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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jung KIM Oct 08. 2018

이제 자신을 사랑해줄 때도 되지 않았나.

결핍에 시달리는 자신을 그만 다그치기


 어제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듣고 마음이 그만 내려앉고 말았다. 정밀아의 ‘방랑’이라는 노래였다. 오랜 시간 나를 알아줄 사람과 세계를 찾아다니다가, 누군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제 그만 해도 돼’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다리를 건너 폭포를 지나도
  찬란한 세계가 있지는 않을 거야.
  싸늘한 밤들이 불안하여도
  나무는 내게 그저 견디라 하네.
  길은 끝없고 나는 멀어지지만
  결국 이곳으로 길은 다시 이어지고
  사랑스러운 동경의 별들이 빛나면
  나 또 다시 방랑자 되려 하겠나.

 인간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결핍에 매달린다. 결핍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면,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 새 블랙홀 같은 구멍에 빠져들어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하든 만족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마셔도마셔도 목이 말라, 주변의 누구도 의지가 되지 않고 도와줄 수 없는 그런 상태.

 어제는 내 오만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고 왔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 식당에서.  유모차를 밀며 내 쪽으로 오던 그 사람이 고개를 까딱 하며 인사를 보냈으나 나는 너무 당황해서 고개를 돌리고 도망치고 말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민망하게도 또다시 그와 마주쳤는데, 그땐 평온한 표정으로 눈웃음을 짓는 그에게 나도 미소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은 얼마나 들끓고 있었는지.
 아주 솔직해지자면, 그가 그렇게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많은 장점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렇게 잡지 속에 나오는 것 같은 ‘가정의 행복’만은 누리지 못할 거라고, 오만하게도 생각하고 있었다. 타인의 행불행을 단정 지어버린 나의 오만함을 마주하고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곧 평정심을 회복했다.(나이 들어 좋은 점은 이런 거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연히 ‘방랑’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가수가 누군지도 몰랐고, 운전을 하며 노래 가사의 의미를 되새길 여유도 없었으나, 노래 속의 그이가 나와 같이 결핍에 시달리며 방랑을 멈추지 않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너무 힘들다고 핏대를 세우며 울부짖는 대신, 살아가면 문득문득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하지만 다그치지 않고 조금씩 나아져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리라. 노래가 끝나갈 즈음 나는 오만한 나, 결핍에 시달리는 나를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다. 안 받아들이면 어떡해, 나밖에 없는데. 결핍이 있는 불완전한 나라도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지 않나.
 그러니까 너무 다그치지 말고, 잘 다독여가며 지내야겠다. 이제 자신을 좀 사랑해줄 때도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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