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디쓴 기억 - 담배... 술

by 텐웰즈 원쓰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중, 고등학교 때에도 노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판가름하는 척도는 술과 담배였다.


서른이 조금 넘은 지금 돌아보니 그때는 그게 무엇이 그리 문제였을까 고민해 본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아가고 있는 지금 친구들과 자신에게 그걸 왜 그렇게 엄청난 죄악처럼 여기며 정죄감을 주었어야만 했었는지, 아니, 아직도 왜 그러고 있는지 고민스럽다. 정작 이야기해야 하는 본질은 다른 것이지 않는가?


호기심이 많던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동네 친구와 담벼락 뒤에서 친구 아버지 담배를 몰래 피웠다. 당시 나에게 담배는 연기를 만들어 내는 너무나도 신기한 아이템이었다. 더군다나 집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고 교회식구들도 교회에서 태우시지는 않으니 어디서 볼 수도 해볼 수도 없었던 경험이었기에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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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담배를 훔쳐 나온 친구 녀석은 제법 어른 흉내를 내면서 세상 시름 다 지고 있는 사람의 표정을 하며 연기를 뿜어댔다. 아마도, 그 아이 아버지가 그런 표정으로 담배를 태우시는 것 같았다. 도전정신이라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던 나 역시 당연 당당히 도전했다. 담배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아니 적어도 교회 안에서 옳고 그름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되어 있었기에 그 도전은 더욱 짜릿한 것이었다. (아직까지 그 기억이 생생한 것을 보면...)


사실, 호기심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선다... 때론 그런 호기심 때문에 큰 성찰을 얻기도 한다.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행동은 더욱 긴장감을 높여준다. 그에 따른 결과가 무엇이 되었든 후회이든 성공이든 받아들여야만 한다. 하지만, 인생을 걸고 하는 과한 호기심의 거래는 돌이키기 어려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설령 그것이 모르고 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조언이 중요하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조언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자기는 다 해보고 그런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나에게 조언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렇게 반응했다.


여하튼, 어른들의 말대로라면 난 그 순간 무지막지한 죄를 지은 아이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발라당 까진 나는 '떡잎부터 썩어있는 인생'이 되어 커서 뭐가 될는지 걱정받는 아이가 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담배에 중독되어 폐병에 걸릴 것이고 남들보다 어려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나는 빨리 병에 걸려 죽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도 많은 선생님들이 이런 무지막지한 말들로 정죄감을 신앙보다 먼저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실패한 많은 아이들은 아직도 신앙의 삶에... 근본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역사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무서운 일이다.


몇 모금 빨다 보니 냄새도 별로고 재미도 떨어졌다. 그날 이후 호기심조차도 없어져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술을 대한 건 중3 때였다.

아마 이 글을 우리 엄마가 읽는다면 경악할지도 모르겠다.

(해석하기 어려운 고백이겠지만 참고로 난 중1 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했으며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당시 청소년 사이에 100일 주라는 것이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학력고사를 보기 100일 전 합격을 기원하며 마시는 술이었다.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에 시험을 보는 나는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했었다. 그런 나에게 담대함을 줄 수 있는 꼭 필요한 처방이었다.(적어도 그때 나의 그리고 우리 세대의 친구들의 뇌 구조는 그랬다.)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술 한번 마셔보지 못한 바보가 되는 것도 싫었다. 그런 나에게 술을 사준건 더 경악할 일이겠지만 교회 형들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당시만 해도 교회가 문화(?)를 선도해 나갔다. 술은 가족한테 배워야 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정말 가족 같은 교회였다.


뭐, 100일 주는 구실이었고 그 후로도 몇 차례 친구들과 술을 마셨던 것 같다. 또래끼리 마시기엔 시작한 나이가 좀 빨랐다. 두세 살 많은 형들과 함께 다녔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역시나 호기심에 시작한 일이었고 당시로서는 얼마큼 마셔 봤다는 것이 상당히 명예로운 일이었다.


고등학생이 되기 위한 겨울 즈음이었던가...

부모님께 올나이트 (교회에서 밤새워 노는 것)를 한다 거짓말을 하고 치킨호프집으로 향했다. 외박을 할 수 있는 정말 소중한 기회였기 때문에 알차게 사용했어야 했다. 술이 세서였는지 덜 먹어서였는지 남들보다 취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론 취한다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다.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정말 두려웠다. 술에 취하면 용감해지던 우리 형제들은 쉽게 시비 붙고 싸우기도 했다. 당시 동네에서 싸움 좀 한다 하는 형도 있어서 무서울 것도 없었다. 그날도 마무리는 싸움이었던 것 같다. 여하튼, 흥건히 취한 친구를 어깨에 걸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부축이라고는 했지만 간신히 서로 의지 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친구는 지탱하지 못해 넘어졌고 힘이 없던지라 얼굴부터 땅에 떨어져 꽤나 큰 부상을 당했다. 뭐, 그것마저도 지금 생각하면 웃고 넘길 해프닝이라 생각한다. 그즈음일까...? 이후로 난 그 모임에 나가는 것이 뜸해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친구들은 더 과감해졌다. 자주 모임을 만들어 술자리를 갖기 시작했다. 토요일 밤 놀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자, 친구들은 스스로 교회 나오는 게 껄끄러웠던 것 같다. 전날 술을 마셔도 교회는 꼭 나오던 친구들이 교회를 자주 빠지기 시작했다. 간혹 입에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면서도 가끔 예배에 나오는 친구들을 보며 신기하기까지 했다. 지금 내가 중고등부 교사를 하고 있는데 만약 술냄새를 풍기며 고등학교 1학년 녀석이 들어온다면 난 어떻게 반응할까? 그때 생각처럼,


'그래, 술 마셔도 교회는 나와야지... 뭐 어때?'라고 생각해 줄 수 있을까?

뭐, 어쨌든 친구들은 그렇게 서서히 교회에 발길을 끊기 시작했다. 간혹, 술을 마시지 않은 토요일 다음 주일이나 행사가 있을 때 그리고 수련회 때에는 교회에 나와 자리를 빛내 주었지만 역시나 그것도 1~2년을 넘어가지 못했다. 아마, 당시로서는 더 재미있는 무언가를 발견해서이지 싶다. 생각해 보니 교회에서 정죄감을 팍팍 심어주는 게 한편으론 먹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공간을 안전구역으로 지켜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난 생존을 위해서 교회를 나가야 했다. 목사자식인 나에게 교회 가는 일은 학교 가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이었다. 가출을 해도 교회는 가야 했다. 좌우지간 드디어 난 노는 것에서 마저 친구들에게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나 결국 회개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죄인으로 친구들은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어느 토요일 저녁으로 기억한다. 가장 방황하기 좋은 시간...

다음날 교회로부터 자유해진 친구들에게는 최고의 날이다.

적어도 당시 한국 청소년들에게는 "TGIS : Thanks God this saturday" = 불토! 였지 싶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자신들의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안타깝게도 여건상 친구들과 함께하지 못한 나에게 친구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나이트클럽', '소주방', '헌팅', '부킹' 등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신나게 이야기해 주었고, 나는 그런 말들이 신기하고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몇 달이나 지났을까... 종종 만남을 갖던 친구들... 단순히 호기심과 분위기를 즐겼던 친구들은 어른들의 문화와 놀이에 더 깊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그 친구들의 이야기가 무서워 진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친구들은 술기운에 자신들이 했던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말해주었다. 알딸딸한 맛의 술로 시작했던 어른 놀이는 이미 육체의 즐거움의 끝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명예로운 훈장인 마냥 경쟁하고 과시했다. 정말 호기심과 욕구가 충만한 그 시기에 그 선을 넘어가는 것은 그런 정말 순식간이었다. 굳이 경험으로 배우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너무나도 쉽게 허용해 버리고, 마치 순서라도 되느냥 저마다 다음 단계의 모험으로 질주했다. '순결', '정결', '경건' 이런 말들은 이미 성경 어딘가에 쓰여있는 말이 되어 버렸고 한번 맛본 극도의 쾌락은 쉽게 끊질 못했다. 심지어 이 좋은 것을 왜 어른들만 즐기는지 하는 반발심에 이들의 사고는 더 개방적이 되었다. 그리고는 무차별 적으로 수용해 버렸다. 아마도, 내가 자연스럽게 그 친구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 나갔다면 나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적어도 학교성적만 떨어지지 않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사춘기려니... 설마 그 정도까지 일까?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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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아이들이 나에게 자랑하는 것이 재미없어지고, 내가 그 친구들이 부럽지 않게 되면서 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과거를 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로 더 이상 친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랜 시간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계속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꽤나 불편한 일이다.


내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생각하는 때는 중1이 되던 겨울 모 기도원에서 있었던 동계수련회로 기억한다. 당시 난 예수님이 날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반면,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아직도 배우고 있다. 여전히 큰 문제 앞에선 흔들리고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고민들은 이미 해결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들 까지도 포함된다. 술, 담배, 돈, 섹스, 권력, 명예... 많은 사람들이 행복, 성공을 이야기하며 제시하는 방법과 척도들... 심지어는 크리스천이라 하는 사람들도 성공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타협은 어쩔 수 없다며 자위하는 그것들 말이다.


교회를 떠나간 그 친구들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경험했었다고 난 생각한다. 하지만, 어렵사리 입학한 크리스천이 되기 위한 학교 생활이 힘들어 자퇴하고 만 것이다. 문제는 학생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감히 이 학교를 잘 졸업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뭐든지 확신하고 안심하는 순간 삐끗하기에... 적어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체득'을 통해 알아갔지만, 더 이상 몸으로 배우기에 세상은 너무 험악하고, 죄의 결과는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무지에서 저지른 죄라기보다는 나의 유익과 즐거움을 위한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 같다. 다행인 건, 이 학교가 자퇴는 있어도 퇴학은 없고, 유급은 있어도 탈락은 없다는 것이다. 언제라도 재입학이 가능하며 추가로 비용이 들지 않는다.


잊혀진 그 친구들... 어딘가에서 다시금 하나님의 독특한 역사로 돌아오길 기도한다. 가능하면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그곳에서 말이다. 하나님도 정죄하지 않으시니 과거일랑 묻지도 기억도 하지 않을 그런 곳으로... 혹, 우리 공동체에 그렇게 사연 많은 누군가가 왔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위로하고 감싸주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으면 좋겠다.



대화거리


1) (목사아빠에게) 술과 담배를 해본 적이 있는가? (비밀을 보장해 줄 것을 약속하라)


2) (자녀에게) 술과 담배를 해본 적이 있는가? (마찬가지로 비밀을 보장해 줄 것을 약속하라)


3) 이것이 죄라 생각하는가?


4)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였다고 한다. 그의 삶이 어떠했을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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