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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 라파스(2)

10년 뒤에도 이곳은 이 모습일까

by 이몽 Mar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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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9 (8일차)

남아메리카 - 볼리비아 - 라파스


앞에서 이야기했듯,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준 라파스는 낮에도 그 느낌은 다르지 않다. 관악산 높이의 고원이 둘러싸고 있는 이 분지도시는 난개발로 인한 빽빽한 건물과 좁은 도로로 인한 심각한 교통체증, 매연냄새가 상존한다. 90년대 서울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여기에 이질적이면서 또 조화로운 케이블카의 모습까지 더해져, 참 보면 볼수록 신기한 도시이다. 여느 내륙지역 도시, 국가처럼 저렴한 해상운송이 불가한 곳은 공산품이 비싸다. 도시 내 프랜차이즈 브랜드나 유명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3일 동안 라파스에 머물면서 본 아는 브랜드는 코카콜라 뿐이었다.


볼리비아에서는 이런 전통복장의 현지인을 많이 볼 수 있다.볼리비아에서는 이런 전통복장의 현지인을 많이 볼 수 있다.

비슷한 이슈로 이곳에선 미화 달러가 아주 귀하다. 무역이 힘든 곳이니 달러가 순환도 잘 안되고 금융은 말할 것도 없다. 신용카드가 되는 곳은 아직 못 봤다. 어째 주변 국가들과 격차가 더 벌어지는 느낌이다. 남미에는 '암환율'이라는 것이 있다. 그렇게 다녀도 처음 본 개념인데 아무래도 유럽이나 동남아에도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명동 등에 당연히 있지 않을까 싶다. 암환율은 공식적인 환율을 통한 환전이 아닌 환전을 얘기하는데, 여행자들이 실시간으로 공유해주는 포인트로 가서 미화로 현지통화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나도 한 번 해보자. 이 좋은 것을 나 혼자 안 할 수는 없지. 이 도시에서 가장 번화가인 산 프란시스코 광장 근처에 암환전을 시도해본다. 설명을 보고 가긴 했는데 골목에 가판대도 아니고 달랑 작은 테이블만 가지고 있는 볼리비아 할머니가 여기서 가장 유명한 암환전상이었다. 무슨 RPG게임에 퀘스트 길목에 다다른 듯 하다. 하마터면 못 찾을 뻔했다. 그런데 제시하는 환율이 놀랍다. 구글에서 볼리비아 환율을 보면 미화 1달러에 7볼리비아노였는데, 여기선 100달러 고액권 환전 시 11.58 볼리비아노를 준다고 한다. 대화도 필요 없다. 어차피 말이 안통하니 계산기로 찍어서 보여줄 뿐이다. 아니 공식환율보다 두 배 가까운 돈으로 달러를 구매한다고? 정식 루트로는 달러를 구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미로 출발하기 전 한국에서 틈틈이 중고거래를 통해 합법적인 선 내에서 남미 현지통화(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페소, 볼리비아노, 브라질 헤알)를 구매했는데 생각해보니 이거 팔은 인간들 다 싸게 해주는 척 하고 구글이나 네이버에 나온 환율 기준으로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먹은 것이다. 심지어 더 악독한 놈은 돈봉투 보내주면서 배송비까지 받아 처먹었으니. 그래 뭐 더 알아보지 않은 내 잘못이지. 아무튼 비싸게 샀지만 이미 현지통화는 충분했고 또 혹시나 불법이 되어 문제가 될까 하고 실제 환전은 하지 않았지만 꽤나 충격적이다. 기축통화가 아닌 국가들의 비애도 이렇게 더 심하기도 하고나 몸소 체험한다.


도시의 상징이 되어버린 텔레페리코에서 바라본 라파스 시내도시의 상징이 되어버린 텔레페리코에서 바라본 라파스 시내

이 극단적인 분지 지형의 도시는 앞에서 잠깐 언급한 케이블카, 여기선 텔레페리코(Teleferico)라고 불리는 교통수단이 꽤나 중요하고 효율적이다. 급격히 고도가 높아지는 이런 지형에 도로교통은 구불구불하게 꽤나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 몇 가지 색으로 구분된 케이블카 노선은 아주 인상적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힘들겠지만 나에겐 이 도시의 특색을 더 각인시켜주는 아주 재밌는 경험이었다. 이 복잡 다단한 도시를 위에서 바라볼 수 있다니. 어디든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드론 촬영도 꽤나 주목을 받는 것일테고. 또 이 도시는 높이서 바라볼 수 있는 구조 덕분에 야경이 꽤 유명하고 중요한 관광 자원이다. 텔레페리코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 지역에 딱 알맞은 시스템인 것이다. 텔레페리코를 한 번 타는데 나이나 국적 등 어떤 조건과 상관 없이 약 400원 정도 한다. 1번 환승은 600원, 2번은 약 천원 가량 정도 되나. 아주 저렴하지만 이게 상대적인 게, 소득 수준이 낮은 볼리비아인들 대부분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라고 한다. 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대중교통 수단이 부담되는 가격이라니. 텔레페리코를 타면 보이는 수려한 도시 경관을 보았을 때,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정말 딱 맞는다. 근데 또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도 버스, 지하철, 택시비 오를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이 되는 것을 보면 비슷한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싶기도 하다. 도시 외곽의 고도 높은 주거지에서 낮은 고도의 중심지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은 텔레페리코가 주 교통수단이다. 러시아워 시간엔 줄이 꽤 길지만 순환은 빠르다. 출퇴근 어떻게 하세요? 전 케이블카로 출퇴근 합니다. 오, 색달라요.


내가 축구를 좋아하니 또 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나는 해외 여행을 가면 가능한 선에서 그 도시 팀의 축구경기를 챙겨보는 편이다. 라파스도 물론 몇 개의 팀이 존재했는데 일반적으로 주 1~2회 하는 축구경기는 주말에 진행되고 내가 머무는 시기는 월 ~ 수요일이어서 경기를 볼 수 있다고 딱히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근데 라파스가 축구계에서 왜 중요하냐면 이곳이 극단적인 `고지대`이기 때문이다. 남미에 내로라하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런 국가대표팀도 볼리비아 라파스 원정 경기만 오면 고산병으로 맥을 못 춘다. 세계 최고의 선수인 리오넬 메시도 여기와서 구토를 했고 팀은 1:6으로 볼리비아에게 처참하게 패했다. 남미의 축구 강국들은 국제축구연맹(FIFA 피파)에 꽤 오랜 기간 고지대 경기 개최 금지를 요청을 할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경기장이다. 결론적으론 기각이 되어 그 전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의미있는 곳에서 경기를 보고 싶었는데 그저께 밤에 텔레페리코 위에서 보니 경기장에서 무언가 진행되고 있는 듯했는데 다음날 우연히 뉴스를 보니 남미 클럽대항전이 이곳에서 심지어 월요일이었는데! 진행된 것이다. 아 내가 왜 리그 일정만 참고했을까. 너무너무 아쉽다. 색다른 로컬의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정말 아깝기 그지없다. 축구를 가장 좋아하는 볼리비아 사람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절벽 위 건물들은 한 눈에 봐도 위태위태하다.절벽 위 건물들은 한 눈에 봐도 위태위태하다.

깎아지르듯한 절벽이 이 도시 내 곳곳에 위치한다. 그 위에 위태롭게 위치한 건물들은 어떻게 유지가 되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서울에서 저런 건물이 있었다면 당장 안전검사 등 진행되어 건물을 철거하거나 절벽 붕괴 및 낙석 방지를 위한 공사를 했을 것이다. 빈 공간 없이 빽빽히 건물이 들어선 이 도시에 쫓겨난다 해도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찾기 힘들어 보인다. 당연한 것일까. 이런 불안감은 정치로도 연결되어 꽤나 복잡한 이해관계로 연결되기도 하나보다. 어젯밤에 숙소에서 들은 총성 비슷한 소리는, 오늘 시내에서 보니 일부 시위대들이 관공서 앞에서 이목을 끌기 위해 화약을 터트리는 소리였던 것이다. 여러 사회문제를 안고 있는 이 도시에서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여행하며 지켜본 결과, 볼리비아 사람들은 아주 순수하고 선하다. 페루에서도 그렇고 남미 어느 국가를 가도 나같은 동양인은 늘 주목의 대상이다. 긍정 부정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이 사람이 여길 왜? 느낌 정도. 그런데 볼리비아인들은 그마저도 약간의 수줍음이 느껴진다. 혹여나 기분이 나쁠까 배려한 것인가. 궁금해서 쳐다보긴 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리고 안 본 척을 한다. 내가 말을 걸면 너무 고맙게도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도시에서 지내면서 지나친 볼리비아인들은 웃음도 많고 유쾌하고 행복해 보인다. 칠레에게 해안 영토를 빼앗겼을 때, 볼리비아는 마침 축제 기간이라 다들 술에 취해있었다니 매우 안타깝다. 이걸 이용해먹은 칠레인들이 나쁘게 생각되기까지 한다. 물론 각자의 입장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순수함이 죄가 되는 요즘 세태에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도 그들도 행복해지길 바라면서.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라파스. 물론 가까이서는 다른 매력을 볼 수 있다.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라파스. 물론 가까이서는 다른 매력을 볼 수 있다.

아, 라파스는 왜이렇게 할 말이 많을까. 글도 엄청 길어진다. 사실 남미 여행을 계획할 때 라파스는 단순히 쉬어가는 도시였다. 페루 마추픽추에서 볼리비아 우유니로 가는 중간 기착지 겸으로. 다만 라파스에서 우유니로 향하는 항공편이 제한적이고 비싸서 본의 아니게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아이러니하게 이곳은 계속 얘기하지만 큰 감명을 주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좋은 경험을 사랑한다. 라파스는 서울의 을지로3~4가의 느낌을 생각하면 얼추 그 느낌이 비슷할 것이다. 물론 을지로도 지금은 땅주인들이 합세하여 싹 다 밀어버리고 건물을 올리고 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을지로 3~4가는 근현대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는데, 보존을 위해 소유자들에게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개인적으로는 변화가 참 아쉬운 공간이다. 앞에서 얘기한 강변의 동서울터미널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이슈로 도보로 걷는 행인들의 시선이 닿는 건물 5층 높이까지는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에 고층빌딩을 세우든 한다고 한다. 참으로 부러운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라파스가 나에게 준 이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은 볼리비아가 발전하여 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지만서도 이곳이 이런 바이브로 유지되길 바라는 아주 이기적인 마음도 한 켠 자리하게 한다. 점점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10년 뒤에 다시 방문하고 싶다. 이걸 또 다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그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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