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믿음의 명문 가문들 말고는 믿음의 세대가 그리 길지 않은 우리나라의 신앙의 1세대 부모들... 오래된 관습과 경쟁사회에서 어렵게 경제 성장을 이루고 이 정도로 안정을 일궈낸 우리 부모님들은 정말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 덕에 우리 세대가 더 나은 환경을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존경 때문에 그들이 성공을 이뤄낸 방식, 가치관들을 고민 없이 그대로 신앙과 적절히 타협하여 물려주는 것을 관망해서는 안된다.
아빠는 사업을 하다가 목사가 되셨다고 한다. 엄마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사모가 되어서 어쩔 수 없는 기회에 시장에서 옷장사를 하며 돈을 벌기도 심지어는 식당일과 가정부 일도 했었다. 신분이 '확' 바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삶의 방식과 가치관까지는 한 번에 바뀌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게다가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 겪을수록 예전의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업을 하거나 장사를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라 신분이 바뀐 뒤에 새로운 가치관을 갖고 지속적으로 생활한다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는 모험을 좋아하는 나에게 안정된 직장과 자기 집을 강조하고, 그런 방면에 똑똑한 형을 기특해한다. 신앙과는 다른 별개의 마음이다. 엄마의 경험에 의하면 가난은 신앙생활도 위협하는 큰 문제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자식들에게는 그런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그럼에도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 집을 사고 안정된 직장을 다니는 것이 그 사람의 삶의 안정을 주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말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안정적 삶이 선결되어야만, 우리 삶이 윤택하고 행복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으로 말씀에 따라 참된 가치를 찾아가는 노력과 그렇게 사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이미 많은 세상의 가치관들이 말씀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노력하고 싸워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결과를 보여 달라는 것이 아니다. 노력의 과정을 공유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세상은 갈수록 결과만 보려하기에 그 마음을 지키기가 참 어렵다.
저마다 자신의 경험에 바탕한 충고나 조언을 해 주기 마련인데 하나님은 일반적이고 대량 생산되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에 어떤 사람은 큰 은혜를 받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저마다 특별한 은혜를 주시는 분이신 것이 분명하다. 설령 그 방법이나 결과가 혹 비슷할지라도 저마다의 타이밍과 느끼는 감정의 정도는 정말 특별할 수밖에 없다.
많은 간증과 에세이들이 특별하게 받은 은혜들을 이야기한다. 때론 길고 긴 터널 같은 길을 잘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현재의 행복한 삶을 조명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나의 삶과는 다르게 마치 최고의 정점에서 마침표 찍어진 것처럼 이야기들은 끝난다. 그리고 그런 간증을 보고, 듣는 사람들은 '지금은 먹고 살만 하니까 그런 소리 하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베베꼬인 나의 마음이 그렇듯이...
신앙을 나누는 간증도 그럴진대 살아온 경험을 나누는 우리의 모습은 지극히 아집스러울 것이며 받아들이는 사람 또한 수많은 편견으로 곡해해서 듣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지극히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일반화시켜서 충고나 조언하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가...?
'내가 그랬으니 너도 그렇게 해라'
'내 말만 들으면 다 된다'
'부모가 자식 잘못되라고 말하겠냐?'
젊은이들이 어른들의 '우리 때는...'으로 시작하는 말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부모세대의 신앙의 방식을 자녀세대에게 그대로 답습시키는 건 큰 오류일 뿐만 아니라 쉬이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일이다.
함께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그리스도인 부모에 대해 자식으로서의 요청은, 세상의 논리와 교회의 논리는 다르니 어쩔 수 없이 적당히 타협하며 살라는 것을 자녀들에게 지친 삶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한 치열한 전쟁과 노력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책으로만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작게라도 그 삶을 목적에 맞게 살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하자는 것이다.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그런 전쟁 말고, 조금씩 고민하고, 함께 결정하는 길고도 치열한 그런 과정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더라도 감사하고 계속 고민하는 그런 삶 말이다.
'말씀대로 살아도 되는구나... 큰일 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면 누군가에게도 그리 요청하기 힘들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이것을 실천하지 못한다. 그나마 몇 번이고 시도해 보았지만 잘 안되었던 부모들에게는 그 몇 번의 시도가 좋은 핑계가 된다.
'해봤는데 잘 안되더라... 난 할 만큼 다 했노라...'
어느 부모들은 이미 '신앙생활'을 졸업한 사람처럼 말한다.
안정된 가정 형편에 장로나 권사정도의 직분자가 되고 나면, 등록금 내주고 생활비 부족하지 않게 지원해 주고서는 "이렇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줬으니 교회 열심히 다녀라"며 마치 신앙생활을 20학점 짜리 자격증 과정 정도로 생각하며 말한다. 어쨌든 안정되고 좋은 환경에서 자식만큼은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는 감동이다. 하지만 그런 부모들이라도 혹 자녀들이 교회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혹시 우리 자식이 신학교라도 간다고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으로 항상 경계하고 있다. 바로 그 적당함의 경계를 넘어갈까 봐 두려운 것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두고 고민하는 남자분들을 만나기가 참 힘들었다. 없어서 일수도 있지만 남자들은 고민을 잘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혹여라도 자기의 훈련의 과정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실망할 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주는 사람의 관계는 ‘아빠’라고 한다. 때문에 자칫 아빠들은 하나님 같아야 된다는 부담을 갖게 된다.
아버지들께 부탁한다.
신앙이야기를 하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경험보다 고민을 이야기하자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달라
함께 해 나갈 것을 약속하자
상대적으로 교회에 어머니들이 많다. 그런 만큼 어머니들의 신앙은 자녀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모범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머니들께 부탁한다.
인간적인 감정과 말씀의 가르침의 구분을 잘 고민해서 권면하자.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 (특히 교회식구와)
기도한 만큼 배려하고 이야기를 나누자.
그만큼 자녀를 위해 기도하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말보다는 몸으로 표현하자.
아울러 모두에게 부탁한다.
적당히 살기를 종용하지 말자
우린 말씀대로 살아갔을 때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느끼는 순간, 기쁨의 감정을 느낌과 동시에 기존에 일궈둔 이기적인 방식의 삶의 안정감을 위협받게 된다. 그리고는 두려움에 이내 말씀대로 사는 것을 철회하는 신앙의 모습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신앙을 통한 작은 승리, 은혜의 경험에 만족하면서도 그것이 내 삶을 온통 집어삼킬 것 같은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종교 이상의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조절하고 통제하는 '적절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런 안정이 교회 공동체의 안정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교회 식구 중 누구 하나 힘든 상황이 되면 마치 자기에게 피해라도 올까 봐, 하나님이 그 가정에 헌금하라고 하실까 봐 걱정하는 내 모습을 보면 그렇다.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편한지, 세상의 성공의 기준과 더 나은 삶의 질에 대한 바람은 이미 우리의 인식에 깊게 뿌리 박혀 있다. 이런 기준에 맞는 성공한 사람으로 자녀를 키우기 위한 부모의 눈물겨운 노력이 이미 교회 안에도 넘쳐난다.
유치하게 학원 가느라 수련회를 보낸다 안 보낸다의 수준으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적당히 신앙 생활 하면서 복 받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가길 원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하게'라는 많은 부모들의 마음의 기준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게 성장한 적당한 크리스천들은 쉽게 덥혀지지도 차지지도 않기에 장성하고 나면 사명, 소명과는 무관하게 적당하게 살게 된다. 그리고 적당히 결혼하고 그런 적당한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된다. 말장난 같지만 사람들은 갈수록 적당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은 더 힘들어져 더 이상 적당하지 않게 된다. 정말 안타까운 건 좋은 것을 가진 많은 친구들이 어려서부터 그렇게 살가는 것이다.
한편, 그나마도 본인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지만 자녀들만큼은 그렇게 살기 원하는 감사한 부모들이 있다. 직장생활, 등산, 낚시, 기타 동호회 활동이며 다양한 사회 활동들을 먹고살기 위해서, 혹은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기초적인 믿음 생활조차도 지켜 나가지 못하지만 자녀들은 교회 생활 잘하기 원하는 그런 부모. 주일예배는 간신히 지키지만 자녀의 신앙생활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 부모… 자식들의 신앙생활을 반대하는 부모들에 비하면 눈물 날 만큼 감사하긴 하지만,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일을 너무 쉽게 자녀들에게 전가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가정이 함께 신앙을 세워 나가야 한다. 본인조차 힘들어서 포기한 일을 자녀가 무슨 수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학생부 교사를 하며 아이들이 언제 부모를 자랑하는지 생각해 봤다. 물론 많은 아이들이 고가의 디지털 제품이나 의류등을 선물로 받았을 때 자랑을 하곤 하지만, 그건 부모에 대한 자랑보다는 그 물건에 대한 자랑이었다. 정작 소그룹 모임을 하며 나눌 때 자랑하는 내용은 부모가 자신들이 보기에 멋진 행동을 했을 때임을 듣게 된다. 우리 아빠가 누구를 도와주었다거나, 엄마가 어디 가서 봉사를 한다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들이다. 아버지가 택시기사인 한 친구는 아빠가 등굣길에 나를 학교에 태워다 준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감사해하고 있다. 부모들이 알아야 할 것은 부모의 역할과 가치를 너무 비싸게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돈이 들지 않는 작은 행동 하나가 그 자녀에겐 자랑이 된다.
감히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 뜻대로 살기 위해 고민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자녀로서 난 그런 부모를 기대하며 부모로서 이런 부모가 되기를 기도한다.
대화거리
1) 목사가 안되었다면 무엇을 하였을 것 같은가?
2) 어른이 되어서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왜 그런가?
3) 삼손의 삶에 대해 나누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