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쫑 Mar 13. 2023

나이 먹어 가며 보는 눈치는 참 추하다

회사인턴 생존 일기

    우리는 살면서 눈치도 많이 보며 사는 거 같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내가 주변에 어떻게 비치는가에 민감한 게 사실이다. 회사 다니며 회의 시간에 자유롭게 얘기해 보라는 상사의 말에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남들이 뭐라 생각할까?'하고 하려던 말을 다시 삼킨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남의 눈치 때문에 하려던 말이나 행동을 그만두면서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하지' 자신을 탓해 보지만 여간해서 그런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 눈치에 밥을 붙여 눈칫밥이라는 단어까지 있는 거 보면 눈치라는 게 일상의 일이구나 싶다.

     눈치가 너무 많아도 탈이지만 눈치가 너무 없어도 탈이다. 나이 먹을수록 눈치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 나잇값 못한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눈치 없다는 말은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이 뻔뻔하다는 말로도 들려 눈치 좀 보고 주변 배려하며 살라는 경고라고도 할 수 있다.


    인턴 앞에 시니어가 붙으면 이런 추측을 한다. 야근할 정도로 일이 엄청나게 많을 거 같진 않고 어른 대접은 할 테니 막 부려먹지는 않겠지. 중요한 역할은 안줄테고 딱히 정해진 업무도 없을 . 확실한 거는 막 부려먹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중책을 맡기기도 어렵다는 거. 출근 첫날 사장은 나에게 멘토로서 경험을 전수하고 직원들이 물어보는 것을 가르쳐주는 걸 주 업무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험 많은 시니어를 배려한 말이지만 인턴이니 중책을 맡길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말로 들리기도 했다. 그래도 멘토링이란 용어에 담겨 있는 포괄적 의미 때문에 직원들과 많은 얘기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애매한 업무 분장은 직원들과 소통이 없다면 일이 아주 없을 수도 있다. 출근하고 직원들과 회사 내에 돌아가는 일에 대해 내가 끼어들어 토의할 정도로 관여되지도 않고 나에게 주어진 일은 단순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직원들이 나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가볍게 물어보는 내용이라 한 시간이면 족했다. 인턴이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쁘면 그것도 웃기는 일이다. 하지만 무료해서 자주 시계를 들여다보는 것도 고역이다. 무료하다고 남의 업무에 끼어드는 것은 오히려 민폐다. 업무 하는 직원의 모니터를 힐끗 쳐다보며 화면에 떠 있는 업무를 아는 체하며 말을 건다는 건 업무를 방해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하루종일 내 노트북 화면만 보다 시간이 갔다.


     시니어 인턴은 나이에 걸맞게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늘 행동이 조심스럽다. 출근해서 눈치 볼 일 없이 소신껏 일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하루종일 할 일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눈치가 보인다.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 자유로운 사무실 분위기니 나 스스로 눈치를 보는 것이다. 눈치를 봐야 하는 나 자신이 치사스럽게 느껴지지만 나만 한가한 거 같아 자꾸 주변이 신경 쓰여 스스로가 눈치를 보는 꼴이다. 시니어 인턴으로 새롭게 출근하며 하루 8시간을 쉴 새 없이 뺑뺑이 돈다면 다시 일을 시작한 걸 후회하겠지. 하지만 주어진 일이 단순하고 나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없는 것도 후회의 요소다. 일이 많아도 문제, 일이 없어도 문제니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내 속이 한심하다.

    사무실에서 업무의 간격은 인턴이라는 위치 때문이고 직원들과의 소통 부재는 시니어라는 나이의 간격 때문이다. 두 개의 간격이 넓으면 넓을수록 할 일은 적고 멀뚱멀뚱 보내는 시간은 많다. 그 간격들이 나를 눈치 보는 치사한 시니어로 만드는 것이다. 할 일 없을 때 일하는 흉내내기엔 컴퓨터가 제격이다. 멀뚱멀뚱 있을 순 없으니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뒤진다. 마치 업무를 위해 뭐를 열심히 찾듯이. 이런 땐 내가 보는 노트북 화면이 데스크톱 화면보다 작은 게 다행이다. 지나가는 직원이 내 노트북 화면을 볼까 봐 노트북을 살짝 돌리는 것도 스스로 주는 눈치가 일으키는 반사적 행동이다. 사실 나는 노트북으로 직원들에게 줄 자료도 만들고 정보를 검색하기도 한다. 나이 먹어 보는 눈치가 추하지만 할 일 없는 것이 내 탓은 아니라며 뻔뻔하게 나 하고 싶은 거 하며 시간을 메꿀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종건님 지금 시간 되세요?"

평소 나와 대화가 거의 없던 팀장이 나를 찾았다. 나는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황급히 노트북 화면부터 닫았다. 뉴스 기사를 보던 중이었다. 회사 생활하며 뉴스는 당연히 봐야 하고 세상 돌아가는 거 알아야 하는 건데 참내 원. 팀장 눈치 보며 모니터 화면부터 닫아버린 나 자신이 치사스럽다.

"네 팀장님. 지금 시간 많아요."

"오전에 손님이 와서 중국에 대해 얘기하는데 종건님이 중국에서 오래 근무했다고 들었어요. 물어볼 거도 좀 있고요". 회의실에서 나는 중국에 대해 내가 아는 상식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을 해줬다. 팀장이 리엑션도 하고 묻기도 하니 분위기 좋게 대화가 계속되었다. 지금의 시간이 나의 존재가치를 드러낼 절호의 기회인 양 나는 열변을 토했다. 얘기는 이미 팀장이 원하는 범위를 넘어서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나는 이때 팀장이 듣고 싶어 했던 내용까지만 얘기하고 마쳤어야 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열심히 메모하던 팀장이 시계를 봤다. 그리고 좀 있다가 한번 더 보고. 시계를 본다는 건 뭘 의미하는지 대충 알지만 팀장이 그만하자는 말을 안 하니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이 넘어갈 즈음 팀장이 말했다.

"종건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제가 밖에서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늦겠어요. 종건님이 하도 열심히 말하고 저도 궁금한 게 많아 중간에 끊기가 그랬는데 남은 얘기는 다음에 듣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팀장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회의실 문을 열어놓은 채 황급히 뛰어나간 팀장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참 눈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를 봐야 할 땐 안 보고 눈치 안 봐도 될 땐 잔머리 굴리며 눈치나 보고 참 한심하다' 자책하회의실을 나왔다.


    시니어가 눈치가 없으면 거기에 더해 나이까지 들먹인다. 그래서 시니어에게 눈치라는 건 훨씬 신경 써야 하는 어려운 처신 방법이다. 그렇지 못하면 두배로 욕먹으니까. '당신은 참 눈치가 없어. 나이 먹을수록 더해 어째'. 요즘 들어 가끔 아내가 하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진짜 나이 먹으며 내가 둔해진 건가? 내 몸 하나 운신하려고 눈치는 치사스럽게 잘도 보면서 남을 배려한 눈치는 없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도 세련되게 보자' 다짐해 보지만 말이 쉽지 참 어렵다. 특히 시니어에겐.


 

   


이전 17화 시니어의 외모 경쟁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