 한다. 한 사법연수원 동기는 “사법시험 준비할 때도 본인은 ‘검사가 될 사람’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었다. 정년까지 검사할 사람, 검사 아니면 할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다른 사법연수원 동기는 “동기들끼리 저녁 자리에서 나눠내기로 했는데 한 동기가 현찰이 없다며 본인이 총액을 카드로 계산할테니 현찰을 모아 달라고 하자 그게 ‘카드깡’이라며 돈을 현금지급기에서 찾아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박범계 의원은 “사법연수원 동기이면서도 긴 대화를 한번도 나누지 못한 형”이라며 “국회의원이 되고 서초동에서 동기 모임을 했는데 불과 10여분 아무 말 없이 술 한잔만 하고 일어났다”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