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회사는 20 30대 초반의 젊은 직원들도 구성되어 있다. 대표도 30대 중반이라 젊은 직원들의 열정이나 창의력을 중시하는 듯하다. 그들과 함께 일하며 나는 나의 과거 경력을 묻어둔 채 신입사원의 마인드로 함께하고 있다. 인턴의 업무 한계로 어떤 공과를 만들 수는 없지만 무난하게 인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젊은 직원들을 이해하고 겸손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직원들과 대화할 때도 무척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편이다. 여차 잘못 말하면 나이 먹은 티 낸다고, 업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체를 하면 과거의 경험을 아직도 욹어먹냐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투는 정확하게 존칭어를 붙여 말한다. 그래서 모든 대화 말미에 정확히 ~요를 붙여 말한다. 하지만 업무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회사에서 계획하고 추진하는 비즈니스의 기본 환경은 내가 경험했던 패션관련산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회사는 내가 업무에 깊숙이 개입하길 원하지 않는 거 같다(인턴이니 당연하지만). 가끔 회의실에서 들려오는 소리, 사무실 한쪽 테이블에서 미팅하며 들리는 업무 관련 얘기를 듣다 보면 내가 알고 경험했던 내용들도 많아 목구멍에서 하고 싶은 말이 나오지만 꾹꾹 참는다.
스타트업 마인드로 일하는 회사니 분위기는 자유분방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창의력이 발현되고 자발적 열정이 피어날 거라는 건 이해가 된다. 그리고 젊은 직원들이 착하고 순수한 것도 좋다. 하지만 일하다 보면 맘에 안 드는 것도 많다.출근은 늦으면서 퇴근은 정시에 하는 직원, 집중력이 부족한 듯 산만한 직원 등. 출근 시간을 체크하지 않아 그런지 조금 늦게 출근해도 당연하게 여긴다. 신세대 마인드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나이기에 그런 소소함이 업무의 질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진 않는다. 8시간 근무 시간만 때우고 업무 질이 형편없는 그런 직원들을 많이 봐왔던 나다. 하지만 근무에 임하는 자세는 좀 다르다고 본다. 업무에 대한 긴장감이 없다. 심하게 얘기하면 이 회사가 내 거냐? 이런 식이다. 정말 맘에 안 든다. 또 자유분방함의 개념은 어디까지인가? 사무실이 지저분한데 주변 정리 하지 않는 것도 영 맘에 안 든다. 내 거 외에는 다른 건 신경도 안 쓴다. 사무실 한쪽에 이거 저거 쌓아 놓고 구석에 먼지가 솜뭉치처럼 쌓여 있어도 빗자루 드는 직원이 없다. 가끔 자발적으로 청소하는 직원이 우리 회사는 어지럽히는 사람 따로 청소하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을 하던 데 그 직원도 언젠가는 빗자루를 놓을 까 걱정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요즘 젊은 친구들 똑똑한 건 맞는데 남을 배려하는 건 빵점이야'라고 비약하면 내가 그들을 너무 모르는 건가?
사실 이런 표면적인 것보다 직원들이 맘에 안 드는 게 업무 내용이다. 직원들의 엄청난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나이로 보면 그다지 많은 사회 경험을 하진 않았을 텐데 자신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떤 땐 추진력이라고 말하기엔 무모할 정도로 비체계적이다. 자신감도 좋지만 내 눈에는 세상(비즈니스 세계)을 너무 쉽게 보는 거 같다. 능력 있고 조직관리 등 경험 많은 중간관리자가 있어 전체적인 방향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조정 역할이 필요한 거 같은데 실무를 하는 젊은 친구 몇 명이 모든 걸 다 해낼 것처럼 자신한다. 그러다 보니 부서 간 협업이나 직원 간 이뤄지는 업무를 조율하며 앞선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높은 수준의 관리자)이나 기능(촘촘한 조직)이 없다.회사라는 조직이 혈관처럼 이어져 시너지 나게 만드는 건 쉽지 않은 것이다. 회사의 체계를 갖추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다. 대표가 이 사업이 이미 절반은 성공한 듯 착각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는 맘에 안 드는 걸 넘어 미래가 걱정된다. 대개 이런 경우는 사업을 거시적 환경으로만 이해하고 결과를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들리는 좋은 말에 도취돼서 그렇기도 하고. '어떤 회사가 우리와 같이 일해보잖다' 'S대학 어떤 교수가 우리 회사를 이렇게 좋게 평가하더라'하면 다른 사람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비즈니스 성공의 열쇠는 교수가 하는 말이 아닌 소비자의 합리적 행동에 의해 결정된다는 걸 아는 나는 이런 분위기로 업무가 진행되는 게 이해하기 힘들다. 나보다 능력 있는 사람을 쓰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비즈니스 서적이 서점에 수도 없이 깔려 있다. 자기보다 난 사람을 모실 용기가 있어야 기업이 성공한다는 진리를 깨달은 나는 지금 회사는 경험과 실력을 갖춘 40대 책임관리자가 필요한 거같은데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다(그런 사람을 채용하기엔 급여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회사가 그런 사람을 모시면서 까지 쓰고 싶지 않은 거 같다). 도표로 만든 비즈니스 플랜은 실행하면서 너무나 많은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한다. 배우면 다 할 수 있다, 사람을 써보고 그러다 아니면 바꾸면 된다는생각은 비즈니스 전쟁터를 너무 모르는 것이다. 대표가 조직이나 인원을 체계적으로 운용하여 시스템적으로 회사가 돌아가야 하는데 내 눈에는 구멍이 여기저기 보인다. 실패의 가능성을 항상 옆에 두고 일했던 나의 경험과는 지금 회사 분위기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니 영 맘에 안 들지만 내가 끼어들 건 아니니 그저 무덤덤하게 인턴으로만 있는 거다.
나도 젊어서는 회사에 불만이 꽤나 많은 사람이었다. 불만이 많은 상태에서 직장 생활을 지속하는 건 위태로운 시간의 연속이다. 그렇게 위태롭게 20년을 버티던 나는 40대 후반에 남의 허물보다 내 허물이 더 많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렇게 느껴야만 회사에서 버틸 수 있었다. 더 이상 부정적인 시각으로 회사나 사람, 세상을 본다면 결국 그건 부정적인 나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변화의 노력 덕분인지 나는 그 후로 10년을 더 근무했다.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며 경험을 전수해 주고 좋은 멘토로서 역할을 해달라는 말은 인턴이라는 위치에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출근하여 하루종일 얼굴을 맞대며 일하는데 맘에 안 드는 게 자꾸 눈에 거슬리면 나만 불편하다. 회사(조직)나 직원들 맘에 안 드는 걸 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업무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건 내가 회사 대표가 아니니 그저 잘해나가겠지 하면서 좋게 보는 게 내 정신건강에도 유익하다. 그래서 나는 시니어 인턴 본분을 잊지 않기로 했다. 젊은 직원들 그냥 이해하자. 맘에 안 드는 거 때문에 괜히 내가 불편해할 건 없지. 흥하든 망하든 대표 자기 복이다하면서. 어차피 시니어 인턴은 진지한 업무대화 파트너로서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나보다 30살 많은 90대 중반 노인과 책상을 마주하고 앉으면 무슨 말을 할까? '건강 잘 챙기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내가 할 말은 이 말 뿐이겠지.직원들이 나와 회사 업무를 진지하게 논하기 어려운 건 시니어 인턴이라는 위치 때문이지만 30년 세월의 차이도 있다. 나와 마주 앉은 젊은 직원이 나에게 느낄 간극은 내가 90대 중반의 노인과 마주 앉는 기분과 별반 차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절로 헛웃음이 나온다. 그렇지만 나이 먹은 게 죄는 아니다. 특히 액티브 시니어들은 과거의 경험에 도전 의식이 더해 역동적인 두 번째 인생을 산다. 젊은 친구들이 그런 시니어에게는 배울 것도 꽤 많을 텐데 그저 나이로만 판단하니 아쉬움이 많다.
* 액티브시니어 : 은퇴 이후에도 소비생활과 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50~60대 세대를 지칭하는 말(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