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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Feb 04. 2023

첫 출근에 마주친 피어싱과 문신

회사인턴 생존 일기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 회사, 나는 아침 일찍 캐주얼 정장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첫 출근길 전철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주 아주 오래전 첫 출근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퇴직하며 이탈되었던 사회로 다시 합류한다는 생각에 잠깐 흥분이 느껴졌다. 전철 안 흔들리며 흐트러졌던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매만졌다.

    지금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회사는 사회적 기업이지만 스타트업 성격이 강한 회사다. 그래서 직원들도 다 젊다. 열댓 명의 직원들 거의 다 20대며 대표도 30대다. 이 회사에 인턴으로 일하게 된 건 공기업인 **공사가 CSR 실천의 한 방편으로 사회적 기업에 시니어 인턴을 지원하는 제도 덕분이다. **공사는 몇몇 사회적 기업을 선정 기업이 시니어 인턴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인건비를 지원하는데 의류 자원 리사이클을 목적으로 설립한 지금의 기업이 나의 직장 생활 경험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지원했다. 창업 2년 차의 회사는 의욕 넘치는 젊은이들답게 가상현실(VR) 등을 활용하여 의류 재활용에 대해 연구하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테스트 중이었다. 아직 매출이나 수익이 미미하지만 투자를 하겠다는 VC(Venture Capital)도 있는 것을 보면 성장성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면접하는 자리에서 만난 면접관은 아주 젊은 친구들이었다(면접 장소는 회사가 아니었다. 면접관 둘은 인사팀장과 사원이었다는 걸 입사하고 알았다). 전혀 격식을 따지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면접에 오히려 내가 더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면접은 길지 않았다. 이미 서류로 나의 이력을 대충 파악하기도 했겠지만 인건비를 지원받으며 쓰는 인턴이니 회사가 부담 없이 채용하는 거라 그런 것도 있는 듯했다. '니들이 월급주냐? **공사가 월급 주지'. 면접을 마치고 나도 이런 맘이 드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이런 생각을 버렸다. 새로운 출발에 앞서 마음가짐에 전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인턴으로라도 입사하게 된 것에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있던 나는 설렘도 많았지만 시니어로서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조직 안으로 스며드는 게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근무 시간이 즐거운 시간이 되어야 했다. 어떤 조직에 합류하며 어울리지 못하면 함께 하는 시간이 고역이라는 건 회사가 아닌 작은 모임에서 조차 그랬으니깐.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일에 대한 욕망. 퇴직하고는 주식회사라는 곳에서 일해 본 적이 없으니 그런 열정을 다시 끄집어내고 싶었다  


    출근 첫날 회사 건물에 도착했는데 입구 바깥 한쪽 구석에서 서너 명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여자도 한 명 있고. 그중 두 사람은 코와 입술에 피어싱을 했고 거기다 목에 문신까지 한 사람은 문신이 어찌나 큰지 얼굴로 기어 올라올 정도로 온 목을 감싸고 있었다. 코에 피어싱을 한 여자의 손등 문신도 눈에 거슬렸다. 나는 이 사람들이 내가 함께 일할 사람들이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은 회사가 단독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습에서 상상의 회사를 떠올려야 했던 나는 복잡한 생각을 담고 2층 사무실을 향해 아주 천천히 한 계단 씩 밟으며 올라갔다. 짧은 순간이지만 어차피 앞으로 근무할 곳이니 모든 걸 긍정적으로 보자며 사장 사무실로 향했다. 사실 내가 그들을 본 순간 판단의 핵심은 피어싱을 하거나 문신을 한 사람은 불량한 인간이다라는 편견이 내 머릿속을 뒤흔들어 놨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으며 아내가 또 잔소리를 했다. "첫 출근해서 직원들한테 먼저 말 걸지 마셔. 썰렁한 꼰대 개그 같은 거도 하지 말고. 제발 말 좀 줄이". 아내의 말과 피어싱 문신의 모습들이 머릿속에 뒤엉켰다. 출근 첫날 마주한 모습들은 내가 예상했던 회사의 분위기를 한참 벗어났다. 퇴직 후 내가 원했던 직장은 젊은이들과 함께 터놓고 일하는 그런 분위기의 회사였으면 좋겠다였으니 좋은 거 아닌가? 의류 리사이클이니 이 사업도 패션이라면 패션사업이니 직원들도 그런가보지. 빠른 적응을 위해 나는 나의 생각도 빨리 정리했다.  


    사장의 옷차림도 수수했다. 30대 중반으로 회사 경영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회사 비전을 설명하며 많은 경험을 가지신 선생님(그는 나를 늘 선생님이라고 표현한다)의 고견도 듣고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손수 내린 커피를 가져왔다. 그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말하시고 즐거운 인턴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사장과의 얘기를 마치고 나오자 면접 때 봤던 팀장이 직원들에게 간단히 내 소개를 하고 자리를 안내했다.

    사장과 얘기할 때 사장은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고 얘기를 했지만 나는 거의 믿지 않았다. 그가 회사의 중요한 문제를 인턴사원인 내 말에 따라 결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회사가 이미 1년 반이란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의 길을 잘 가고 있기도 하고. 나는 책상에 앉아 서랍을 정리하며 인턴 역할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공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인턴의 입장이라 부담감이 덜한 건 사실이었다. 업무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일단 인턴에 맞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자고 생각하니 맘이 한결 가벼워졌다.


    첫 출근하며 가장 신경 쓰인 것은 사무실에서 매일 보는 직원들과의 사람 관계였다. 이것저것 정리하며 노트에 메모를 하고 있는데 "종건님!"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을 칭칭 감듯이 문신을 한 친구가 내 곁에 와서 날 부른 것이었다. 나에게 말을 건 첫 직원이 그였다. 자기 이름을 밝히며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하는데 아까 봤던 무시무시한 문신이 귀엽다. 입술의 피어싱은 곱상한 얼굴의 엑센트 같고. 무엇보다도 공손한 말투에 예의 바른 모습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려 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출근 복장은 자율. 겉모양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했던 나는 지금은 가죽 재킷에 체인을 칭칭 감고 출근하는 직원을 보며 멋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자유분방한 옷차림이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이고 그런 친구들이 더 창의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편견이 사라지고 나도 가끔 과감한 옷차림으로 출근한다. 과감하다고 해봐야 조금 찢어진 청바지 정도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출근 첫날 건물 입구에서 느꼈던 첫인상을 지금까지 회사에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걸 말하는 순간 나는 꼰대 인턴사원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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