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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Feb 06. 2023

회사에서 내 호칭은 네 개

회사인턴 생존 일기

    회사에서 내 호칭은 네 개다. 선생님 인턴님 종건님 멘토님. 임원들은 언제나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출근 첫날 시니어라는 벽을 허물기 위해 인턴님으로 불렀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지만 어떤 직원은 종건님, 어떤 직원은 인턴님이라고 부른다. 드물게 멘토님이라고 부르는 직원도 있다. 직원들 중에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직원은 없다. 직원들은 내가 제안한 호칭을 받아들이는 게 편했는지도 모른다. 어린 직원들이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면 나도 듣기는 좋을지 모르지만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호칭보다는 직원들이 부르는 이런 호칭이 더 정겹다. 희한하게도 나이가 어린 직원일수록 종건님이라고 이름에 님자를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는 당돌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우리는 서로의 이름에 자를 붙여 부르며 가까운 동료가 되었다


"종건님 이름(성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의 종자가 무슨 한자예요?"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하는 마케팅을 담당하는 자연님이 묻는다.

"마루 종이요, 세종대왕 할 때 종자예요. 근데 왜요?"

자기 사촌 오빠 중에 나랑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단다.

"아~~ 그래요? 그 오빤 쇠북종자 쓰는 거 같던데…… 한자는 틀리는구나……." 우린 책상을 마주 보고 앉아 그렇게 호칭으로 이어진 별거 아닌 대화를 하며 소통했다. 입사해서 처음 마케팅 업무를 한다는 그녀는 그 후로도 수시로 마케팅에 대해 나에게 묻곤 했다. 덕분에 나는 그녀로 인해 회사 내 시니어 인턴의 존재 가치를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었다. 그녀 나이 25살. 나와 40년 가까운 세월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얘기할 때 항상 끝에 요자를 붙여 말한다. 물론 모든 직원들에게 다 그렇지만. 그녀는 인턴인 나에게 거침없이 할 말을 하지만 말투 안에 예의 바른 모습이 담겨 있어 나는 전혀 거리감을 못 느낀다. 흔히 얼빠진 꼰대들이 이렇게 나이차이 나는 젊은 사람을 보면 무시하며 손녀 같다는 등 싸가지 없는 말을 뱉고 막 대하려 하겠지. 처음에 그녀가 '종건님!' 하고 불렀을 때 약간 어색하게 들리긴 했다. 하지만 그게 싸가지 없는 말은 아니다. 당연한 호칭이기도 하고.


    나이 먹은 꼰대들의 특징. 어디 가든 나이로 서열을 정하려 한다. 나이가 모든 결정의 최고 단위다. 이런 문화에 익숙한 시니어는 요즘 같은 사회, 회사 분위기에는 스며들기 어렵다. 나는 이 회사의 막내 신입사원이고 정규직도 아닌 인턴사원이다. 나이가 나의 지위를 올려주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있다고 직원들이 나를 떠받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들의 얘기를 들어야 하고 때론 그들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업무 능력이 나이로 결정되던 시대를 보낸 시니어는 그저 과거 꼰대 문화의 덕을 입은 것뿐이니 자신의 업무 역량을 과대 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가끔 나에게 멘토님이라고 부르는 직원이 있다. 멘토님은 듣기 좋은 호칭이다. 평소 거리감이 있던 직원이 재무제표에 대해 물어보길래 자세히 가르쳐 줬더니 끝말에 '멘토님 감사합니다. 담에 궁금한 거 있으면 또 물어볼게요.' 한다.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에게 지도하고 조언해 주는 사람을 멘토라고 하니 그런 호칭이 과분할 따름이다.


    "종건님 안녕!" 출근하며 반말 투로 인사를 건네는 짓궂은 직원, 활짝 웃으며 큰소리로 이렇게 인사한 후 내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 "하세요~~." 한다. 나도 웃으며 "동환님 안녕, 하세요~~." 한다. 오늘도 이렇게 네 개의 호칭은 여기저기서 불린다. 편한 대로 불려지고 나도 편한 대로 듣는다. 자유로운 사무실 분위기만큼이나 지들 멋대로 부르는 내 호칭이 나는 그저 귀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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