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뒷모습만 보고 나이를 알 수 있을까? 젊은 층의 나이는 뒷모습으로 알기 어렵지만 나이 든 사람은 금방 알 수 있다. 뒷모습이 주는 느낌이 어딘가 다르기 때문이다(노인의 걸음걸이는 제외하고). 외모가 주는 경쟁력은 젊은이들보다는 시니어 세대에게 더 요구된다. 나이 들면서 눈꼬리 입꼬리는 쳐지고 피부는 마른논처럼 메말라 가고 검버섯도 늘어난다. 이런 노화 현상을 막을 순 없다. 요즘 시니어 세대를 위한 화장품이나 뷰티케어 등이 많이 출시되는 데 나는 이런 것에 관심없다. 외출하기 전 우리는샤워를 한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몸에 하나씩 뭔가를 걸친다. 내가 말하려는 시니어 경쟁력은 의술을 이용하여 신체 부분에 인위적인 변화를 주는 게 아닌 몸에 뭘 걸치냐(입고, 신고, 들고, 쓰고)하는 거다.
'외모는 자존감'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방송에서 듣는다. 60대 70대의 시니어 모델이 인생 2막의 성공사례로 보도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편치 않게 들리기도 한다. 보도 내용이 실생활과 동떨어진 게 많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패션관련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주로 상품기획 파트에서 일했기에 자연스럽게 외모에 신경 쓰는 삶을 살았다. 몸에 걸치는 디테일이 사람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 알기에 외출하려면 코디네이트 하느라 시간이 좀 걸리곤 했다. 옷이나 구두, 안경 등을 스타일이나 칼라가 어우러지게 입으면 훨씬 단아한 모습이 된다. 나이 들면서 추구하는 모습도 바뀔 수밖에 없는데 시니어 세대에겐 신체적 노화를 이런 노력으로 조금 커버할 수 있다. 시니어 세대라도 되도록이면 젊게 보이게 입어야 한다는 것이 내 철학이다. 그렇다고 젊은이 흉내 내라는 건 아니고 50대 초반을 타깃으로 옷을 입으면 뒷모습은 50대로는 보인다는 말이다. 60인데 70대 노인처럼 보이든 말든 난 상관없다면 그런 시니어에겐 지금 내가 쓰는 이 글은 읽기 거북할 수도 있겠다.
'시니어 세대가 외모를 가꾸려면 돈이 든다'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나는 돈을 들여 가꾸는 외모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물론 약간의 투자(?)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품을 사는 게 아닌 맵시가 나고 착장에 어울리는 것을 산다는 건 감각이지 돈이 아니다.
외모를 가꾸기 위해 검버섯을 제거한다거나 하안검 수술을 한다거나 필러 수술을 하는 것 등은 보통의 시니어들이 하는 행위는 아니다. 먹고사는 거 힘들어하는 시니어는 더욱 그렇고. 이런 돈 드는 일 말고도 외모를 가꾸어 나를 젊게 만드는 것들은 의외로 많다.
외모를 말하며 제일 먼저 말하고 싶은 게 두발이다.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곳은 얼굴 쪽이다. 얼굴 하면 머리숱이고. 머리가 짧고 단정하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흰머리가 많은 사람은 짧은 머리로 흰머리가 잘 보이지도 않고. 사람 머리는 생각보다 빨리 자라 이발 후 2주만 돼도 지저분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3주마다 이발을 하는데 이게 되게 귀찮다. 나는 만 원짜리 이발을 한다. 이걸 아까워하진 않는다. 웬만한 점심 식사도 만원인데 이발하고 3주를 깔끔한 모습으로 지내니 이발비는 돈도 아닌 셈이다. 두 번째가 안경이다. 시니어 세대 중 안경을 낀 사람이 많다. 안경은 외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나도 안경을 쓰지만 TPO(때. 장소. 경우)에 따라 안경을 바꿔 쓰긴 한다. 내가 갖고 있는 안경 중에서 금테나 은테의 커다란 안경은 없다. 경로당 안경을 쓰고 있다면 당장 그 안경을 버려야 한다. 안경 도매점에 가면 5~8만 원에도 그럴싸한 안경이 많다. 한번 안경을 하면 몇 년은 쓰니 이게 비싸다곤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브라운 칼라의 뿔테에하단이 약간 둥근 형태의 안경은 나이를 10살은 젊어 보이게 만들며 온화한 이미지를 준다. 세 번째가 옷이다. 옷은 돈도 많이 들고 코디네이트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대형마트에만 가도 싼 옷들이 많다. 행사하는 옷도 많고. 문제는 감각이고 그 감각의 중심에 스타일과 칼라가 있다. 바지통이 넓고 밑단이 길어 땅에 질질 끌릴 정도의 바지는 뒷모습만 연상해도 나이가 떠오른다. 거기에 칙칙한 칼라의 긴 점퍼를 입었다면 노인 중에 상 노인의 모습이다. 먼저 몸에 딱 맞춰 옷을 입어야 한다 조금은 끼는 듯하게. 펑퍼짐한 옷은 입어서 편할 진 모르지만 맵시는 꽝이다. 할 수 없이 칙칙한 단색으로 위아래 도배하듯이 입었다면 안의 옷은 밝은 색으로 입어 전체적인 칙칙함을 커버하는 것이 좋다. 이때 밝은 색 머플러를 하면 완전 신세대 시니어가 된다. 이젠 목도리도 하나쯤 구비하자 밝은 색 톤으로. 아크릴 원단소재는 몇만 원도 안된다. 누가 이게 양모인지 아크릴 소재인지 따지지 않는다. 싸다고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날개 안의 깃털도 바꾸면 날기가 훨씬 편하다. 다음은 구두(신발). 시니어 세대 대부분은 검은색 구두를 신는다. 무채색 계열의 구두는 무난하긴 하다. 하지만 무난하다는 말, 무난하게 입는 칙칙한 옷이나 안경 구두 등은 달리 말하면 경로당 가는 데 뭔 차림이 필요하냐는 의미와 비슷하다. 낡은 구두에 구두약을 발라 색을 입히는 건 돈이 드는 게 아니다. 닳고 먼지 묻은 구두라도 구두약을 진하게 바르면 새 구두처럼 보인다. 문제는 구두를 그저 살이 맨땅을 디디지 않는 도구로 보는 짚신의 시각 때문이다. 그런 시각을 가진 사람은 그 구두를 신고 삽을 들고 논두렁으로 나가기도 할거다 아마. 시니어 세대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것은 퇴직 후 이탈했던 사회 속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 사회구성원으로 부터 다시 어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모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조금만 신경쓰면 되는 걸 무신경해서 자신을 깎아 먹는 모습도 의외로 많다. 삐죽삐죽 솟은 수염이나 길게 뻣어 나온 코털은 중늙은이 소릴 듣기에 딱이다.이런 사람은 옷을 아무리 잘 입어도 소용없다. 지하철에서 이런 시니어를 보면 면도기나 코털뽑기 하나 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내 눈에는 꽤나 거슬려 보이는 거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때 뭔가 설렘이 있는 거 이게 시니어 외모 경쟁력을 갖추는 출발점이다.
직원들과 가까워진 듯하지만 간극은 어쩔 수 없다고 쓴 적이 있다.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고 있으니 내 나이를 다 알고 있고 내가 아무리 젊게 입고 행동한 들 나이에 대한 선입견이 있을 테고. 이런 환경에서 외모마저 시니어 그 자체로 보인다면 나와 그들의 간극은 더 벌어질 것이다.
출근길 욕실에서 한참을 안 나오니 아내가 빨리 나와 밥 먹으라고 한소리 한다
"오늘 뭔 일 있어? 왜 그렇게 욕실에 오래 있어? 당신 향수 뿌렸어??"
"아무 일 없지 그냥 출근하는데 뭐. 당신이 맨날 늙으면 몸에서 냄새난다고 자주 씻으라며? 향수 냄새 어떠셔? 아 이 안경 어때? 오늘 바꿔 쓰고 가게"
안경을 벗었다 쓰는 내 모습에 관심 없다는 듯 아내는 힐끗 한번 쳐다보고 밥이나 빨리 먹으라고 채근한다
"오늘은 체크무늬 남방에 캐주얼 재킷 좀 입고 가야겠다"
"이 양반이 점점. 직원들도 다 편한 복장이라면서 웬 재킷이야? 오늘 선보시나 종건 씨?"
어제저녁 잠자리 들며 나는 오늘 뭘 입을까 생각하며 잤다. 요즘 직원들과 교류가 적은 편이다. 직원들이 바빠서도 그렇지만 시니어 세대에 대한 거리감도 원인은 원인이다. 그래서 내일은 스타일(외모)을 바꿔 젊게 입고 가자고 생각했다. 옷을 챙겨 입자고 한날 아침에 무턱대고 옷장을 열면 코디가 쉽지 않다. 댄디한 차림을 생각하며 잔 건 그래도 이런 차림이 패셔너블 하고 중후한 멋을 느끼며 젊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연한 블루톤의 체크 남방에 재킷을 걸치고 머플러를 둘렀다. 구두는 브라운 색상으로 신고. 현관 거울 앞에 서니 십 년 전 나의 모습이다. 자신감이 쭉 올라온다. '이 놈들 오늘 내 모습 보면 좀 놀라겠지?ㅎㅎ'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을 나왔다. 전철역에서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는데 괜히 두리번거린다. 그리곤 어깨를 으쓱한다. 나는 마치 아직도 50대 현직에 있는 착각에 빠져 콧노래를 흥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