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쫑 Sep 05. 2023

순천만울트라마라톤 102km 생생 기록 (2)

미친 짓을 왜 할까?


**폭우와의 싸움**

    두 시 반이 되자 일기예보가 맞다는 듯 비가 흩뿌리기 시작한다. 73km 급수대에 도착할 즈음엔 빗줄기가 굵어졌다. 급수대 천막에서 비 그치기를 기다리는데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이 정도 비는 그나마 예상했던 거라 다시 뛰기로 했다. 쉬면서 지체하면 그만큼 시간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를 맞으며 10분 정도 뛰는데 갑자기 폭우로 변한다. 어라! 일기예보는 1~5mm 한두 시간 비 정도였는데?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폭우를 피하려고 사방을 살펴봤지만 피할 곳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달려야 했다. 칠흑 같은 밤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가 쏟아지고 도로에는 물이 넘쳐흐르는데 몸을 피할 곳이 없으니 공포감이 밀려왔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순간 떠오르는 아내의 얼굴. 아내는 늘 나에게 마라톤이 운동으로는 좋은 거니 뛰긴 하되 제발 하프코스만 뛰라고 한다. 자신을 학대하며 왜 그렇게 미친 듯이 뛰어야 하냐며 백 킬로미터는 미친 짓이라 했다. 특히 이번에는 밤에 비도 온다는데 참가를 포기하면 안 되냐고 출발 전날까지도 말했다. 그렇다 지금 같은 폭우가 몇 시간 이어진다는 일기예보였다면 나도 포기했을 것이다. 지금의 폭우는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것이었다. 옷과 배낭은 흥건히 젖었고 운동화에서는 찍찍하며 물이 새어 나왔다. 어떤 방법을 찾을  없으니 그저 앞으로만 달렸다. 얼마 달리자 다행히 저 앞에 간이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이제 살았구나 하며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안에는 이미  명의 주자가 비를 피하고 있었다. 우비로 갈아입고 비가 누그러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배낭을 열어 우비를 꺼냈다. 핸드폰과 충전기도 젖지 않게 지퍼백에 담았다. 폭우 속에서는 배낭을 열어 핸드폰을 꺼낼 일이 없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은 핸드폰을 만지지 못하겠다는 생각으로 단단히 밀봉해서 넣었다. 그래도 손목에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으니 시간을 확인할 순 있다. 기다려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기록을 의식하는 주자는 엄청난 손해다. 쏟아지는 비를 체념한 듯 한 명이 출발하고 잠시 후 또 한 명이 정류장을 떠났다. 모두 미친 짓을 다시 시작하는데 표정은 덤덤할 뿐이다. 비가 멈출 거 같지도 않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돌아갈 방법은 더더욱 없으니 나도 앞으로 뛰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5분 정도를 더 기다리다 비를 쫄딱 맞은 주자 한 명이 들어오고 나서야 나도 정류장을 떠났다. 우비 앞섬을 움켜쥐고 뛰기 시작했다. 그저 비가 그치길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비는 그칠 기미가 안보였다. 멘탈 관리를 위해 체념보다는 해탈이 필요했다. 폭우로 더위는 가셨다. 하지만 나는 몸의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뛰어야만 했다. 급격히 폭우로 기온이 내려가고 땀이 식어 오한이 들면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천천히라도 꾸준히 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폭우로 인해 뛰었던 구간에서 나의 기록은 조금 나아지기도 했다. 엄청나게 쏟아지던 폭우는 한 시간 정도 계속되다가 이후로도 오다 말다 한 시간이 넘게 지속됐다.

    구간은 조계산 선암사 아래 140m 고도의 길게 이어진 산길 도로로 계속 달리면 상사호로 이어져 백 키로미터 넘게 굽이굽이 도는 도로의 일부인 거 같았다.(달릴 때는 전혀 어딘지를 알 수 없었고 글을 쓰며 어플 결과 기록을 보고 암). 폭우가 쏟아지며 핸드폰을 지퍼백에 넣었기에 어플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폭우 장면을 한 장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우비 속에서 배낭을 꺼내 여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그렇게 산길 도로달려 84km CP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먼저 온 주자들은 안도하며 라면과 누룽지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대여섯 명이 앉아서 쉬는데 일어날 생각이 없이 느긋하게 푹 쉬는 모습들이다. 폭우 속을 헤치고 결국 이겨냈다는 안도감과 거의 다 왔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듯했다.


 ** 마지막 순간들**

   마지막 CP에서 뜨거운 누룽지로 간단히 속을 데운 후 나는 바로 출발했다. 잠깐 쉬는 동안 핸드폰 어플을 보니 평균 페이스 910초였다. 15시간 20분 정도가 골인점 예정시간. 남은 18km를 km당 9분 언저리로 달리자며 마지막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무거워지는 다리... 무릎이 시큰하고 허벅지 근육이 땅겨지니 억지로 달리는 발걸음이 어색하고 속도도 안 붙는다. 폭우 속에서 계속 달린 것이 원인이라기보다는 80km 넘게 달려온 나로서는 체력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증거다. 8km를 더 달리면 10km만 남는 것이니 그때 마지막으로 시간을 예상하자며 무조건 92km까지는 뛰어 보 목표로 억지로 억지로 달렸다. 다고는 하지만 거의 걷는 모양새다. 어느덧 여명은 걷히고 날이 밝았다. 저 앞에 보이는 주자들도 걷고 있다. 이쯤에서는 걷는 것도 대단한 것이다. 여기는 낮은 고갯길 내리막.

마지막을 향해 걷는 주자들

   되도록이면 뛰자고 지만 도저히 뛰는 걸음이 안되었다. 뛰우뚱거리며 뛰어 10km 남겨 놓고 핸드폰 어플을 보니 평균 페이스가 9분 20초. 마지막 CP에서 출발하며 뛴다고 뛰었지만 걷는 거와 거의 비슷한 기록이었다. 여기서 나는 어떤 결정을 해야 했다. 사실 15시간이나 16시간이나 큰 의미는 없다. 완주한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남은 10km 걱정이 없어졌다. 걸어도 완주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다시 천천히 뛰어 드디어 순천 시내에 접어들었다. 저 멀리 순천만국가정원이 보인다. 다리도 아프고 힘도 드니 여기서부터 골인지점까지는 아주 걷자고 했다. 걸으며 주변 구경도 하고. 폭우에 뛰며 쓸린 사타구니 상처가 깊어 빨리 뛰기가 쉽지 않기도 했다. 골인 지점까지 5km 남겨둔 곳이다.

   이미 앞에서 시간을 세이브해 놔서 17시간 완주는 문제없다. 조금만 뛰면 16시간 안에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5km를 내내 걸었다. 몇 분의 시간 때문에 죽기 살기 달릴 나이는 지났다. 달리는 걸 즐겨야 하는 나이다. 오히려 마지막을 무리하게 달리다 회복에 시간이 걸리느니 천천히 걸으며 마무리로 다리 회복 운동을 한다 생각하자고 했. 아침 맑은 햇살에 비친 순천만국가정원의 모습이 아름답다. 걷다 서서 사진도 찍고 주변 경관을 눈에 넣었다. 내가 걷는 사이에 10여 명의 주자들이 나를 앞서 달렸다. 한참 뒤에 있던 주자들이었지만 열심히 뛰어온 그들이다. 앞서 달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예전 같았으면 그들을 다시 앞서려고 나도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맘으로 박수를 보냈다.

  16시간 16분! 밤새 달린 나의 기록.

   나는 이번 달리기에서 핸드폰 어플을 사용하며 달렸다. 페이스 측정의 목적도 있었지만 내가 달린 102km를 지도에 표시하고 싶었다. 어플에는 내가 달렸던 장소와 시간들이 촘촘히 표시되어 있었다. 순천만국가정원, 순천만 늪지, 낙안읍성, 선암사, 상사호수 등...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어플 화면이다. 화면의 이면에는 나의 땀과 열정 그리고 꿈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나만의 자신감을 발견할 수 있다.

102km의 흔적

<후기 몇 마디>

   '다시 또 울트라마라톤을 뛸 건가?' 102km 완주 후 온몸이 너덜너덜해졌다. 젖은 옷으로 장시간 달리다 보니 옷에 피부가 쓸려 사타구니 쪽 상태가 심각해 피고름이 나올 정도다. 뛰면서도 쓰라려 바셀린을 떡으로 바르며 뛰었는데도 그렇다. 배낭 어깨끈으로 난 쓸린 자국 등 여기저기 쓸린 자국은 양반이다. 뛸 때도 사타구니 쪽 고통이 심했다. 참고 뛰었을 뿐이다. 환복하고 사우나까지 걸어가는데 간신히 갔다. 사우나에서 몸을 풀며 쓸린 자국을 보니 상처 부위도 넓고 아물려면 시간도 꽤 걸릴 듯했다. 특히 사타구니 쪽이 그 모양이니 난감하기도 하고. 당장 생활하는 데 불편할 테니. 종아리와 허벅지는 온통 알이 배겨 앉았다 일어서기 힘들어 어딜 잡고서야 일어나는데 '왜 이런 미친 짓을 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뛰고 난 그날은 온몸의 고통으로 당연히 이렇게 두 번 다시 뛰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안다. 며칠만 지나면 그때 아팠던 기억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추억만 남아 그것이 강한 자신감으로 치환된다는 걸. 그리고 앞으로 일이 년은 그 자신감으로 삶이 역동적이란 . 그래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답은 ''라고는 말 못 하겠지만 '아니다는 아니다'다.


## 순천만울트라마라톤 기록이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다. 총 114명이 종착점 라인을 통과했고 나의 등수는 77등. 내 뒤로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