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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제국의 수도 쿠스코

평화로운 고도(古都)에서 마무리하는 페루에서의 여정

by 이몽 Mar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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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6 (5일차)

남아메리카 - 페루 - 쿠스코


면도를 안 한지 5일차, 진짜 현지인의 모습이 다 되어 간다. 어쩐지 밤에 돌아다녀도 외지에서 온 관광객에 대한 위협 따윈 없었다. 27일간 내 수염은 어디까지 자랄지 궁금하다. 오늘은 그렇게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온전히 쿠스코에 머무는 날이다.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이 도시는 나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잉카의 구도인만큼 잉카 유적도 있고, 스페인 사람들이 이식한 카톨릭 유적도 섞여 있다. 굳이 유사한 도시를 찾자면 오스만제국의 이슬람과 동로마제국의 카톨릭이 섞인 이스탄불을 꼽을 수 있을까. 


아르마스 광장의 대형 깃발과 관광객들

리마도 그렇고 쿠스코도 그렇고 구도심엔 카톨릭 양식의 건축물이 둘러싸고 있는 광장이 있다. 중심지인 아르마스 광장은 쿠스코 관광과 이 분지 지형의 완전한 중심지로 관광객이 모이는 중요 공간이다. 이곳의 첫 인상은 또 다시 미디어다. 지구마블에 출연한 강기영 배우와 유튜버 곽튜브가 마추픽추 가기 전에 들른 곳으로 일관적인 오렌지색 지붕들이 인상적인 예쁜 도시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그것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곽튜브의 심한 고산병 증세였다. 강기영 배우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곽튜브는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고 결국 산소캔까지 구매하는 모습은 꽤나 충격이었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2,755m) 정상에서도 고산병 증세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하물며 3,500m 고도에 있는 이곳은 어떻겠는가. 다행히 본인은 며칠전 쿠스코 도착부터 며칠 동안 약간의 두통과 불면이 함께 있었던 정도를 제외하면 아주 양호하게 넘어간 케이스다. 아무래도 쿠스코보다 고도가 낮은 마추픽추(약 2,500m)에서 전반적으로 적응이 된 모양이다. 그러나 영상에서 봤던 쿠스코의 모습과는 좀 달랐던게 이놈의 산발적인 비와 구름이다. 아무래도 여름 시즌 우기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하필 장마 시즌에 온 것은 아닌가. 묘하게 억울하다. 뭐 그래도 젖을 정도의 비도 아니고 고산지대의 강한 햇빛을 피해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를 필요도 없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한다.


산 크리소트발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르마스 광장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도시 쿠스코를 쭉 둘러본다. 잉카 유적인 삭사이와망이나 코리칸차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이 예쁜 도시의 조망을 한 눈에 담고 싶었고, 그래서 나는 삭사이와망의 입구 쪽에 있는 산 크리스토발 전망대(Mirador de Sàn Cristobal)로 향한다. 등산에 맞먹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확실히 평소보다 숨이 더 많이 찬다. 아 고산지대의 위엄이란. 이곳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페루인과 외국인이 섞여 있고, 각자 좋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고 기다린다. 난간에 걸터 앉아 도시 전체를 바라본다. 아, 이곳이 명당이다. 오렌지색 일관된 지붕들은 도시 외관의 통일성을 갖춰 깔끔한 느낌을 준다. 유튜브에 몇 안 된 구독 채널인 유현준 교수 채널에서 이런 건축 자재와 색의 통일성이 주는 안정감이 크다고 했던게 와닿는다. 이곳에서의 평화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오늘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으니, 누구에게도 말 걸지 않기로 한다.


한참 동안 도시 전경을 바라보다 아르마스광장으로 돌아와 벤치에 앉아 또 다른 여유를 만끽한다. 이 행위는 내가 하는 홀로의 여행에서 꽤 좋아하는 부분이다. 지금 이 글도 이렇게 앉아서 쓰고 있다. 중심지 답게 여러 대륙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보인다. 그에 맞게 무언가 파는 현지인도 많다. 위생이 어떤지 알 수 없는 과일 주스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구두닦이와 그림을 파는 사람, 남산 정상에서 보았던 사진촬영 등 종류도 다양하다. 앞에 이스탄불 얘기를 했던가. 이곳은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앞 술탄 아흐메트 광장을 떠올리게 한다. 일정 맞추기에 급급한 성향이 많은 한국인에게 여행자의 여유를 주는 점에서 말이다. 뜬금 없이 친한 척 하며 호객행위를 하는 것도 비슷하다. 물론 이쪽이 좀 더 순수한 의도로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산 페드로 시장의 상인들. 가장 자주 본 현지인들의 모습이다

아침에 맡긴 며칠간의 세탁물을 찾고 어느 도시에서나 현지인의 삶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전통시장인 산 페드로 시장을 방문한다. 이곳은 정말 말 그대로 현지인의 삶 그 자체였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그랜 바자르와 매우 유사한 느낌이다. 기념품을 파는 곳들 외에 식료품, 고기, 음식들을 파는 곳도 있는데 더욱 더 로컬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확실히 도시 내 일반 상점들보다 저렴하다. 퀄리티는 보장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이 또한 전통시장의 매력포인트다. 시장에서 본 페루인들은 피부가 검은데 주름이 깊고 표정이 적어 삶이 고단해보인다. 페루 여성의 경우엔 전통 의상을 입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로 치면 아마 3~40년대생 분들이 일상적으로 입으신 일상 한복과 같은 느낌일 듯 하다. 시장 안에 가판대가 있는 상점들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 지붕도 있어 비와 햇빛을 피하고 앉아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 바깥편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끊임없는 자리 싸움과 또 우기라 언제 올지 모르는 비로 야채 등 식료품을 주로 파는 상인들에겐 이걸 피하는게 꽤 고역일 것이다. 다들 힘겹게 고단한 삶을 이끌어 가고 있지만 또 시장 특유의 역동성도 볼 수 있다. 시장 안보다 시장 입구 초입부터 건물 바깥까지 아주 시끌벅적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기가 좀 빨리긴 하지만 이것이 외지인이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매력 아니겠는가. 조금 더 둘러보고 특템 기회를 노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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