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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 석 Jan 22. 2024

햇빛이 설경을 비추니 그 위에 마음이 녹았다.

한라산 윗세오름

일출과 일몰, 야경, 그리고 설경.


이런 것들을 본다한들 우리 삶이 나아지진 않지만 이런 것들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을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또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윗세오름에 오른건 약 20년 만이다.


산과 등산로, 이를 감싸는 공기와 나무의 질감 모두 그대로였지만 아무생각 없이 걷던 2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따르지 않는 체력, 걸으면서 떠오르는 감사함과 미안함, 걷고 있는 이 길의 끝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이 설경에서 눈을 뗄 때마다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고민하며 걷다가 설경을 볼 때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눈앞의 그림에 잠겼고, 그림에서 벗어나면 또다시 고민에 빠지는 그런 일의 반복.


그렇게 한 참을 오르다가 멈춰 섰는데 하산하며 내려오시던 분홍색 비니의 아주머니가 내 앞에 멈추더니 인사를 했다. 나는 얼떨결에 인사를 받았고, 혹시나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실까봐 장갑을 벗었지만 아주머니는 그 길 그대로 내려가셨다. "가다 보면 곧 도착할거예요" 라는 말을 남기고.


가다 보면 곧 도착한다.

걷다 보면 곧 도착한다.

우리는 걷고 있고, 걷다보면 그곳에 도착한다.

내가 무슨 고민을 하던 중요한건 우리는 걷고 있고, 걷다 보면 도착한다는 것이다.


다시 정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을 땐 발걸음이 이전보다 가벼웠다. 마음 속에 들고 있던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걷다 보니 표지판이 보였다.


'지나치는 사람들과 인사합시다. 좋은 등산 문화를 만듭니다.'


이런 것을 실천한다 한들 우리 삶이 나아지진 않지만, 누군가는 이로인해 비로소 살아있음을, 살아가고 있음을, 나아가 살아가야 함을 느낀다.


햇빛이 설경을 비추니 그 위에 마음이 녹았다.


그런 하루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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