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의 사전적 의미는 50대 이상의 연장자, 어르신을 말한다. 장년 세대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사회자가 듣기 좋으라고 다 시니어 세대라고 통칭한다. 그러나 요즘 50대는 시니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젊다. 그러다 보니 시니어라는 말이 50대 장년들에게는 나이대접 하는 단어로, 60대들에겐 아직 노인은 아니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나이에 민감한 한국 사람들이 영어의 모호함을 그렇게 활용하는 거 같다. 어찌 됐건 장년이나 시니어나 노인이나 연식이 오래되어 시대에 맞지 않고 부품(신체나 정신)도 낡아 여기도 고장 저기도 고장 나니 환영받지 못하는 기계(사람)라는 듯이 들릴 땐 서럽기도 하다. 평소에 똥배짱으로 나이를 부정하며 사는 나지만 주변의 눈이 나를 그렇게 볼 땐 인정하는 게 낫지 그들을 욕해봐야 객기일 뿐이다.
50대는 노년의 청년기다. 노년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면 장년이라고 부르면 된다. 우리네 50대는 마지막 직장을 최대한 길게 하려고 발버둥 친 시간들로 기억된다. 그러다 보니 50대 삶이 가장 처절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폭풍처럼 밀려드는 시기지만 불안감을 느끼기도 전에 가족에 대한 임무(대개 이 시기에 자녀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경제적인 부담도 가중된다)로 매일매일을 허덕인다. 이러다 50대 중반쯤 퇴직하면 허울만 좋은 시니어라는 말을 듣는다. 어른 대접받는 느낌이 들지만 사회로부터 밀려나면서 듣는 이 단어는 결코 유쾌한 단어는 아니다(직장에 있으면 50대 후반이 되던 60대 초반이던 시니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정부 취업사이트에 장년 카테고리는 있지만 시니어 카테고리가 없는 것은 시니어 세대라는 말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부티나는 단어로 들리지만 가정 경제적으로 돈벌이를 더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취업의 자리가 없다는 말이라는 걸 의미한다.
50대를 젊다고 자부하며 살아온 나지만 60대가 되면서는 시니어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마인드가 젊다고 한들 남들의 눈에는 손주가 있을 할아버지 나이로 비치는 게 사실이니까. 친구들 모임에서 내가 인턴으로 일한다고 하니 나를 써준 그 사장이 대단하다며 나 같으면 우리 나이 안 쓴다 노친네들 눈도 침침하고 자꾸 깜빡깜빡하고 동작도 굼뜬 데 왜 쓰냔다. 다들 자신은 아니라면서 남을 평가할 땐 합리적 판단을 한다. 그러니 남들 눈으로 보는 나이 먹는 모습을 나도 인정 안 할 수 없다.
오늘 하루종일 혼자서만 일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가끔 이런 날도 있긴 했다. 하지만 오늘은 혼자 일하며 생각이 많았다. 젊은 친구들과 일한다고 옷도 스마트하게 입고 꼰대 같은 말은 하지도 않지만 젊은 직원들과 나와의 간극은 의외로 넓다. 그게 꼭 인턴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젊은 사람들 누가 할배랑 같이 일하고 싶겠어.ㅎㅎ' 아내가 가끔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다. 나만 나이를 잊고 살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세월 따라 자기 나이도 흘러간다는 것을 안다. 직원들 눈에 나는 그냥 인턴이 아니라 시니어 인턴인 것이다. 50대 장년을 치열하게 살았던 나는 장년 그대로 60대로 이어지는 줄 알았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나는 시니어 인턴이다'. 이렇게 되뇌니 불편했던 하루의 시간이 누그러지는 것 같다. 사무실 공간에서 하나의 마인드 컨트롤 수단이었다.
장년과 시니어. 50대 장년 시절 나는 시니어라는 입구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그중 하나가 체력과 외모였고. 덕분에 나이보다는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경쟁력 중 하나이기도 했다. 시니어와 노인의 어감 차이는 엄청나다. 언젠가는 노인이라는 말을 듣겠지만 지금은 그 말이 끔찍하다. 그나마 시니어라는 말을 듣는 지금이니까 인턴의 기회도 있지 노인이 되면 이런 기회도 없다. 그래서 사무실로 출근하여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시니어 인턴의 나이는 대개 65살이 끝이다. 나도 이제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사실 나는 출근해서 일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뭔가 회사에 기여하고 싶다는 열정도 많았다. 하지만 시니어 인턴의 업무는 정확히 한계가 있다. 그 한계에 맞닥뜨릴 때마다 나는 시니어라는 단어를 되새기곤 했다.
시니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지금 나는 시니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나이를 정확히 구분 짓지 못하는 애매함 때문에 좋다. 지금 내 나이는 젊은 노인축에 든다. 이젠 50대~60대 중반은 젊은 노인, 60대 후반부터 70대 중반은 시니어라고 불렀으면 좋겠다. 그럼 나는 오랫동안 시니어라고 불리겠지. 나는 정말로 70살이 되어도 노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