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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순웅 Jul 17. 2018

항명의 날 1부 '검은 넥타이 윤석열'

윤석열이 외압에 대응하는 법

검은 넥타이의 윤석열, 항명의 날

채동욱 검찰총장은 혼외자 논란 끝에 2013년 9월 검찰을 떠났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 한창이던 때였다. 든든한 뒷배였던 채동욱 총장이 낙마하자 안팎에서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을 흔들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은 10월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팀장을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빼겠다고 발표했다. 


10월23일 서울고검에 대한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었다. 윤석열 팀장이 국감장에 출석할지 여부가 관심거리였다. 국감 전날 야당 의원들은 윤석열 팀장이 국감장에 나오지 않으면 대형 사건이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윤석열은 수사팀장 자리에서 낙마했지만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이라 국회 출석 요구에 응해야 했다. 그럼에도 윤석열 지청장이 국감장을 나오지 않는다면 검찰 수뇌부가 빼돌렸다는 의심을 사기 충분했다.


국회와 법조 출입기자들은 국감이 열리는 10월19일 아침부터 윤석열 지청장 출석 여부에 촉각을 세웠다. 서울고검 출입 기자는 수십명이 넘었지만 국감장 기자석은 10여 석에 불과했다. 윤석열 지청장이 국감장에 나타나자 기자석 쟁탈전이 치열했다. 출입기자들은 국감 개시 3시간 전인 오후 6시부터 기자실에 도착해 국감장이 열리길 기다렸다. 

윤석열 검사는 검찰의 대표적인 특수통인 채동욱, 최재경, 남기춘을 이을 특수통으로 성장했다. ⓒ 더저널

오전 8시쯤 국감장이 열리자 대기 중이던 기자들이 쏟아져 들어와 국감장 기자석을 차지했다. 국감장에 들어오지 못한 기자들은 별도 사무실에서 방송으로 국감장 상황을 지켜봤다. 법조 출입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윤석열 지청장이 등장했다.


윤석열 지청장은 검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하늘색이나 파란색 넥타이를 즐겨 매던 그가 상갓집에서 볼 수 있는 복장으로 국감장에 등장했다. 얼굴엔 웃음기 하나 없었다. 증언석에서 팔짱을 끼기도 하고 결의를 다지듯 허공에 시선을 두고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윤석열 지청장은 서울고검 국정감사장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심했다며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사실대로 다 말하겠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처음에 좀 격노했다. ‘야당 도와줄 일 있냐’ ‘야당이 이걸 가지고 정치적으로 얼마나 이용하겠냐’ ‘정 하고 싶으면 내가 사표 내면 해라’ ‘우리 국정원 사건 수사의 순수성이 얼마나 의심받겠냐’ 등 발언하길래 검사장(조영곤 지검장) 모시고 이 사건을 끌고 나가기 불가능하다는 판단했다.”

국감장에선 이 증언을 놓고 검찰 역사상 보기 드문 항명이란 지적이 나왔다.  여당 한나라당 의원들은 윤석열 지청장이 검찰 상급자에게 항명했고 이는 ‘검사동일체 원칙’을 위반했다며 검사 윤석열을 공격했다. 검사는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전국적으로 통일적 조직체의 일원으로서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관계에서 직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검사동일체 원칙이다. 이에 검찰 조직에서 항명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유 있는 항명

뼛속까지 검사인 윤석열이 상급자에게 항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정원 댓글 특별수사팀장에서 직무 배제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10월15일 수원지검 관내 지청장 회의가 있었다. 윤석열은 여주지청장과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윤석열 팀장은 10월16일 국정원 직원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할 계획을 업무시간 중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보고할 수 없었다. 부팀장인 박형철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장이 보고서를 준비했다. 윤석열 팀장은 서울에 오면 저녁에 조영곤 지검장 집에 찾아가 보고할 예정이었다. 보고서에는 국정원 직원 트위터 계정 수사 내용을 보고하고 체포영장 청구와 압수수색 필요성 등 향후 수사 계획까지 담았다.

사진은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촬영한 국정원 로고. ⓒ 연합뉴스

10월16일 국정원 직원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특별수사팀은 다음날 국정원 직원 3명을 체포해서 조사했다. 조사는 순탄치 못했다. 상부에서 국정원 직원들을 빨리 풀어주라는 지시를 계속 내렸다. 윤석열 팀장은 오히려 ‘상부에서 이러는 걸 보니 사안이 중하고 국정원 직원들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구속영장으로 변경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상부 지시를 정면으로 어길 심산이었다. 체포영장으로는 피의자를 48시간 동안 구금할 수 있다. 반면 구속영장은 1차 10일, 연장하면 최대 20일까지 구속 수사할 수 있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만큼 영장 발부 자체가 법원의 예단을 받는 셈이라 수사도 탄력을 받는다. 


검사들이 구속영장에 집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체포영장으로 구금한 피의자를 48시간 동안 혐의점을 찾지 못하면 풀어줘야 한다. 체포 수사 중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거나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하면 검찰은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한다.


이런 통상의 과정이 국정원 댓글 수사에선 예외였다. 국정원법은 검찰이 국정원 직원을 구속할 경우 국정원장에게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윤석열 팀장은 뼛속까지 검사다. 이에 법 위반을 치욕적이라 판단한다. 


윤석열 팀장은 국정원장에게 통보하지 않았다. 체포와 구속은 다르다고 해석했다. 수사팀 내 후배 검사들 의견도 같았다. 형사소송법에는 체포와 구속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체포 단계에서 국정원장에게 재가를 받을 필요 없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이에 특별수사팀은 윤석열 팀장 전결로 국정원에 사전 통보 없이 국정원 직원들을 전격적으로 체포했다. 국정원 직원 4명에 대한 압수수색도 실시했다. 윤석열 팀장은 박경철 부팀장을 통해 조영곤 지검장에게 이 같은 사실을 나중에 보고했다. 수사팀 지휘라인에 있는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과 조영곤 지검장은 체포와 압수수색을 사전에 보고받지 못했다. 


당시 법무부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검찰국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체포와 압수수색을 알 수 있었다. 법무부 장관이 해당 사실을 모른 채 국감장에 나왔다가 국회의원들로부터 질타를 받을 수 있었다. 국정원도 강하게 항의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법률보좌관을 통해 이의를 제기했다. 


대검찰청엔 비상이 걸렸다. 윤석열 팀장은 ‘체포와 압수수색을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지휘부에 보고해 법무부, 국정원, 청와대가 알면 수사에 외압이 들어올 가능성이 크고 국정원이 수사에 대비할 수 있다’는 취지로 대검에 소명했다. 


윤석열 팀장은 검찰 관행과 문화 등에 어긋나지만 제대로 수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하고 검찰청법, 검찰보고사무규칙 등을 근거로 불법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이탓에 윤석열 지청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 직무 배제 명령을 받았다. 박형철 부팀장이 윤석열 팀장에게 “직무에서 손떼라”는 상부 메시지를 전했다. 또 “국정원 직원들을 빨리 석방하라” “압수물을 전부 돌려줘라”는 지시도 내려왔다. 예상한 터라 검사 윤석열은 담담했다.


특수수사의 생명은 신속이다.  특수부 검사들은 수사를 하다가 수사에 영향을 미칠 만큼 다급한 경우 사후보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절차상 하자가 생기면 검사가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하면 될 문제지 이 행위가 불법은 아니라는 인식이다. 물론 선배들에게 한 소리도 듣는다. 윤석열 표현을 빌리면 ‘혼난다’. 


윤석열은 상부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윤석렬 팀장은 “좋다. 그러면 국정원 직원들을 풀어주겠다. 납득할 수 없지만 지시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조영곤 지검장에게 전했다. 윤석열 팀장은 당시 ‘이렇게 외압이 들어오는데 수사하더라도 기소도 못하겠다’고 판단하고 국정원 직원들을 풀어줬다. 윤석열 지청장은 내일 즉시 공소장 추가 변경만이라도 신청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요청을 올리라고 박형철 부팀장에게 지시했다. 박형철 부팀장은 윤석열 팀장에게 두 번에 걸쳐 조영곤 지검장의 승인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팀장은 조영곤 지검장에게 국정원 직원들 체포와 압수수색에 대해 사후 보고하기 위해 지검장실로 갔다. 그 자리에는 박형철 부팀장이 배석했다. 윤석열은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서를 접수하겠다고 보고했다. 윤석열 팀장 기억으론 조영곤 지검장이 승인했다. 서면 결제는 없었다. 윤석열 팀장은 특별수사팀에서 직무 배제된 처지였다. 


다만 공소장 변경허가 신청은 부장검사 전결 사항이다. 윤석열 팀장은 서면결제 없이 공소장 변경허가 신청서를 법원에 접수하는 것이 검찰 규정상 하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절차를 어기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체포하기 전에 국정원 직원인지 알 수 없고 국정원 직원법상 구속할 때만 국정원장에게 사전 통보해야 한다. 형사소송법에 구속과 체포는 별개 개념으로 구분하고 있고 체포까지 통보할 필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국정원 직원법은 국정원 직원의 인권보호를 위한 조항이 아니므로 수사팀은 사전 통보 조항을 확대 해석하지 않았다.


윤석열 측근은 “당시 조영곤 지검장과 윤석열 팀장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팀장이 조영곤 지검장 집을 찾아갔고 집에서 맥주 한잔 하면서 고생했다는 덕담이 오갔다. 둘 관계가 어그러진 것은 윤석열 팀장이 10월19일 언론 보도를 보고 나서부터다. 윤석열이 수사보고를 누락했고 공소장도 임의로 변경해 감찰이 필요하다는 보도였다. 돌출 행동, 수사보고 누락, 절차적 문제, 감찰 전환 여부, 책임 범위 규정 등 후속조치, 공소장 변경 신청 철회, 기강해이 등 내용이 언론을 장식했다.


윤석열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수사보고 누락에 따른 인사상 책임은 윤석열이 감당할 부분이다. 하지만 조영곤 지검장에게 여러 차례 재가를 받았으므로 공소장 변경 신청까지 싸잡아 보고 하지 않았다는 보도 내용은 용납할 수 없었다. 법조 출입기자들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윤석열에게 전화했지만 그는 즉답을 피했다. 나중에는 언론과 접촉을 끊었다. 


그 사이 윤석열은 고민했다. 인사상 불이익은 감수할 수 있다. 그것보다 수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보고 누락 등 검찰 내부에선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법원으로부터 적법하게 발부받은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 새로운 공소사실을 밝히고 이를 보고한 뒤 재가를 받아 공소장을 변경했는데 이 모든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윤석열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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